[에필로그] 마찰이 사라진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by 정요한

시대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흘러갈지. 비만치료제가 이끄는 생물학적 아웃소싱과 AI가 상징하는 인지적 자동화라는 두 축을 통해 풀어봤던 인간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마치려 한다. 이 두 흐름은 결국 우리 삶의 마찰을 모조리 제거해 가려는 하나의 거대한 욕망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앞으로 더더욱 욕망과 싸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비용을 지불하고 그 욕망을 우아하게 관리받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넷플릭스부터 Claude, 보톡스, 필러, 위고비, 마운자로와 같은 '서비스'에 매달 내는 구독료가 커질수록 우리의 삶은 분명 더할 나위 없이 매끄러워진다. 그야말로 일상이 seamless해지는 것이다.


영화 <WALL-E>는 미래 인류가 게으르고 뚱뚱해져서 걷는 기능조차 잃게 될 것이라 예언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게 흐를 것이다. 자본을 가진 미래의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날씬하고 스마트할 것이다. 다만 그 완벽함은 자신의 의지로 땀 흘려 얻은 결과가 아니라 매달 결제되는 구독료가 지탱해 주는 위태로운 건강일 가능성이 높다. 내 인생을 내가 사는 건지, AI가 나의 시간과 결정권을 대신 굴려주는 건지 점점 더 헷갈려할 게 뻔하다.


아무런 저항도 마찰도 없는 매끄러운 빙판 위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로 미끄러져 가고 있는가? 이 편리함의 홍수 속에서 내 삶의 주권을 지키는 방법이 있을까?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지독하다 생각하겠지만, 기술이 없애버린 마찰을 내 삶에 강제로 다시 끼워 넣는 것이다. 모두가 '아차...!' 하며 매끄러운 빙판 위를 속절없이 미끄러져 내려갈 때 나를 지탱해 줄 나만의 아이젠을 스스로 장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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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주 3회는 출근 전 아침 공복에 찰스 강을 뛴다. 약물이 식욕과의 마찰을 지워버릴 수 있는 시대지만, 나는 내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거친 숨소리와 다리 근육에 쌓이는 젖산으로부터 오는 근육통을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프롬프트 하나면 수천 단어짜리의 '완벽한' 글이 뽑히는 시대지만, 매일 평일 아침 첫 5~600 단어만큼은 맥북의 차가운 질감을 느끼며 직접 써 내려간다.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 골라 퇴고 끝에 좋은 글 한 편을 완성해 내는 일. 암반응을 거쳐 포도당 하나를 빚어내듯, 그 시간을 굳이 스스로 감당하는 것만이 나라는 사람의 지성이 퇴화하지 않게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곳 보스턴에서의 삶도 그렇다. 쾌적한 고립에 머물 수 있음에도 나는 굳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 네트워킹 모임에 나가고, 밤늦게 동네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패딩을 챙겨 입고 나간다. 여전히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굳이 불편하게 서로의 거리를 좁혀간다. 그 마찰 속에서만 피어나는 진짜 인간관계의 온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던 지점을 해결할수록 삶은 분명 편해진다. 하지만 모든 마찰이 제거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스스로의 주체성을 거세하는 것과 같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견디고, 내가 기다려야 할 몫을 기술에 넘겨주는 순간 나라는 존재의 영토는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나는 기술의 편리함을 기꺼이 구독한다. 시력이 나쁘면 안경을 쓰거나 라식 수술을 받고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와이파이 비용을 지불하듯, 비만치료제나 AI가 누군가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지탱해 준다면 그것 또한 훌륭한 도구이자 서비스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안경을 썼다고 해서 내 눈이 보는 행위 그 자체를 멈추지 않는 것처럼, 내 영혼의 근육이 붙어야 할 지점만큼은 거친 모서리들을 깎아내지 않고 남겨두기로 했다. 찰스 강의 찬 공기, 노트북 화면 속 커서 앞 writer's block과의 사투, 그리고 낯선 이와의 어색한 대화들. 이 거친 마찰들이 나의 삶을 인간 특유의 완벽하지 않은 삶으로 유지시켜 주는 게 아닐까 믿어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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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나만의 아이젠을 박으며 살아가고 있다.

의지를 아웃소싱하는 이 시대. 나는 오늘도 굳이, 불편한 쪽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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