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쥐만 잡다 끝나는 거 아냐?

by 정요한

항체 엔지니어링 회의가 한창이었다. 이미 꽤 좋은 후보 물질이 나왔고 데이터는 충분히 좋아 보였다. 그런데 회의는 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쥐 실험을 위해 추가 개량을 하기로 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굳이?


그런데 연구팀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신약 개발은 서바이벌 게임이다. 항체 하나가 신약이 되려면 발굴부터 시작해 최적화, 최종 후보 선정까지 수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다양한 시험을 치러 살아남은 참가자만이 다음 라운드에 오를 수 있는 예능 프로처럼. 그리고 그 관문 중 하나는, 아직 사람도 아닌 쥐 앞에 서는 일이다.


업계에 오래된 농담이 하나 있다.


우리가 다른 건 몰라도
쥐 암은 이미 정복한 지 오래다~

웃기지만 씁쓸한 농담이다. 동물 실험에서는 그렇게 잘 듣던 신약 후보들이 막상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에 들어가면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통계로만 보면 신약 임상은 성공하면 신기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이 단계를 건너뛸 수도 없다. 검증되지 않은 물질을 사람에게 바로 투여할 수는 없으니까.


효능도, 안전성도 먼저 동물에서 확인되어야 사람 임상의 문이 열린다. 그러니 목표는 분명 사람인데 사람한테 가기 전에 먼저 쥐에서 통과해야 한다. 그렇다면 쥐에서 도대체 무엇을 증명해야 할까?




항체는 특정 타겟에 달라붙는 물질이다. 얼마나 강하게 잘 붙느냐! 이게 결합력이고 항체의 핵심 스탯이다. 결국 중요한 건 사람 몸 안에서 사람의 타겟에 잘 붙느냐이지만, 그 시험을 치르기 위해선 먼저 동물에서 비슷하게 좋은 성능으로 스스로를 증명해내야 한다. 사람한테 바로 찔러볼 수는 없으니까.


쥐에서 이 정도면 사람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간접 증명. 업계에서는 이걸 translation이라고 부른다. 번역이라는 단어가 문학에만 있는 게 아니다. 쥐와 사람, 두 종에서 다 잘 붙는 항체가 신약 개발에서는 황금 티켓이다. 그래서 안 그래도 어려운 신약 개발인데 어려움의 층이 하나 더 있는 셈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먼저 쥐로 설득해야만 하는 이 과정이 때로는 참으로 아득하고도 답답하다.


궁극적 목표는 아닌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 이게 신약 개발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취준의 목표는 입사다. 입사의 최종 관문은 면접이다. 그런데 면접을 보러 가려면 서류가 먼저 통과돼야 한다. 서면으로 통과가 되지 않으면 면접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면접에 갈수만 있다면 너무 좋은 후보자인데 서류 단계를 도저히 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떡하겠나. 프로세스는 냉정하다. 나를 면접에서 증명하기 위해서는 서류 단계부터 붙어야 하는 게 지금 이 게임의 규칙이다. 그러니 취준생이 해야 할 건 더럽고 치사해도 기깔나는 포트폴리오와 자소서부터 준비해둬야 한다.


결혼이나 연애, 심지어 소개팅에도 다 선행 단계가 있다.


이뻐? 잘 생겼어? 연봉이 얼마래? 부모님 노후 준비는?

만나보기도 전에 통과해야 할 관문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 친구 만나보기만 하면 진짜 진국인걸 알 텐데..."

소용없다.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쩌겠나. 운동선수와 똑같다. 경기장 밖에서 먼저 증명해야 경기장 안에 설 수 있다.




넷플릭스에는 '오프닝 건너뛰기' 버튼이 있다. 우리 인생에도 그런 버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애석하게도 시간이 지나야만 열리는 문이 있다. 내 뜻대로, 내 맘대로 건너뛸 수 없는 과정들이 있다.


당신의 삶은 어떤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것들이 있는가. 이게 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데 어쩔 수 없이 해내야 하는 것들 앞에 서있는가.


나도 다 이해되진 않는다. 그치만 꼼수를 부렸다간 오히려 더 돌아가는 수가 있다는 점도 걱정된다. 쥐를 거치지 않으면 사람에게 갈 수 없는 것처럼, 꼭 직구로 뚫어야 하는 것들이 있는 듯하다.


지금 굳이 싶은 게 있다면, 아마 착실히 잘 가고 있는 거다.

쥐부터 잘 잡아야 사람을 살리는 법이다.


일단 그렇게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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