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가 지휘봉을 잡기까지

나는 모순적인 BD입니다.

by 정요한

나는 사실 숫기가 없는 편이었다.

애기 시절엔 걸어 다니는 것보다 뛰어다니는 게 더 많았던 에너자이저였다고 한다. 마이크 잡는 걸 좋아하는 '무대 보이' 그 자체였지만, 미국으로 이민 와 초등학교 중반쯤부터 쑥스러움이 많아졌던 것 같다. 그렇게 두 성향이 서서히 섞여갔고, 어느 순간부턴 ‘은은한 관종’이 되었다. 겉으로는 과묵하지만 지금도 무대에 서거나 뭔가 해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빼지 않고 오히려 뚜벅뚜벅 걸어 나가서 마이크를 잡는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는, 그런 이상한 성격이 형성되어 버렸다. 한국과 미국이 섞여서 그런지 개인적이면서도 조직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 집돌이라 혼자 노는 걸 한없이 좋아하면서도, 공동체와 팀을 중시해서 사람들과 모이는 것과 회의에 참석하는 걸 좋아한다. 평화롭게 혼밥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조직의 생존을 위해 모르는 사람과 점심을 먹으며 미션을 달성해 낼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라는 사람이 그렇듯 내 직업도 참 모순적이고 어중간하다. 사업개발. 내 직무 이름이다. 영어로는 Business Development, 줄여서 BD라고 한다. 아직 한국에서 그리 흔한 포지션은 아니다. 어중간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IT 기업에서 간간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고, 제약바이오에서는 그래도 자리를 잡은 롤이다. BD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 나를 설명해야 할 때 나는 그 어중간함을 명확한 두 직무를 빌려와 풀어보려 하는 편이다. '전략기획'과 '기술영업'. 이 두 개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그 중간 어디쯤이라고 설명하면 대충 다 이해들 하신다. 사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여전히 IT와 제약바이오를 제외하고는 BD는 생소한 이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조차 3년 전까지만 해도 이 롤의 존재 여부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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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중 바이오테크 기업의 재무를 총괄하시는 임원분이 계셨다. 당시 나는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어와 군 복무를 마친 후 영어 강사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나에게 잘 맞을 것 같다 하며 소개해주신 덕에 처음 들어본 직무였다. 그렇다. 대중적으로 인식되는 제약바이오 BD는 글로벌 역량이 있어 영어로 과학적 비즈니스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이 맡는 역할인 것이다. 좋은 시작이다. 나도 그 정도인 줄 알고 BD로 취준 했다. 여러모로 운이 좋게 취뽀해 BD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들어와서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다 보니 신입 BD는 정말 흔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입이라 하면 주로 박사급들이고, 보통은 다른 직무로 전문성을 쌓은 분들이 BD로 직무 전환해 들어오는 케이스가 많다. 그에 비해 나는 생물학과. Bachelor of Science in Biology가 내 학위 정식 명칭이다. 생물공학도 아닌 순수 생물학. 어떤 느낌이냐 하면 문과 세계의 경영학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줄기세포'와도 비슷하다.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전혀 뾰족하지 않은, 학사 학위 하나로는 뭣도 되지 못하는 그런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내 동기들 중 95%는 의전대로 진학했다.


석사도, 박사도, 의사도 아닌, 뾰족한 것 하나 없는 내가 바이오테크 기업에 BD로 뽑힌 건 굉장한 운이 작용했다고 보는 이유다. 생물학 학사, 영어 강사 경력 3년, 이력서에는 네이티브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일단 이력서에는 그렇게 쓴)의 영어 실력, 군필. 이 정도가 다였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몇 년째 전문성에 목말라 있었다. 생물학을 전공한 것부터가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거기서 전문성을 원했다면 최소 박사까지는 달렸어야 했다. 사실 그래서 나는 좀 뜬금없지만 BD로 취업 전, 미국 회계사(AICPA)가 되려고 준비하던 중이었다. 여러 선택지 중 글로벌 업무(라는 망상)를 충족시켜 주면서 그 누가 봐도 '전문적'으로 보이는 회.계.사.라는 논리가 이유였다. 그 정도로 나는 전문성을 장착하고 싶었다. 근데 쌩신입 BD로 들어와 보니 전문성에 대한 내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BD의 뜻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사업 개발. 사업을 개발하는 역할이다. 쌩신입이 들어와 무슨 사업을 개발할 수 있을까. 사업과 산업에 대해 아는 게 없는데 어떻게 사업을 개발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취뽀 후 신입으로 일하며 6개월 간 나를 극심히 괴롭혔던 대목이었다. '지금 나에게 BD가 전문성이 되어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왜냐면 아무리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도 BD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와야 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지금 보면 별것도 아닌 걸로 혼자 스트레스받고 있었다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만큼 내 업에 진심이다. 이민자, 외국인으로 살아오다 보니 늘 적응해야 했고, 나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책임감이 자연스레 강해졌던 것 같다. 책임감은 여전히 나의 삶을 끌고 가는 핵심 동력 중 하나다. 쑥스러움이 있고 얼굴에 철판 깔고 다가가는 게 자연스럽진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BD로 일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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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업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게 되었다. 좋은 제약바이오 BD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영화감독도 적절하겠다. 둘 다 직접적인 경험은 없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들은 현장과 현장 밖에서 조직을 지휘한다. 지휘뿐만 아니라 좋은 지휘가 가능하도록 사전 작업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작품을 잘 선정하는 것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내가 지휘할 조직에 맞는 작품을 선정하는 것, 반대로 내가 세상에 선보여야 할 작품에 맞는 조직을 짜고 운영하는 것도 업무에 포함된다. 이 작업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골방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과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조율하고 일을 진행시키는 모습이 공존해야 한다는 점을 본다.


결국 BD는 '줄기세포' 같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었다. 마치 내가 BD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들어왔을지는 몰라도 허투루 일하고 싶진 않았다. 대표이사 직속 팀원이 되어 이모 삼촌뻘 상사들 사이에 낀 중간 포지션으로 첫 1년 간 일하다 보니 정말 빨리 성장했다. 고통스러운 적응의 시기를 지나며 내 정체성인 BD에 대한 나만의 해석을 이어갔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내게 BD는 직무 그 이상이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마인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숫기가 없고 쑥스러움이 많은 건 이제 나를 막지 못한다. 내 안의 관종력과 무대 보이 성향이 살아나고 있다. 어떤 세포로 분화될지 몰라 불안했던 줄기세포가, 이제는 전체를 조율하는 지휘봉을 잡았다. 전문성 없이 버티다 보니 유일무이한 경력이 쌓이고 있다. 이것이 나의 전문성이 되어주겠지.


아니, 이미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