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녹이는 욕망

욕망은 악인가?

by 정요한

보스턴은 깊은 겨울로 들어서고 있다.

겨울. 보스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다. 보스턴의 겨울은 악명 높다. 요즘은 좀 덜하다고 하지만 60cm 넘게 쌓이는 눈, 살을 에는 칼바람이 그 유명세에 한몫한다. 글로벌 제약바이오의 중심지라 그런지 이 칼바람은 사업과 커리어도 무자비하게 휩쓸고 지나가기 일쑤다. 투자가 얼어붙었다는 뉴스와 레이오프(해고) 소식은 잊을만하면 또 들려오고, 그럴 때마다 '나만 아니면 돼'와 '이번엔 운이 좋았지만 나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기 마련이다. '이쯤 되면 봄이 오겠지'라고 다들 희망 회로를 돌려보지만, 그건 그저 이 겨울이 지겹고 너무 고달파서 하게 되는 망상에 가깝다. 가끔 희미한 연두색의 새순이 보이긴 한다. 귀하다. 빅파마들이 M&A에 완전 제동을 걸진 않았고, 여전히 라이센싱 딜 소식도 들려오긴 한다. 1~2년 전보다 활발해진 건 사실이다. 그치만 겨울과 봄의 경계가 정확히 어디냔 말이다. 우리가 매일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선형적이다.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은 다시 오지 않을 직선의 시간을 우리는 산다. 동시에 우리는 그 직선 위에 놓인 계절의 사이클도 안다. 우리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그렇게 한 해가 가면 다시 겨울이 온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계절은 좀 다르다. 세계 경제에도 사이클이 존재한다는 건 모두가 알지만, 각 사분원의 정확한 길이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공포다.


소망이란 참 애매한 녀석이다.

제약바이오 산업만큼 소망이 강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작용하는 필드도 찾기 힘들다. 사람의 생명, 환자의 삶의 개선이 이 비즈니스의 결과이자 종결점이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을 할 때 이 약이 세상에 나와도 되는지 결정하는 여정은 길고 험난하다. 수많은 실험과 임상시험을 거치면서 결국 보는 지표는 '생존'에 좋은 영향을 주는지의 여부다. 우리는 이걸 PFS(무진행 생존 기간)나 OS(전체 생존 기간)라고 부른다. 비교할만한 기존 표준치료법이 있다면 그에 대비해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개선을 보여야 하고, 없다면 위약보다 나은 결과를 증명해야 한다. 하나의 약물을 '발견'하거나 '디자인'해서 승인되기까지 전통적으로 10년에서 15년이 걸린다. 10년에서 15년. 강산도 변하는 시간이다. 시간뿐만이 아니다. 약 1조에서 3조 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고, 종합성공률은 0.1%에서 0.5%로 본다. 즉, 수만 개의 초기 후보 물질 중 단 한두 개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보다 더 절망적인 건, 시판된 신약 중 절반 이상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도 못하고 수명을 다한다는 사실이다. 이 말도 안 되는 확률 게임 안에 소망이란 게 정말 있기는 한 걸까?


절망적일수록 소망의 힘은 강해진다는 역설적 진리가 이 우주를 끌고 가는 동력 중 하나다. 여기엔 두 가지 소망이 있다. 하나는 환자들의 간절한 소망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 못지않게 강렬한 '사업적 이익을 위한 소망'이다. 이 얼마나 위험하고 성공하기 힘든 사업, 아니 도박인가? 하지만 바로 그 High Risk 때문에 인류는 High Reward에 더 미쳐버리는 것 같다. 블록버스터 약물. 연간 매출액 10억 달러(약 1조 원) 이상을 기록하는 대박 신약을 칭하는 표현이다. 타그리소, 휴미라, 키트루다. 위고비와 비아그라. 항암, 자가면역, 비만, 그리고 발기부전. 사람의 생명과 환자의 삶의 개선이라는 숭고한 명제 뒤에는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이, 더 비싸게 오래오래 팔릴수록 성공적’이라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버티고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 산업의 최대 역설이자 딜레마이다. 환자의 수가 곧 시장의 크기가 되는 곳. 자칫 잘못하다간 누군가의 절박한 소망을 이용해 먹는 셈이 된다.


대놓고 써먹는 사람과 기업도 많고, 은근슬쩍 이용하는 곳도, 그리고 결국 그렇게 변질되는 곳도 참 많다. 어쩔 수 없는 걸까? 생명에 가격표가 붙는 건 당연한 걸까?


이 산업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역추적해보면 답은 의외로 쉽게 나온다.

산업 이전에 우리 조상들의 절박한 발버둥이 있었다. 나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이 죽어갈 때 산을 뒤지며 약초를 찾던 게 이 모든 신약 개발 역사의 시작이었다. 그때는 순수했다. 하지만 살리고자 하는 순수함만으로는 질병을 정복할 수 없었다. 생명에 대한 진심이 이익 창출이라는 욕망과 만나, 현대 산업의 핵심인 대량 생산이라는 기술력과 합쳐진 이후부터는 모든 게 달라졌다.


우리는 가끔 순수했던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그 시절의 약초로는 지금의 생명을 구할 수 없다. 인류는 현재 거대한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우연에 기댄 '발견'의 시대에서 '공학'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생명의 본질인 DNA와 단백질을 직접 '디자인'하는 시대에 거의 도달했다. 10년의 시간과 3조 원의 돈을 태워가며 기어이 죽음을 물리치는 신약을 만들어내는 동력은 안타깝게도 착한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 공짜란 없다는 말이다. 나와 너와 우리 가족에게 더 나은 삶을 선사하겠다는 가장 깊은 욕망 위에는 블록버스터를 향한 탐욕이 서 있다. 이 검디검은 욕망이 역설적으로 가장 뜨거운 생명의 온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게 오늘날 제약바이오 산업의 민낯이다.


겨울은 원시인에게도, 연기를 뿜으며 위고비와 마운자로를 밤낮없이 찍어내고 있는 공장에도, 보스턴의 최첨단 랩실에도 똑같이 온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이 혹독한 겨울을 버티게 하는 것은 봄에 대한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다. 언젠가 터질 High Reward를 향한 사냥꾼들의 욕망, 그 뜨거운 불꽃만이 이 얼어붙은 시장의 빙하기를 녹일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욕망을 너무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그 욕망이 훗날 당신과 나를 살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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