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열과 길항
어제 손을 데었다.
다행히 오른손 약지 끝 쪽에 가벼운 화상이지만, 손 끝에 단단히도 잡힌 물집은 온종일 내 신경을 건드린다. 사건의 발단은 내가 평소에도 미워하던 주방 기구, 하이라이트 쿡탑이었다. 가스불처럼 ‘리얼’한 시각적 경고도 없고, 인덕션처럼 즉각적으로 식지도 않는 하이라이트는 그야말로 모호함의 결정체다. 켰는지 껐는지 모호한 상태로 남겨진 그 잔열이 늘 문제를 일으킨다!! 비효율적이고 뒤처리도 번거로운 이 기구를 나는 슬프게도 벌써 세 집째 마주하고 있다.
어제는 아래쪽 두 포트를 동시에 가동했다. 한쪽엔 김치찜을, 한쪽엔 동그랑땡을 올려 데피고 있었다. 요리가 끝나갈 무렵, 냉장고에 남아 있던 모짜렐라 치즈가 떠올라 꺼내서 샤라락 뿌려 넣던 중 무심결에 플라스틱 뚜껑을 옆 포트 위에 내려놓은 것이다. 그걸 모른 체 빈 플라스틱 통을 닫으러 뚜껑을 집어 들었다. 찰나였다.
"앗ㄸ 으거... !! ec…”
내가 잡으려던 뚜껑은 이미 글루건 심처럼 녹아내려 쿡탑에 들러붙어 있었고, 곧이어 요란한 화재경보기 사운드가 온 집안을 채웠다. 찬물로 손가락을 좀 식히고 소음기부터 꺼뜨린 뒤 주방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뚜껑이 완전히 눌러붙지는 않았지만, 망할 하이라이트 위에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플라스틱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았다. 다행히 화상이 심각하진 않은 것 같아 일단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ㅋㅋ. 근데 밥을 먹으면서 약지 말단에 열감이 꽤나 올라오는 게 느껴지긴 했다. 후딱 식사를 마치고 찬물 처치를 좀 해주었다. 젠장. 짜증 섞인 한숨 뒤로 한 단어가 뇌리에 박혔다.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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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움은 흔적을 남긴다.
고대 노예의 몸에 새겼다던 낙인부터 요리사의 훈장 같은 흉터, 과열된 자동차 엔진의 변색까지. 모든 과열은 그 존재가 감당해야 할 자국을 남기기 마련인 건가. 그리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내 몸과 삶으로 이어졌다. 지난 10년 넘게 워커홀릭의 궤적을 그리며 뜨겁게 달궈진 내 존재는 지금 어떤 흔적을 남겨오고 있었는가.
어쩌면 내가 하이라이트 쿡탑을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내 삶의 방식과 너무나도 닮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좀처럼 잘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다. 스위치를 ‘off'로 돌려도 내 안의 엔진은 즉각 식지 않는다. 지난주 금요일에 2025년 마지막 퇴근 이후 긴 연말 휴가에 들어온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내 뇌와 몸도 여전히 잔열을 내뿜고 있는 것만 같다. 어제 손가락을 데게 만든 건 하이라이트의 열기였지만, 본질적으로는 휴식 중임에도 여전히 뜨거운 내 내면의 관성을 내가 너무 과소평가한 게 아닌가 싶다. '아직 뜨거운 것'을 겁도 없이 만져대면 보통 대가를 치루더라.
이 기만적인 잔열에 대한 사유는 며칠 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정강이 통증과 만나셨다.
나는 최근 러닝 중 처음으로 정강이 통증을 느꼈다. 미드풋 착지가 잘못됐나, 혹은 인터벌 스프린트가 과했나, 아님 무릎을 덜 들었나 고민하던 중 범인을 찾은 것 같다는 무의식의 제보를 받았다. 12월 초에 들여온 폼롤러가 유력한 용의자였다. 뭉친 근육을 풀어준다는 목적으로 나는 근 몇 주간 종종 종아리의 가자미근과 발바닥의 족저근막을 아주 집요하게도 조져 놓았다. 시원함에 취해 무식하게 풀어댄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 몸은 정교하게 연결된(interconnected) 시스템이다. 해부학적으로 보면, 한쪽 근육이 수축할 때 반대편 근육은 이완해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이를 길항근(antagonistic muscles)의 원리라고 한다. 내가 다리 뒷면의 가자미근을 지나치게 풀어 이완시켜 버리자 평소 뒷근육과 팽팽한 텐션을 유지하며 균형을 잡던 다리 앞면의 정강이 근육(전경골근)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라 본다. 뒷문이 열리니 앞문이 그 갭을 메우려 무리하게 버티다 비명을 지른 꼴이다.
연말이라는 이 특별한 기간에 휴가를 보내는 정신적 태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시스템적 오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 동안 극도로 수축해 있던 긴장감을 휴가라는 이름으로 갑자기, 그리고 무식하게 이완시키려 할 때 삶의 시스템은 체감 속도보다 빠르게 붕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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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흑백요리사 2>를 보며 요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물론 나는 요리의 ‘요’자도 모른다.) 거대한 웍을 돌리고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는 셰프들의 기술은 본질적으로 조절력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칼의 날카로움이나 불의 뜨거움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결코 그 힘을 기만하지 않는다. 불이 가진 파괴력을 활용해 요리라는 창작물로 변환시키는 핵심은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을 다루는 적절한 텐션을 유지하는 데 있다고 본다.
다치는 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풀어줘야 할 것이 있고, 그 어떤 순간에도 적정선 이상으로 풀면 안 되는 텐션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2주 간의 휴가 중에도 아침 러닝과 매일 오전 한 시간의 글쓰기 루틴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물론 러닝은 이틀에 한 번만, 토요일엔 글을 쓰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강박처럼, 완전히 쉬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이것이 최소한의 길항이다. 내 안의 잔열이 상처라는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그리고 급격한 이완이 삶의 다른 시스템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지켜내는 나만의 안전장치를 꺼두지 않고 있다.
화상 입은 약지를 찬물에 담그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내 뜨거움으로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은가? 내가 지금 풀어줘야 할 욕망은 무엇이고,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삶의 텐션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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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선명하고 fancy한 인덕션 같은, 혹은 요리하는 맛이 확실히 좀 나는 가스레인지 같은 삶을 원한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 삶의 본질은 늘 잔열이 남는 하이라이트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내가 원할 때 즉각 식어주지 않고, 다 끝난 것 같은 순간에도 예기치 못한 흔적을 남기는 그 모호한 관성 말이다.
불은 유익하지만 위험하다. 결국 핵심은 불을 잘 다루는 기술, 즉 ‘나의 온도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가'에 있다. 2025년의 끝자락에서, 나는 물집 잡힌 손가락으로 글을 쓰며 내 안의 하이라이트 쿡탑이 안전한 온도로 식어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리고 이제는 그 하이라이트와 잔열을 미워하기보다 이 놈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을 배워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