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지키는가?
원자는 일상적인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다. 회사에서는 그 원자에 해당하는 게 '사람 한 명'이겠다. 개인적으로는 좀 오글거리는 표현이긴 하지만 흔히들 '인재'라고 부르는 존재들. AI가 도입되고 적극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일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지만, 적어도 아직은 (다행히?) 사람이 핵심처럼 보인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회사를 이루는 것들 중 무엇이 진짜 중심일까? 사람인가? 일인가? 아니면 시스템인가?
사실 이 질문은 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닌 것 같다. 이 셋은 서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후 관계를 따져본다면 회사의 중심은 단연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제공함으로 돈을 버는 '목적'이 먼저 존재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원자(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 앞에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서 무언가 알아서 뚝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이 시작되고 반복되고 확장되기 시작하면 시스템이 구축된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된 시스템은 또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진화하고 '살아'가기 시작한다. 마치 매트릭스처럼. 영화 <매트릭스>에서 시온의 하먼 의원이 네오와 나누던 대화는 이 기계적인 공생 관계를 꿰뚫어 본다.
“매트릭스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이 기계들을 보게 되면 우리도 그들과 다를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네."
“우리가 이 기계를 컨트롤하지 기계들이 우리를 컨트롤하지는 못해요.”
“당연하지. 하지만 ‘컨트롤’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네. 우리가 원하면 기계들을 꺼 버릴 수 있겠지. 하지만 꺼버리고 난 후에 조명, 난방, 공기. 이것들은 어떡할 건가?"
우리는 시스템을 부품 취급하며 언제든 끌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 그 시스템이 주는 안락함과 효율 없이는 우리의 생존(회사에서의 일상)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외면하곤 한다. 이 기묘한 의존성 속에서 시스템은 생각보다 강력한 존재감을 갖는다.
최근 OpenAI의 창립 멤버인 안드레 카파시(Andrej Karpathy)는 직업 전체가 규모 9 지진에 해당하는 변화를 겪고 있다고 경고하며, 우리가 익혀야 할 수많은 '새로운 추상화 계층(Abstraction Layer)'들을 언급했다. 에이전트, 프롬프트, 워크플로우, MCP 등. 사실 저 단어들 중 하나만 있어도 빡쌔 보이지만, 이미 저들을 겹겹이 쌓아 지휘(orchestrate) 해야 하는 시대에 도달했다. 이 계층들은 결국 더 정교해진 '시스템의 겹'이다.
시스템은 시스템을 지키게 되어 있다. 회사는 늘 회사를 지켜왔던 것처럼, AI도 고도화될수록 분명 자신을 지키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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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제약바이오라는 촘촘한 시스템 안에서 종종 길을 잃는다. 숫자로 증명되는 성과와 효율의 논리는 너무도 명쾌해서 그 안의 '사람'을 돌보는 일은 때로 비효율적인 군더더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스템의 관성에 올라타 숫자를 지키는 것은 쉽지만, 그 시스템이 지키지 않는 누군가의 감정이나 나의 고유한 가치를 지켜내는 것은 외로운 투쟁에 가깝다. 나조차 어느새 '일'이라는 목적을 위해 '사람'이라는 원자를 도구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때로는 내가 기꺼이 시스템의 나사 하나가 될 때도 있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가 부딪히고 부대껴야 하는 사람들을 또 하나의 AI 도구를 대하듯이 생각하게 될 때도 있어 깜짝깜짝 놀란다.
여기서 위험한 반전이 일어난다. 우리는 종종 매트릭스에 갇힌 이들처럼, 나를 옥죄는 시스템을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시스템이 주는 익숙함과 그 안에서의 작은 권력에 취해 그 시스템이 지키려는 것이 곧 내가 지켜야 할 가치라고 관성적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시스템만 지킨다고 지키려는 것을 정말 지킬 수 있는 걸까? 영화 <아이리시맨>의 마지막 장면, 평생 마피아라는 조직과 그 안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삶을 바친 주인공에게 향한 대사가 서늘하게 가슴을 친다.
"Mr. Sheeran, 모두가 죽었어요. 당신은 누굴 보호하고 있는 거예요?"
주인공 프랭크 시런은 본인 스스로는 가족을 사랑했고, 동료를 사랑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평생을 바쳐 지킨 것은 ‘사람’이 아니라 마피아라는 ‘시스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스템은 그가 제공한 충성으로 스스로를 지켜냈지만 정작 프랭크의 곁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스템은 시스템을 지켰을 뿐, 사람을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키는 자는 힘이 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지키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지키다 보면, 정작 지켜야 할 것은 지키지 못한 채 시스템의 관성만 지키게 될 뿐이다.
마피아 두목이 프랭크에게 그랬듯, 시스템은 갈수록 더 노골적인 효율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신입 한 명을 고용해 교육하는 비효율을 감수하기보다 그 비용의 수분의 일로 당장 결과물을 내놓는 AI를 결제하는 것이 이미 훨씬 싸게 먹히고 있다. 시스템은 시스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래의 원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사다리를 가차 없이 걷어차 버린다. 하지만 당장의 성장 그래프를 지키려 미래의 사람을 지우는 이 비정한 선택의 끝에는 결국 <아이리시맨>의 프랭크와 같은 고립만이 남을 뿐이다. 시스템을 지켜낸다 한들, 그 빈 성 안에 홀로 남겨진 당신에게 훗날 누가 '당신은 대체 뭘 보호하고 있는 거냐'고 물어본다면 뭐라 대답할 건가?
그래서 나는 제목을 다시 읽는다. 시스템은 시스템을 지키고, 사랑은 사람을 지킨다. 시스템의 차가운 관성은 스스로를 보존하려 들지만, 그 안의 ‘사람’을 지켜내는 유일한 에너지는 오직 인간적인 ‘사랑’뿐이다. 여기서의 사랑은 시스템이 주는 안락함에 대한 중독이 아니라 시스템 밖으로 삐져나온 동료의 고단함과 나의 인간성을 끝내 외면하지 않는 의지 같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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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에서 무엇을 지켜야 할까? 나를 지키며 일을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일을 한다는 당신, 당신은 과연 무엇을 지켜야 하는 사람인가.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www.imdb.com/name/nm1577957/mediaindex/?ref_=mv?ref_=mv_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