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근원은 나일까 쟤일까?

결핍은 사회적으로 조작된 것인가, 아니면 내면에서 솟구치는 본능인가

by 정요한

인간은 태어나면 운다. 이를 인체의 신비라 부르기도 한다. 몇 가지 과학적 가설이 있지만, 결국 울음에 대한 어른의 보편적인 인식은 부정적이라고 본다. 무언가 불편하니 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말 못 하는 신생아의 경우 더 그렇다. 자가호흡을 터뜨리기 위한 것이든 새로운 세상에 내던져진 놀라움이든, 아기의 울음은 철저히 '본능적'인 행동으로 인식된다. 아직 사회와 상호작용하지 않은 생명체. 이 아이의 결핍은 사회적으로 조작된 것일 수 없다.


반대로 말하면, 신생아를 벗어난 우리의 결핍은 얼마든지 사회적으로 조작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SNS에서 흔히 보이는 영상이 하나 있다. 부모가 아이를 안고 벽 근처에서 자기 손으로 벽을 ‘탁’ 소리 나게 친다. 그러고는 아이가 벽에 머리를 박은 양 "어이구, 아팠겠다!"라며 과하게 달래기 시작하면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는 왜 운 걸까? 부모 손의 통증을 텔레파시로 느낀 걸까? 사실 눈을 제대로 떠보기만 한다면, 우리 어른들 역시 이 아기처럼 매일 수많은 ‘장난질’에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쇼츠 중독, [도둑맞은 집중력]. 우리도 다 안다. 알면서도 해소가 쉽지 않다. 아기처럼 몰라서 당하든 우리처럼 알면서 당하든, 본질은 같다. 본능이란 무엇인가. 나도 모르게 트리거 되는 생각이나 행동이다. 여기서 핵심은 '자연스럽다'는 단어의 애매함에 있다. 나에겐 자연스러운 게 타인에겐 기괴할 수 있고, 이 나라의 상식이 저 나라에선 비상식이 되기도 한다. '자연스럽다(Nature-natural)'의 의미를 재해석해 보면, 결국 '내가 속한 환경(Environment)이 정한 기준'이 된다. 퇴근길에 쇼츠만 보는 사람과 책을 꺼내 읽는 사람에게 깔린 자연스러움의 층위가 다른 것과도 같다.


인간의 본능 또한 변할(혹은 진화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결핍에도 이 논리는 적용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우리의 본능은 태어날 때의 원초적 욕구와 살아가며 학습된 욕구가 뒤섞여 형성된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본능과 결핍이 자본주의의 손아귀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본능을 주물럭거리면 돈을 벌 수 있다. 결핍을 '조작'해 더 큰 권력을 창출할 수 있다. 옷을 입고 싶다는 '본능'이 부모로부터 온 것이듯,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싶다는 '생각' 또한 사회가 우리에게 불어넣어 준 본능일지 모른다.


결핍은 생명체를 움직이게 한다. 배가 고파야 사냥하러 가고, 결핍을 느껴야 돈을 벌러 나간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결핍으로부터 오지 않은 순수한 '원함(Want)'이 있을까? 최근 안성재 셰프가 지니에게 빌고 싶은 소원에 대해 "저는 소원이 없을 것 같아요"라고 답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해선 되게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음... 저는 셰프로 지금 유튜브도 찍고 <흑백요리사> 심사위원이고 대한민국의 유명한 셰프라고 하고... 제 꿈을 이뤘어요. 근데 물론 가야 될 길은 멀죠. 그래도 제가 어렸을 때 꿈꿔왔던 굉장히 많은 것들을 이미 이뤘어요.
근데 꿈을 이루고 소원을 받고 나니까, 저한테 소중한 게 뭐냐 했을 때, 그 힘들었던 과정인 것 같아요. 나에게 소중한 것.
그래서 답은 이렇게 피해 가겠습니다 ㅎㅎ 저는 소원이 없을 것 같아요.


그는 치열한 과정을 거쳐 미슐랭 3스타라는 꿈을 이뤘고, 그 결핍의 끝에서 소원보다 '그 힘들었던 과정'이 더 소중하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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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 모두의 결핍은 그 근원에 따라 세 가지 층위로 정리될 수 있다.


생물학적 결핍: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생존의 신호.

사회적 결핍: '저들'의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느끼기 시작한 비교의 산물.

내재화된 결핍: 조작된 결핍에 길들여져 어느 순간 스스로 본능이라 믿게 된 욕망.



인생의 대부분을 소비자로 사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이제는 생산자로 도약하지 않으면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기 힘든 시대로 들어섰다. AI 기술과 인프라가 발전할수록 이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우리가 결핍에 대한 이해를 키워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핍은 지갑을 열게 하는 에너지이자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 그 자체다. 내 지갑이 열리는 이유를 모르면 타인의 지갑 또한 열 수 없다.


일론 머스크는 머지않아 화폐가 의미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언한다. 설령 지갑이 사라질지라도 지갑이 상징해 온 '선택권'의 의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란 곧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핍의 정체를 볼 줄 모르면 우리의 선택은 영원히 끌려다니는 선택일 수밖에 없다.


결핍을 다룰 줄 아는 자만이 비로소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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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0vNsn8exig4?si=_RbesAs1mTuuodq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