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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 Aug 19. 2024

엄마라고 다 같은 엄마는 아니더라.

세상 모든 사람이 육아가 체질인 건 아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을 때.

결혼을 앞두고 있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성인도 아닐 때.


나는 얼른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래보다 어른들과 노는 걸 더 좋아하고, 결혼한 지 한참 지난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좋은 엄마가 될 거라고 칭찬 받았기 때문일까.


나는 언제나 그들의 상황을 '만약 나였다면'하고 생각해보며 혼자 결혼 생활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돌렸고, 아이는 넷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안일이야 뭐, 못하는 것보다는 할 줄 아는 게 더 많았고 완벽하진 않지만 적당히 깔끔한 정도로는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더군다나 내가 아는 모든 엄마 중에 누구보다 '엄마'라는 역할에 사명감을 갖고 있던 우리 엄마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절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얼른 저런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


자식들 나이가 이제 서른, 혹은 그 이상인데도 아직도 각각의 자녀들에 대한 양육 목표가 있고 커버린 자식들이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그 목표를 위해 물심양면 움직이는 우리 엄마. 

자신보다 나은 세대를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엄마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화하려 애쓰는 우리 엄마.


그런 우리 엄마가 엄마가 된 결과만 보고 과정을 보지 못한 탓일까.

내게 있어 육아는 ''엄마'라는 이름을 다는 것' 정도의 의미였다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한다.


막상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다보니, 나는 생각보다 육아가 체질에 맞지 않았다.


뭐, 육아가 체질에 맞는 사람 뭐 몇이나 되겠느냐마는.

나는 내가 잘 할 거라고 생각했던 집안일도, 육아도 완전 젬병인 사람이었다.


육아는 절대로 결과값이 한번에 나오지 않는 끝없이 이어지는 과정이라는 걸, 결혼 전에는 몰랐다.

그냥 예쁘게 사랑만 주고 키우면 되는 줄 알았지.


내가 생각보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결혼 전에는 몰랐고, 어찌보면 집안일도 육아의 연장선이라는 걸 그때는 진짜 몰랐다.


아니, 애초에 육아라는 게 집에 오랜 시간 머물면서 온전히 아이 한명에게 내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는 일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다.


첫 아이를 키울 때는 그런 줄도 모르고 주변 아이들에 비해 순한 우리 아이가 마냥 힘든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이 변해버린 환경 탓에 아이가 아니라 내가 힘든 거라는 것도 모르고.


갓난쟁이보다 힘들다는 돌쟁이 시절을 넘어 조잘조잘 말할 쯤에야 나는 우리 아이가 비교적 순한 아이라는 걸 인정했다.


그리고 이제 둘째 육아를 앞둔 이 시점에서야 생각한다.

천상 육아가 체질인 사람들이 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아이에게 모든 것을 집중하고, 육아라는 것이 절대 단 한 순간 혹은 한 시기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이 즐겁고, 체력적으로 감정적으로 힘들긴 해도 아이의 웃음을 보거나 아이의 성장을 보면 그 힘듬이 싹 잊힌다는 사람들.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에서 보람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보다는 같이 육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정보를 교환하는 일이 더 즐거운 사람이다.

아이의 기질과 성향, 특성에 맞는 육아법을 함께 나누고 내가 적용해보고 좋았던 것들을 나누거나 새롭게 알게 된 지식들을 나누는 것이 즐겁다.


아이의 성장 자체도 물론 기쁘지만 그 성장을 통해 내가 배우고 느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즐겁고, 나보다 훨씬 앞선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이 나와는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즐겁다.


나는 육아 그 자체보다, 육아를 통해 성장해가는 내 모습을 즐기는 쪽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육아에 대한 보람을 나 나름대로 찾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번 둘째 육아를 맞이하면서도, 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또 어떻게 방에 처박혀서 또 언제 수유텀을 맞추고 잠텀을 맞추고, 이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둘째를 키우면서는 또 어떤 인사이트를 얻게 될까 설레어 하자고.

진짜 감사한 누군가가 내게 나누어주었던 이야기처럼, 아이 둘은 정말 신나고 멋진 행복이니까.

멋진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보자고.


세상에 우리 엄마같은 대단한 엄마들이 있다면, 나처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엄마들도 있겠거니,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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