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한 건 없지만 그래도 한 건 많았다.
2018년, 별 생각 없었는데 연말이 다가오다보니 올해가 한국 나이로 나의 마지막 20대인 걸 알게되었다. 내년이면 앞 자리가 3으로 바뀐다니 세상에 어떻게 이럴수가.(세상도 함께 무너져버리는거 아닐까?) 하지만 한국 나이로는 30이지만 세계 표준 나이로는 내년에도 20대이다. 한국 나이를 없애버리자!
여하튼 올해의 목표는 다름 아닌 '퇴사' 였다. 직장인으로서는 너무 뻔한가?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나름대로 구체적인 퇴사의 수단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 목숨을 걸면서까지 빡세게 하진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일들을 직장 일과 병행하면서 어디까지나 취미로 즐겼다. 취미였기 때문일까 직장을 탈출할 정도까지의 성과는 없었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행복한 방식이었다. 내가 올해 해왔던 것들을 정리해보는 글을 써보고자 한다.
올해 했던 것들 중 가장 우선 순위가 높았던 것은 "음악" 이었다. 처음으로 음악을 만들었던 때는 대략 6년 전 이었다. 그 이후 음악을 꾸준히 만들고, 몇 번의 공연들을 해왔지만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아니 음악만이 아니라 내가 갖게 될 직업, 한 평생 혹은 최소한 30년은 주 5일을 꾸준히 해야할 직업이라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2년 전 어느 회사에 취직하게 되어 일을 하면서, 나는 회사에서의 일이 나쁘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첫째로 회사 일은 굉장히 수학적이어서 내게 잘 맞지 않았고(이과생이지만 수학을 제일 못했다), 둘째로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싶은 일이면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음악을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뮤직 비디오-
올해 초에는 뮤직비디오 두 편을 만들었다. 예전부터 만들어보고 싶은 뮤직비디오 컨셉이 있었다. 첫 번째는 "황혼"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다. 군인 훈련병 시절 교육장에서 어떤 교육을 듣고 있었다. 빔 프로젝트로 영상을 보느라 교육장은 불을 끄고 관람을 하고 있었는데 해가지고 난 뒤라 교육장은 어두컴컴했다. 영상이 끝나고 어떤 간부가 올라와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글자가 왼쪽으로 흐르는 옛날 윈도우의 화면보호기가 켜졌다. 그때 교육을 진행하던 간부의 얼굴 위로 하얀 글자가 빛을 내며 지나가는데 굉장히 느낌이 특이했다. 이것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번 뮤직비디오에 써먹게 되었다.
촬영 도와줄 사람, 출연할 사람, 장소 섭외, 영상 기획까지 모든 걸 혼자서 했었는데, 어려운 일이었지만 나에겐 좋은 경험이 되었다. 처음 해봐서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몰랐지만 역시 이런 일은 정답이 없는 것 같다. 그냥 내가 하고싶은 방식대로 해버리면 그게 하나의 사건이 되고, 기록이 되고, 기준이 된다. 아쉬운건 실제로 음원에 쓰일 정도의 퀄리티 있는 녹음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잘 들어보면 노트북으로 녹음하니 파워 문제로 틱틱 거리는 소리가 녹음되어 있다.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L_DPDRZMH68
두 번째 뮤비는 "친구들"이라는 노래의 뮤직 비디오로 친구들의 뒤통수를 찍어서 이은 영상이었다. 친구들 중 한명이 결혼해서 결혼식 날에 다같이 찍기도 했고, 여러 날에 걸쳐서 친구들을 만나게 될 일이 있을 때마다 찍었다. 이때는 영상 만드는 것도 잘 몰랐어서 지금 다시 보니 화질이 살짝 아쉽네. 뮤직 비디오를 찍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고, 친한 친구들이 뮤직 비디오에 등장하니까 나에겐 너무 좋았다. 노래의 가사도 친구들에 대한 헌정이라 가사와 노래도 일치해서 마음에 들었다.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AoGXEEXsVsg
뮤직비디오는 사실 음원을 발매할 때 같이 공개하는게 전략적으로 더 좋긴 한데 그냥 하고싶어서 해버렸다. 음원은 밴드캠프에 올렸긴 했지만 잡음이 많아서 제대로 녹음해서 국내 음원 시장에 발매할 계획이다. 아마 내년 초 정도에.
뮤직 비디오는 만드는 것도 재밌었고 결과물도 나름 만족하지만 크게 홍보가 되진 않았다. 내가 딱히 홍보하지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음악 사이트에다가도 좀 올려볼걸 그랬다.
-공연-
그 다음에 음원 녹음을 가장 먼저 해야했지만 공연을 더 하고 싶었나보다. 홍대의 클럽 빵에 오디션을 지원했다. 클럽 빵은 홍대의 역사가 깊은 라이브 클럽이다. 그렇기에 오디션은 굉장히 긴장되었다. 평일 수요일 공연이 끝나고 오디션이 시작되었는데 오디션을 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5팀 정도 있었다. 내 순서는 두번째로 정해졌다. 한 사람당 두 곡씩 준비해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첫 번째 사람의 첫 곡이 끝나자 오디션 심사하시는 분이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말하시면서 내려오라고 하시는게 아닌가 헉. 그래서 엔지니어에게 두 곡이 맞냐고 하니까 맞다고 그러셨다. 내 계획은 하이라이트가 되는 곡을 두 번째에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도 첫 번째 곡만 하고 그만하라고 할까봐 전략을 바꿔서 하이라이트 곡을 첫 번째에 했다.
하이라이트 곡이다 보니 화려한 연주도 많고, 첫 번째 곡이라 손도 덜 풀리고, 긴장도 많이 되서 실수를 굉장히 많이 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하이라이트 곡을 두번째에 하려고 했던건데) 다행히도 두 번째 곡 까지 노래를 하고 오디션을 마쳤다. 모든 오디션이 끝나자 모든 사람들을 모아서 한 사람마다 음악적인 쓴소리(?)를 해주셨다. 그리고 공연을 하게되면 연락을 주시고, 공연을 안하게 되면 연락은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집에 돌아가서 연락이 올지 안올지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지. 한 일주일이 지나자 안됐나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프로의 길은 어렵구나. 더 열심히 해야지 하면서도 우울해했다. 나름 나의 가장 좋은 노래들을 보여드렸는데...
그런데 열흘 정도 되었을 때 연락이 왔다! 다음달 공연을 하자고 하셨다. 그때가 정말 얼마나 기뻤는지. 그렇게 3달(한 달에 한 번씩) 공연을 했고, 운좋게 기회를 얻어 파주의 PATI 라는 대학교에서도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음악 레슨-
뮤직비디오 촬영을 도와준 형이 작곡 레슨 수업을 들어보라고 그랬다. 사실 나는 게을러서 더 이상 앨범 녹음으로의 진전이 나아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1:1 개인 레슨 수업을 듣기로 마음먹었다. 매주 두 시간을 듣는 수업인데 나는 워낙 궁금증이 많아서 두 시간 내내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 수업을 들으며 생기는 의문점들을 열심히 질문하며 수업을 알차게 보냈다. 심지어 너무 질문이 많이 생겨서 궁금한게 생겨도 진도를 나가기 위해 질문을 자제하기도 했다. 그렇게 5월부터 11월까지 레슨 수업을 듣다가 이번 달부터는 레슨을 좀 쉬려고 한다.
레슨을 들으면서 좋았던 것은 음악 이론을 공부하게 되는 것, 내 음악에 어떤 음악 이론이 쓰였는지를 알게 되는 것, 내 돈 내고 듣는 수업이기 때문에 음악을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하게 음악을 공부하고 작곡을 한다는게 좋았다. 타의에 의해(?) 작업을 하게 되니(숙제를 못해가는게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 뭐 그렇다고 뚜렷한 성과는 없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매일 퇴근하고 나면 음악 작업을 했고, 주말에 일요일에도 하루 종일 음악 작업을 했다. 그렇게 부지런히 음악을 하다보니 깨달은게 있다. 음악 작업을 한다는게, 작곡을 업으로 삼는다는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 작곡하는거 되게 하기 싫은 일이구나, 어떤 일이든 재밌기만 한 건 아니구나 라는걸 깨달았다.
그치만 음악을 계속 하고 싶은건 힘들어도 하고 싶은 일이어서가 아닐까.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해야하는게 아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내년에는 솔로 앨범을 녹음하고 음원을 발매하며 더욱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해보고 싶다.
-맥주 유투브-
최근 들어 나의 관심사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신흥 세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맥주'이다. 크래프트 맥주를 마신지는 꽤 되었는데 내가 유투브 보는 걸 좋아하다보니 맥주로 유투브를 찍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고, 브루어리나 브루펍에 맥주를 마시러가면서 살면서 너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물론 유투브는 요새 워낙 레드 오션이라 돈을 버는건 쉽지 않겠지만. 그치만 영상을 만들고 영상을 만들기 위해 맥주를 공부를 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영상 편집은 너무 재미없다...)
지금까지 총 4편을 유투브에 올렸다. 유투브에서 아직 큰 반응은 없지만 나름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만든 영상이라 자부한다. 아직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시행 착오를 겪고 있다. 하지만 매 편 올릴 때 마다 내가 조금씩 발전하는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인디카 편의 경우 맥주의 맛부터, 라벨 디자인, 브루어리 및 창업자 소개, 수입사에 대한 이야기까지 해서 총 3편이나 제작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한편만 보는 사람에겐 영상에 대한 재미가 줄어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음 편은 영국식 IPA에 대한 리뷰를 해보려고 한다.
유투브 링크 : https://www.youtube.com/channel/UC2xULKT3EsqelBSulF_1t0Q/featured?view_as=subscriber
글을 쓰다보니 의도치않게 광고를 하는 느낌의 글을 쓰게된 것 같다. 사실 광고를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한 것도 없는데 올해가 다 가버렸네!' 라고 생각하기 쉬운 연말을, 내가 했던 일을 찬찬히 나열해보면서 '그래도 나 한게 없진 않지.' 라고 생각하며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글을 썼다. 나처럼 작은 일이라도 올해에 했던 일들을 적어보면 올해에 그래도 한 일들이 꽤 있구나 생각하며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도 올해에 했던 일들을 한 번 정리해보시면 좋지 않을까.
앞으로 브런치에는 내 음악에 대한 작업 일기와 맥주 유투브에 올리게 되는 영상을 글로 풀어서 적어보려고 한다. 다들 연말 잘 보내시고 추운데 감기 조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