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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d Enabler May 08. 2022

주말의 짧고, 긴 생각

처음에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나의 질문을 통해 그 생각이 발전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성장 씨앗을 심는 것에 기쁨을 느꼈었다.

어떤 영향이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의 기쁨이란 것이 있었다.


코칭 질문의 강력함을 느끼며, 역시 '코칭의 핵심은 질문이지' 라며, 코칭을 받는 사람에게, 나에게, 아이에게도 강력한 질문을 들이밀었다. 코칭 시간이 차 오르면서, 1차원적 사고와 기쁨에 대한 사고의 껍질을 벗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인정이구나'라는 두 번째 계단에 올랐다.


나와 다른 사고에 대해 순간의 꼴깍이 아닌, 진실한 인정이 이루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여정이었다. 인정의 계단을 지나는 동안 타인과 손을 잡아 온기를 느끼면, 그 순간 아이의 눈과 직면하고, 그 속의 나를 만났다.


인정의 힘이 열리니,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들이 뿜어내는 모든 주파수를 받아들이고, 숨어있는 마음속 불편의 손등을 뒤집어 희망의 손바닥을 보여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 힘겨웠던 계단을 거쳐 도달했던 것은 믿음으로 둘러싸인 투명 계단이었다.


상대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내가 그 계단을 걷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을 만큼, 투명한 계단.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자,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임을 굳건히 믿어야 보이는 네 번째 계단은 타인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그것은 '나'라는 카펫부터가 시작임을 계단 첫머리에 서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난 땅 위에 있었다.


그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은 과정 동안 불완전한 나와의 생각 나눔 속에 자신을 바라보고, 에너지를 얻어 변화하는 이들을 보며, 결국은 내 역할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나에게 코칭이란 본능적 이끌림과 단순한 재미를 넘어,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자 완전하고자 끊임없이 추구하는 존재를 느끼는 그 자체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음에도, 모든 것을 다 가지지 못함을 느끼는 나란 존재를 계몽시켜 주는 일이며, 타인으로부터 그것을 배우는 과정이고, 나와 그가 결국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이다.


태초에 빅뱅이 있었어. 물질과 반물질이 있었지. 이것들이 합치면 빛이야. 엄청난 에너지지.
그런데 반물질보다 물질이 더 많으면? 빛이 되다 만 물질의 찌꺼기가 있을 것 아닌가. 그게 바로 우리야. 자네와 나지. 이 책상이고 안경이지. 이건 과학이네. 상상력이 아니야. 우리는 빛이 되지 못한 물질의 찌꺼기, 그 몸을 가지고 사는 거라네.
그런 우리가 반물질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빛이 되는 거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김지수, 이어령 지음


주말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코칭이 나에게 주는 의미, 코칭 안에서 나를 발견해본다. 내가 지금껏 해왔던 일의 가치와 나의 서사를 들여다보며, 한 존재로서의 나와 내 아이를 이어 보고, 동시대의 사람들을 알아가는 의미를 다시 느낀다.

내게 이것이 중요한  이유. 내가 가고 싶은 길... 나를 가슴 뛰게 하는 것, 기쁜 목소리로 말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뇌가 버선발로 달려 나와 한낮에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가는 것들, 그것에 대한 나의 용기를 생각해본다.


여전히 정리되지 않는 많은 것들을 보며, 풀어내고 싶었지만, 10프로도 정리되지 못한 내 생각을 들여다보며, '밥 먹으러 갑시다!' 재촉하는 남편의 성화에 나는 다시 삶으로 뛰어든다.


'언젠간 정리되지 않겠습니까? 하하!' 말하는 나에게, 또 다른 나는 이렇게 말한다.

'꼭 정리되어야 합니까, 그 자체로도 완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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