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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하 Nov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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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에서 올라온 사과는 단단하고 과즙도 풍부하여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입맛에도 맛났다. 오늘 사과 한 봉지를 챙겨 오피스텔 생활을 하고 있는 큰아이에게 다녀왔다. 모처럼 마주 앉아 점심도 같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낙엽 뒹구는 가을 골목을 나란히 걸었다. 돌아오는 길, 안도하면서도 애잔함 또한 드는 내 마음을 보았다.

눈 앞으로는 주마등처럼 태어났을 때부터 유아기 때, 그리고 학창 시절, 그리고 지금 다 큰 처녀가 돼버린 아이의 지난날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이는 이제 아이가 아니라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아이가 돼돌아간 구로동 골목길을 한참 힐끗거렸다.


불가(佛家)의 말 가운데 일일부작 일일 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 이란 말이 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라는 뜻이며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훗날 어려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돈이라는 물질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아내기 어려운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존재만으로 각종 세금을 내야 하고 공과금을 내야 한다. 물 한 컵을 사용해도 돈을 지불해야 하고 먹거리 하나도 돈 없으면 구할 수 없다. 이게 현실이다. 그러니 수행을 하기 위한 일일부작 일일 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 은 언강생심이고 하루하루 빚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게 오늘날의 일일부작 일일 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이다. 즉, 하루 벌지 않으면 그마만큼 빚이 늘어난다 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오랜만에 밤길을 하릴없이 걸었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잠든 아이들 얼굴을 보고 허기진 배 풍기에서 올라온 사과 한 개로 곡기를 채운다. 오늘의 일일부작 일일 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은 사과 한 개였고, 사과를 보내준 친구가 한없이 감사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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