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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하 Mar 05. 2024

선운사 동백은 아니 피고

고창 선운사





도솔천 계곡을 거슬러 선운사에 오른다. 숨소리 하나 제대로 들리지 않을 만큼 늘 엄숙한 절 집의 겨울은 특히나 더 부동(不動)이다. 그나마 한 겨울임에도 절 집을 찾는 객들의 나직한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있어 생기가 느껴지니 다행이다. 


일주문을 지나 대웅보전 뒤 켠을 먼저 찾았다. 동백을 보기 위해서다. 푸른 납자 규율 하는 선방 노스님처럼 선운사 절 집을 감시하듯 지그시 내려보고 있는 선운사 동백나무 숲, 겨울이 한창이어서 동백 숲에는 숨어들던 산새 소리도 들리지 않고 바람에 부딪치는 갈바람 소리도 소슬하기만 하다. 꽃망울은 부풀어 올라 있으나 단단히 앙다물고 속내를 내비치려 하지 않는다. 이렇듯 동백이 꽃망울 열기를 주저하는 것 보니 봄날이 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자생하는 동백나무는 겨울에 꽃을 피워 내기 때문에 특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 겨울 꽃나무이다. 특히 선운사 동백나무 군락지는 일찍이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될 만큼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일대 붉디붉은 꽃빛으로 겨울 한철을 수놓는다. 


 




삭막하고 지루한 겨울날 잿빛 무채색의 풍경 속에 꽃망울 여는 동백은, 그 꽃 색이 붉은빛을 띠고 있어서 유독 눈에 잘 들어오고 뇌리에 오래 각인이 된다. 눈이라도 내려 쌓이면 꽃잎은 더욱더 붉고 선명해져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이 저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선운사 동백꽃 피어 있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가수 송창식은 그가 부른 노래 선운사에서

'나를 두고 떠나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 나실 거예요'

라고 붉은 동백의 아름다움을 이렇듯 애틋하게 표현까지 했을까. 

 

동백 숲을 둘러보고 나서 느릿하게 선운사 경내를 유유자적(悠悠自適)한다. 대웅보전을 한바뀌 돌며 짜임새가 인상적인 섬세한 다포에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선운사 대웅보전은 우리나라 전통사찰의 건축양식에서 많이 쓰인 맞배지붕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런 맞배지붕 형태의 건축물들은 얼핏 보면 상층부에 기왓장을 비롯해 많은 목재가 올려져 있어 무게중심이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면과 측면의 기둥 배치와 세밀하게 엮어내어 무게를 분산시킨 목조 구조물들로 인해 수백여 년의 세월이 흘러도 견고하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선운사에는 대웅보전뿐만 아니라 만세루를 비롯하여 영산전, 산신각 등 조성된 지 수백여 년이 된 건축물들이 여러 차례 중수과정을 거치며 잘 보전되어 있다. 또한 보물 제280호로 지정되어 있는 지장보살좌상 등 많은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다. 







선운사 동백은 긴 겨울을 지나고 있다. 그래도 몇몇 성급한 녀석들은 붉은 꽃잎을 살짝 드러내며 꽃망울 터뜨릴 채비를 하고 있다. 이는 곧 봄이 올 거라는 무언의 알림이겠지. 우리들 모두에게도 이처럼 동백 따라 마음의 봄이 함께 와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욕심일까?


눈 소식이 들리면 혼자서라도 슬쩍 선운사를 한번 더 다녀와야겠다. 속세를 떠나지는 못하지만 찰나 같은 한 순간 만이라도 세상 시름 잊고자 붉디붉은 동백꽃잎에 내 맘, 마저 흠뻑 물들여 봐야겠다. 붉게 물들인 그 마음으로 다시 올 봄날을 기다려 보며 말이다.



*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에 있는 사찰이다.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에 의해 창건된 선운사는 그 역사가 천 년에 이른다. 절로 가는 초입의 도솔천 풍경은 사계절 내내 아름 다우며 절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동백나무 군락지가 유명하다. 동백나무 또한 수령이 5백 년이나 되었다 하는데 천연기념물 제184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그 외에도 대웅보전 등 많은 보물과 도솔암을 품고 있는 도솔산은 그 경관이 뺴어난 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황하와떠나는달팽이여행 #고창선운사 #선운사동백 #국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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