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데드》가 던진 질문들
최근에서야 《워킹데드》를 봤다.
사실 미드를 잘 보지 않는다.
방대한 시즌 분량에 압도당하기도 하고,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쉽게 손댈 수가 없다.
그래도 OTT가 보편화된 요즘엔 조금씩 도장 깨기 중이다.
<프렌즈> (영어 배우던 시절에도 굳이 안 본) 전 시즌, <밴드 오브 브라더스> 같은 클래식 미드들을 하나씩 정주행 해가는 중이었다.
최근 시간 여유가 생긴 참에, 놓치고 있던 현대의 클래식과 마주하게 됐다.
늦게 시작했지만, 시즌 1부터 8까지를 밤 잠 줄이며 일주일 만에 몰아봤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시리즈는 좀비 이야기인 척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점 만으로 수준 높은 작품이다.
좀비는 단지 배경일뿐, 결국 사람 이야기를 한다.
사람이 어떤 순간에 선해지고, 어떤 계기로 망가지는지를 선명하게 그린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
《워킹데드》는 어떤 행동이 옳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누구를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그 선택 뒤에 있는 맥락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직접 판단하게 한다.
단순한 생존 게임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과 “사람으로 남는 것” 사이의 갈등을 그린다.
붕괴 속에서 피어난 선택들
[릭 – 흔들려도 끝까지 사람이고자 한 자]
앤드류 링컨 - 러브 액츄얼리의 스케치북 고백남.
릭의 캐릭터가 나타내는 메시지 - “사람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그는 단순히 ‘살아남는 법’을 고민하는 인물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남는 법”을 고민하는 리더다.
하지만 그의 믿음과 신념은 끊임없이 도전받는다.
사람을 위해 선택한 일이 오히려 사람의 반발을 부르기도 하고,
공동체를 지키려는 결정이 때론 배신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릭은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려 하지만,
그의 선한 의도가 언제나 옳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스스로의 가치관에 대한 고민과 갈등,
‘지킨다'는 신념 아래 행한 폭력, 잃어가는 인간성 또한 잘 묘사된다.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다.
릭의 결정 하나하나에 대해, 드라마는 절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주변 인물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옳고 그름을 말하고,
관객은 그 안에서 스스로 고민하게 된다.
릭은 그 모든 혼란 속에서도,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인물이다.
군림하지 않고, 오직 지켜야 할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사람.
그의 존재는, 선한 리더십이 얼마나 복잡하고 고독한 길인지를 보여준다.
이 시리즈가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길에 대한 옳고 그름을 쉽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릭은 강인한 캐릭터지만, 동시에 두려워하고, 실수하고, 끊임없이 흔들린다.
옳은 길이란 무엇인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싸우면서도, 인간적인 본모습을 잃지 않는다는 건 가능한 일일까.
사람은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 선택이 폭력일 수도, 용서일 수도 있다.
그 어떤 것도 쉬운 결말은 없지만,
사람은 결국 자신이 선택한 모습으로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준다.
[칼 – 선함을 남기고 떠난 아이]
칼의 퇴장은 시청자에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당신은 선한 사람이다. 그런 모습을 잃지 마라.”
시즌 1부터 시즌 8까지, 그는 아버지 곁에서 함께 성장했다.
살아남는 법을 익히고, 공동체를 지켜야 할 책임감과 인간다움을 동시에 배워간 인물.
리더십, 판단력, 공감력—모두를 갖추며 이 세계의 다음 세대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랬기에 그의 퇴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떠돌이 하나를 구하려다 좀비에게 물려 죽는다는 설정은,
제작진에 의해 드라마가 얼마나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워질 수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그가 데려온 떠돌이는 귀중한 의사 역할 하긴 한다.)
억지스러운 전개 속에서도, 칼의 마지막 대사는 시리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선한 본성을 잃지 말고 살아가라."
릭은 “다 너를 위해서였어”라고 되뇌지만,
칼은 그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여야 한다고 말한다.
폭력과 분노, 처절한 생존 속에서도 인간은 스스로의 선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칼의 죽음 장면이 드라마의 핵심 주제를 전달한다.
이미 끝장난 듯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끝까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 이 시점부터, 이 드라마는 본래의 빛을 잃기 시작한다.(고 한다. 난 안 봤지만)
[글렌 – 새로운 아시아인의 얼굴]
글렌은 기존의 동양인 캐릭터와는 확연히 달랐다.
유쾌하면서도 생존 본능이 강하고, 전투력도, 판단력도 뛰어났다.
한때 피자 배달부였다는 설정이 다소 평범하게 느껴졌지만, 오히려 그 평범함과, 리더십의 성장이 이 인물의 매력이었을 지도.
글렌이라는 캐릭터와 스티븐 연이라는 배우는 이 캐릭터를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독립적 주체로서의 아시아인 남성으로 끌어올렸다.
아마도 제작진에 한국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글렌의 죽음은, 이 시리즈에 빠져들게 했던 감정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셰인과 칼 – 가치와 생존의 대립]
셰인은 철저히 생존을 추구한다.
그에게 인간성은 생존을 위해 버릴 수 있는 가치다.
강한 인물이지만, 끝내 릭에게 패배한다.
그건 ‘사람’과 ‘사랑’이라는 더 큰 가치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셰인은 선한 사람이었으나, 생존을 위해 투쟁하며 변해간다. 본연의 모습이 나타난 걸지도.
좀비화된 세상에서도 친구를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고,
친구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생존자 그룹을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감정을 가리지 않았고,
때로는 그것이 생존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내면에는 폭력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제어되지 않기 시작했다.
그의 비뚤어진 애정 — 릭의 아내 로리와 아들 칼에게 쏟았던 감정
그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에 가까웠고, (사실 이건 로리가 bixxx라고 생각함)
그 감정이 폭발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셰인은 위험한 존재가 되어갔다.
릭은 결국 셰인을 죽인다.
읍참마속.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리더의 단호하고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
물론 그 선택이 무조건 옳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셰인은 분명 생존에 유용한 자원이었고,
어떤 시점에서는 릭보다도 더 빠르고 냉정한 판단을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선과 악의 경계가 아닌,
누가 끝까지 사람으로 남았는지를 전한다.
[모건 – 지금의 나를 가장 닮은 사람]
모건은 내면의 혼란 그 자체다.
좀비가 된 아내를 쏘지 못했고, 그것이 결국 아들을 죽게 만들었다.
그 후 사람도 좀비도 구분 없이 죽이며 방황하던 그는, 어느 순간 무술 사부를 만나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배운다.
문제는,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죽이지 않음’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받게 된다는 점이다.
죽이는 것이 죄인가, 죽이지 않는 것이 죄인가.
모건은 이 질문 속에서 계속 무너지고, 방황하고, 다시 일어난다.
이 드라마의 가장 위대한 점은, 이 질문에 대해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건이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졌고, 때로는 내 모습 같기도 했다.
[유진과 드와이트 – 현실적인 인간들]
유진은 전형적인 소시민이다.
비겁하지만, 때때로 각성하기도 한다.
현실적인 인물이며, 그의 소심함은 많은 사람들의 거울이 된다.
드와이트는 선한 인물이었지만, 생존을 위해 아내를 네간에게 빼앗긴 후 인간성을 포기했다.
하지만 결국, 대릴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가 어떤 사람이어야 했는지 깨닫는다.
평범한 인간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리고 여기서 묻게 된다.
이 사람들을 정말 비난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 보이게 될 모습이 바로 이들이 아닐까.
참고로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라이언 일병 구하기》(안 봤으면 꼭 보길 바람)에서 업햄’에 대한 대중의 비난을 보고,
"그 캐릭터는 비겁자가 아니라, 극한의 상황 속 발생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캐릭터에 대한 과한 비난은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유진이나 드와이트도 비슷하겠지. 이 드라마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줄 뿐이다.
[대릴 –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대릴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독특한 캐릭터 중 하나다.
말수가 적고, 거칠며,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성격.
주변부 인물인데, 스토리의 중심으로 점점 떠오른다.
미국인들은 이런 인물을 유독 좋아한다.
'Badass' 캐릭터.
자기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엔 나서고,
자기희생을 자랑하지 않으면서도 공동체를 지킨다.
스스로는 리더가 아니라고 믿지만, 모두가 그를 따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초기 영화들, 《로건》의 울버린 같은 캐릭터들.
비슷한 결의, 말 없는 영웅의 모습.
현실에서는 말 잘하고 나서길 좋아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지만,
미국 대중문화 안에서는 이런 인물이 ‘진짜 리더’로 이상화된다.
말보다 행동, 리더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모두가 따르는 사람.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중심에 설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싶다.
[에제키엘 – 연기로 시작된 책임]
에제키엘은 원래 동물원 사육사였지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왕’이라는 역할을 자처한다.
처음엔 연기였지만, 점점 그 역할 속에서 책임감을 갖게 되고
결국 진짜 리더로 성장한다.
의도하지 않은 선택이, 결국 자신의 일부가 되는 모습.
이 드라마는 그런 조용한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에제키엘을 통해, 중요한 메시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어떤 역할을 선택하느냐가 결국 우리를 만든다.”
에제키엘은 진짜 왕이 아니지만, 모두가 그를 왕으로 여기면서 그는 정말 왕의 역할에 대해 자각하고, 실현한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모습이 곧 우리의 본모습이 된다.
해리 포터에서도 나오는 말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별도 작품이다만 내가 생각하는 해리 포터 세계관의 두 핵심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가장 위대한 능력은 사랑이다.”)
[미국은 왜 이야기를 잘 만들까]
이 드라마를 보며 다시 한번 느꼈다.
미국 콘텐츠의 힘은 단지 자본과 기술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좌우의 진영 논리를 떠나, 설교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를 쌓고, 시청자에게 판단을 맡긴다.
만약 이게 한국 드라마였다면 어땠을까.
조선시대나 현대사의 정치적 시각을 강요하거나,
특정 이념을 떠받드는 듯한 설정이 들어갔겠지.
혹은 감독의 세계관과 철학을 관객에게 주입하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적어도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러한 강요를 삼간다.
(헐리우드의 특정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정치조차 하나의 문화로 소비하며,
유쾌하게 혹은 치열하게 그려낸다.
항상 이러한 면에서, 미국 콘텐츠의 세련미를 느낀다.
설령 이 말이 사대주의로 비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좋은 건, 좋은 거니까.
잘 만든 건 잘 만든 거고,
배울 건 배워야 한다.
한국이 문화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걸 인정한다고 해서,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인식이 있어야 따라잡을 수 있다.
최근 오징어 게임을 보며(1조차 최근에서야 봤다. 욕하려면 보고 욕하려고.), 씁쓸함을 느꼈다.
감독의 자아만 비대해져 있었고,
배우들은 ‘뜬 작품’에 나와 ‘나도 여기 나왔으니 인스타 팔로워 늘겠지’같은, 계산기를 두드리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스토리는 억지스러웠고,
평소 연기를 잘하던 배우들조차 조악한 캐릭터 안에서 빛을 잃었다.
스토리의 참신함(개인적으로는 별로지만) 까지는 인정해도,
과한 메시지의 거북함, 아니 메시지 자체의 촌스러움.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지금,
오히려 더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순간이라는 걸
15년 전 드라마를 통해 실감하게 된다.
선택의 연속, 그리고 인간
결국 시즌 8까지만 보고 멈췄다.
글렌과 칼이 죽고 나서, 볼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 (안 봤지만) 주인공 릭이 떠난 후, 더는 이전의 시리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이유로 스타워즈 1 - 6 빼고는 스타워즈가 아니라고 생각함)
이 드라마는 수없이 반복되는 ‘선택’의 순간들로 가득하다.
때로는 선한 의도가 예상치 못한 비극을 낳고,
때로는 망설인 선택이 모두를 살리기도 한다.
그 누구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믿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
그것이 이 드라마의 진짜 주제이고,
내가 이 시리즈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시리즈를 보는 내내 느꼈다.
누구든 끝없는 선택 앞에 놓인다고.
그 선택은 때로 사람을 살리지만, 또 누군가를 잃게도 만든다고.
중요한 건 옳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과정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