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마음에 관한 짧은 낙서
“아 그러니까 이게 진짜 코코아 가루란 말이지?”
“속고만 살았수? 카카오 콩을 신나게 볶은 다음에 절구에 넣고 빻아서 만든 거, 보면 몰라?”
“좋아. 이걸로 하지.”
발렌티노씨는 지금껏 한 번도 마을을 떠난 적이 없는 시골뜨기였다. 그런 그가 20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왔을 때, 그곳은 온통 신기한 것들로 가득찬 별천지였다.
물론 다른 것들도 다 신기했지만,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노점상 구석에 놓여있던 유리병이었다. 그 병 안에는 코코아 가루가 가득 담겨 매력적인 향을 내뿜고 있었다.
“이걸로 그 초콜릿이라는 신기한 과자를 만들 수 있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좋아. 내 기꺼이 사지.”
그렇게 발렌티노씨는 큰 돈을 주고 생전 처음 보는 코코아 가루를 한아름 품에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피부가 유난히 하얀 발렌티노씨와 그가 애지중지 보듬은 검은 코코아 가루가 대비를 이루며 주민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아니 발렌티노. 그게 대체 뭔가?”
“아~ 이거요? 제가 도시에서 거금을 주고 산 신비한 가루랍니다!”
“신비한 가루? 뭐에 쓰는건데?”
“초콜릿을 만들때 쓰죠.”
“그깟 쌉싸름한 과자가 뭐가 신기하단 말인가? 자네 괜히 장사꾼에게 속은거 아닌가?”
“아~ 거참~ 모르면 가만히 계세요~”
발렌티노씨는 귀찮다는 듯 서둘러 유리병을 안고 집으로 들어가 대문을 잠궈버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발렌티노씨는 계속해서 초콜릿을 만들었고 발렌티노씨의 집에선 연일 달콤한 향이 풍겨나왔다.
하지만 왠일인지 발렌티노씨는 좀처럼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이웃주민들이 창문틈으로 기웃거려보았지만 별 수확이 없었다. 발렌티노씨는 그저 부엌에서 계속 초콜릿 만들기에 열중할 뿐이었다.
“대체 어떤 초콜릿을 만들길래 저러지?”
“얼마나 맛있는걸 만들길래 저리 열심일까?”
시간이 갈수록 주민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고, 근거없는 소문들만 무성하게 마을을 뒤덮었다. 대부분이 발렌티노씨의 신기한 초콜릿에 대한 기대감이었지만 간혹 질투심 많은 주민들은 악담을 퍼뜨리기도 했다.
“그걸 먹게되면 발렌티노씨의 뜻대로 조종당한대요.”
“정말요? 세상에나... 발렌티노씨가 그럴리가...”
“진짜라니까~ 그저께도 글쎄 부엌에서 초콜릿을 만들다말고 섬뜩하게 희죽거리기도 하고,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는 것 같았어.”
“맞아! 뭐라고 하더라?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니야..] 라고 하더라고.”
“이거 큰일인걸. 시장님께 말씀드려야겠네요.”
“맞아! 이건 예사로 넘길 일이 아냐! 어서 가세!”
일파만파로 커진 의혹들은 결국 시장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시장 역시 주민들과 뜻을 같이했다. 이에 시장은 마을의 경찰들을 동원해 발렌티노씨의 집 주변을 애워싸고 그를 불렀다.
“이보게, 발렌티노. 자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지 어디 설명해보게.”
“저… 그게….”
“대체 뭘 뜸들이는겐가!! 어서 대답하게! 안그러면 자넨 감옥행이야!”
“저… 그러니까...”
“말을 하란말이야! 주민들이 매일 내게 호소하고 있네. 자네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야겠어! 어서!”
“시장님. 저는 단지 초콜릿을 만들고 있을 뿐입...”
“거짓말마! 내가 다 봤어! 당신! 그걸로 마을 아이들을 홀리려는거지?”
“이 악마같으니라고. 저런 건 마을에서 추방시켜야해!”
주민들은 악의에 찬 목소리로 발렌티노를 비난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경찰들의 눈동자에도 이미 핏발이 서 있었다. 서서히 군중들이 그를 옥죄어오고 경찰들은 곤봉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 자칫하다가는 이대로 발렌티노씨의 온전한 모습도 마지막인듯 했다.
“잠깐! 멈추시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모두가 고개를 돌렸을때, 그곳에는 발렌티노씨가 마을로 돌아와 처음 만났던 마케티누 아저씨가 서 있었다.
“내가, 내가 다 설명하겠소. 발렌티노가 만들 초콜릿의 비밀을..”
주민들은 모두 숨죽여 마케티누씨의 떨리는 입술만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막 움직이려는 찰나,
“아저씨 안돼요! 말하면 안돼! 그걸 말하면 아저씨도 용서하지 않을겁니다!”
“그것봐. 발렌티노 저녀석! 뭔가 꿍꿍이가 있는게 틀림없어!”
“발렌티노야 진정하렴. 이건 어차피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그치만 그건…”
“자, 여러분! 발렌티노는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착실한 일꾼입니다. 그런 발렌티노가 최근 들어 초콜릿을 만든다며 수상한 행동을 보인건 사실입니다. 허나! 그건 다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이유가 뭐냐~ 이유를 말해라~! 어서 얘기해주시오!”
여기저기서 주민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그 이유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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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발렌티노의 마을에서는 매년 2월 14일이 되기를 기다려, 초콜릿을 만들어 이웃 마을에 판매해 큰 수익을 남겼다고한다.
마침 오늘이 발렌타인 데이였고, 오래 전에 장난삼아 적어두었던 글이 생각나서 옮겨본다. 당시에 나는 한창 마케팅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고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문화가 마케팅의 결과였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게다가 그 마케팅의 주인공은 전범기업이기도 하다).
간단히 마음을 전하는 법을 알려준 캠페인에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과 ‘성장' 이야말로 인생의 키워드라고 믿는 나는, 그 중 한가지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캠페인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었다.
아마 이 영화도 때를 기다려 국내에 개봉한 것이겠고. 절묘한 타이밍을 잡은 배급사도, 알면서도 속아주는 관객들도, 부디 행복한 시절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