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매일 쓰는 것들의 진짜 이야기

복사하기, 붙여넣기부터 아이폰까지

by 장준혁
Photo by Jonas Vandermeiren on Unsplash


어떤 월요일


오늘도 컴퓨터를 켜고 브라우저를 열었다. 몇 개의 탭을 띄우고, 문서를 복사해서 붙여넣고,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확인한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모든 행동들은 언제부터, 누가 만든 걸까?


진정한 덕후는 좋아하는 것의 역사까지 궁금해하기 마련이고, 지금의 나는 예전과 다른 포지션으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UI·UX의 덕후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복사하기(Ctrl+C)를 누를 때마다,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내 손끝에서 실행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있나? 스마트폰을 아래로 당겨서 새로고침할 때, 이 제스처를 처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디지털 경험 뒤에는 60여년에 걸친 혁신가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1960년대 — 모든 것의 시작


Ivan Sutherland: 화면에 그림을 그린다는 상상


1963년, MIT 연구실. 당시 컴퓨터는 텍스트 명령어만 입력할 수 있는 거대한 기계였다. 그런데 아이번 서덜랜드라는 사람이 Sketchpad라는걸 만들었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화면에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 시절엔 혁명이었다. 컴퓨터와 ‘그림을 그리며 소통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까.


Douglas Engelbart: 90분간의 미래 예고편


1968년 12월 9일. “Mother of All Demos”라고 불리는 90분간의 발표가 있었다.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마우스, 윈도우, 하이퍼텍스트를 처음으로 세상에 보여준 날이다.


영상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사람들이 마우스라는 걸 처음 보는 표정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 90분이 이후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방향을 다 정해버렸다.




1970년대 — 일상이 된 혁신들


Larry Tesler: 하루에 몇 번이나 쓰는 걸까


복사하기(Copy), 잘라내기(Cut), 붙여넣기(Paste). 이걸 하루에 몇 번이나 쓰는지 세어본 적이 있나? 나는 아마 수백 번은 쓸 것 같은데, 이 모든 게 래리 테슬러 한 사람의 아이디어였다.


Xerox PARC에서 일하던 그는 “모드리스 UI”라는 개념도 만들었다. 복잡한 명령어 모드를 외울 필요 없이 직관적으로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만든 것. 덕분에 우리는 컴퓨터 매뉴얼을 달달 외우지 않아도 된다.


Alan Kay: 미래를 발명한 사람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발명하는 것이다.”


앨런 케이가 한 말인데, 정말로 그가 그걸 해냈다. 1970년대에 Dynabook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지금의 아이패드나 노트북과 거의 똑같다. 50년 전에 이미 우리가 쓰는 컴퓨터의 모습을 상상했던 거다.


Dan Bricklin & Bob Frankston: 계산기의 진화


1979년, 하버드 MBA 학생 둘이 만든 VisiCalc. 세계 최초의 스프레드시트다. 엑셀의 할아버지뻘 되는 프로그램인데, 이게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터뜨렸다.


복잡한 계산을 표 형태로 보여준다는 아이디어. 지금은 너무 당연하지만, 그때는 혁신이었다.




1980년대 — 맥과 아이콘의 시대


Susan Kare: 32×32 픽셀의 마법사


맥의 쓰레기통 아이콘, 웃는 맥 얼굴, 폴더 모양. 이 모든 걸 수잔 케어 한 사람이 디자인했다. 32×32 픽셀이라는 작은 공간에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린 것.


40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그대로 쓰고 있다. 정말 대단한 일 아닌가? 아이콘 디자인의 교과서를 혼자서 다 써버린 셈이다.


Norm Cox: 세 개의 선이 세상을 바꿨다


☰ 햄버거 버튼.


이 간단한 세 개의 수평선이 1981년 처음 등장했다. 놈 콕스가 Xerox Star에서 만든 건데, 지금 우리가 쓰는 모든 앱에 들어있다. 메뉴가 숨겨져 있다는 걸 이렇게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니.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이렇게 오래갈 줄 누가 알았을까.




1990년대 — 웹과 사용성의 시대


Don Norman: “사용자 경험”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


User Experience”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 『Design of Everyday Things』라는 책을 쓰기도 했는데, UX 하는 사람들의 필독서다.


그의 가장 큰 통찰: “사용자가 잘못 사용하는 게 아니라 잘못 디자인된 것이다.”


문을 밀어야 하는지 당겨야 하는지 헷갈린다면, 사용자가 멍청한 게 아니라 문 디자인이 나쁜 것. 이런 당연한 걸 당연하게 말해준 사람이다.


Jakob Nielsen: 사용성의 10가지 원칙


제이콥 닐슨의 10가지 사용성 휴리스틱. 3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쓰인다. 시스템 상태를 명확히 보여주라, 실제 세상과 일치하게 만들어라, 사용자가 통제할 수 있게 하라…


이런 원칙들이 있어서 우리가 새로운 앱을 써도 어떻게 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Tim Berners-Lee: 전 세계를 링크로 연결한 사람


1989년 CERN의 한 연구원이 제안서를 냈다. “전 세계의 정보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그게 월드 와이드 웹이다.


하이퍼링크라는 개념으로 전 세계 문서들을 연결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당신이 읽을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2000년대 — 스마트폰이 온 세상


Steve Jobs: 주머니 속 1,000곡


“1,000곡을 주머니에.” iPod 광고 카피다.


스티브 잡스는 복잡한 기술을 단순하고 아름다운 경험으로 바꾸는 데 천재였다. 2007년 iPhone이 나왔을 때, 정말 모든 게 바뀌었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컴퓨터를 손에 들고 다니게 된 순간이었다.


Alan Cooper: 사용자가 누구냐고 물어본 사람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하면서 정작 사용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앨런 쿠퍼가 페르소나(Persona) 개념을 도입한 이유다.


“25세 직장인 여성 김민지씨, 출퇴근에 지하철을 이용하며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본다…”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사용자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추상적인 ‘사용자’ 대신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디자인하게 된 것이다.


Luke Wroblewski: 모바일부터 시작하자


Mobile First.” 모바일을 먼저 고려하고 데스크톱은 나중에 생각하자는 아이디어.


루크 로블르스키가 제시한 이 개념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었다. 작고 제약이 많은 화면에서 시작하면 정말 중요한 것만 남게 된다. 결국 더 집중되고 좋은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통찰이었다.




2010년대 — 손가락으로 세상을 조작하다


Loren Brichter: 당겨서 새로고침의 아버지


2009년, Tweetie라는 트위터 앱에서 처음 등장한 Pull to Refresh. 화면을 아래로 당기면 새로고침되는 그 제스처 말이다.


로렌 브릭터 한 사람이 만든 건데, 지금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앱에 들어가 있다. 버튼 찾을 필요 없이 자연스러운 제스처로 새로고침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게 진짜 혁신 아닐까. 복잡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직관적인 동작을 이해한 것.


Matías Duarte: 안드로이드를 아름답게 만든 사람


Material Design. 구글의 모든 제품이 같은 디자인 언어를 쓰게 만든 시스템이다.


마티아스 두아르테가 이끌었던 이 시스템은 안드로이드를 단순한 기능 모음에서 아름답고 일관성 있는 경험으로 바꿨다. 종이의 물리적 특성을 디지털에서 구현한다는 아이디어도 참 흥미롭다.


Tristan Harris: 우리의 관심이 납치당한다


“기술이 인간의 관심을 납치하고 있다.”


트리스탄 해리스가 Time Well Spent 운동을 시작한 이유다. 끝없는 스크롤, 계속 오는 알림, 중독적인 앱 디자인들… 이런 걸 만드는 사람들 중 하나가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기술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시간과 관심을 빼앗고 있지 않냐는 질문. 여전히 유효한 고민이다.




2020년대 — AI와 함께 살아가기


Amber Case: 조용한 기술을 위하여


“사이보그 인류학자”로 불리는 앰버 케이스의 Calm Technology 개념.


기술이 시끄럽게 방해하지 말고, 필요할 때만 조용히 도와주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알림과 방해가 넘치는 지금 시대에 더욱 중요한 메시지다.


Josh Clark: AI와 인간이 함께 일하는 법


ChatGPT, 미드저니… AI가 일상화되면서 새로운 종류의 UX 문제들이 생겼다. 조시 클라크는 AI UX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인간과 AI가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까? AI의 결과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게 보여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듯이, 현재 UI·UX 혁신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AI임에 틀림없다. ChatGPT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AI 도구들이 우리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실제로 이 글 역시 AI와 함께 쓴 글이다. 수집한 자료와 생각을 정리한 다음, AI가 문장을 다듬고 구성을 도와주었다.


60년 전 엥겔바트가 마우스로 미래를 보여줬듯이, 지금 우리는 AI와의 협업이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10년 후엔 ‘AI와 함께 글쓰기’도 복사하기/붙여넣기만큼 당연한 일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번외 — 게임에서 배운 UX의 지혜


Shigeru Miyamoto: 재미라는 감정


슈퍼마리오를 만든 미야모토 시게루. Wii의 직관적인 컨트롤러도 그의 작품이다.


게임을 모르는 할머니도 쉽게 쓸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만들었다. ‘재미’라는 감정이 얼마나 강력한 UX 도구인지 보여준 사람이다.


Will Wright: 사용자가 스스로 목표를 만들게 하기


『심시티』의 창조자. 정답이 없는 게임을 만들었다.


사용자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탐험할 수 있는 오픈 엔디드 UX. 도시를 어떻게 만들지는 플레이어가 결정하는 것. 이런 자유도가 창조적 도구의 핵심이다.




60년을 돌아보며


이 긴 여정을 정리해보면 몇 가지 패턴이 보인다.


진짜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 이해에서 나온다
마우스부터 터치 인터페이스까지, 성공한 혁신들은 모두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이해한 것들이었다.


제약이 오히려 창조를 돕는다
32×32 픽셀의 아이콘, 작은 모바일 화면. 제약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결책들이 나왔다.


단순해 보이는 건 쉽지 않다
복사하기/붙여넣기 같은 간단한 기능 뒤에는 수많은 고민이 숨어있다.


좋은 디자인은 시간을 견딘다
40년 전 아이콘들, 30년 전 웹 링크들이 여전히 쓰이는 이유는 인간의 본질적 필요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우리 차례


이 혁신가들이 남긴 가장 큰 메시지는 뭘까?


혁신은 거대한 연구소나 대기업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 대학생이 만든 스프레드시트, 개인 개발자의 Pull to Refresh가 세상을 바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새로운 제스처를,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발명하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가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려고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냥 조금 더 편리하게, 조금 더 아름답게, 조금 더 인간적으로 만들면 된다.


복사하기/붙여넣기처럼 일상이 될 만한 작은 아이디어 하나. 그거면 충분하다.




# 기초 인터페이스 발명가
Douglas Engelbart (마우스, 하이퍼텍스트)
Ivan Sutherland (Sketchpad)
Larry Tesler (Cut/Copy/Paste)
Alan Kay (Dynabook, GUI 개념)
Dan Bricklin & Bob Frankston (스프레드시트)
Bill Atkinson (MacPaint, HyperCard)
Susan Kare (Mac 아이콘)
Norm Cox (햄버거 버튼)
Andy Hertzfeld (Mac UI)
Adele Goldberg (Xerox PARC, Smalltalk)

# UI 패턴/제스처 혁신가
Bas Ording (관성 스크롤, 커버 플로우)
Loren Brichter (Pull to Refresh)
Matías Duarte (Navigation Drawer, Material Design)
Chris Messina (해시태그)
Scott Jenson (Android UX, 모바일 UX 패턴)
Bret Victor (인터랙티브 시각화 UX)
Jef Raskin (Humane Interface)
Don Lindsay (Microsoft UI, Office UX)

# 사용성 & UX 방법론
Don Norman (UX 개념)
Jakob Nielsen (Usability)
Bruce Tognazzini (Apple HIG)
Alan Cooper (Personas, Goal-Directed Design)
Jared Spool (UI/UX 리서치, User Interface Engineering)
Steve Krug (“Don’t Make Me Think”)
Ginny Redish (UX Writing, Plain Language)
Whitney Hess (UX 코치, 전략가)
Indi Young (Mental Models, User Research)

# 제품 & 산업디자인 기반 UX
Dieter Rams (Braun, Less but Better)
Steve Jobs (Apple UX 비전)
Jony Ive (Apple 디자인 리더)
Tony Fadell (iPod, Nest)
Hartmut Esslinger (Frog Design, Apple Snow White 디자인 언어)
Naoto Fukasawa (무인양품 UX, “Without Thought” 디자인)
Marc Newson (산업 디자인과 UX 융합)

# 웹 & 모바일 UX 개척자
Tim Berners-Lee (WWW, Hyperlink UX)
Marc Andreessen (Mosaic/Netscape UX)
Luke Wroblewski (Mobile First)
Ethan Marcotte (Responsive Web Design)
Vitaly Friedman (Smashing Magazine, 웹 UX 전도사)
Jesse James Garrett (AJAX, Elements of UX 모델)
Christina Wodtke (IA, OKR UX 접근)

# 소셜 & 협업 UX
Ward Cunningham (Wiki)
Stewart Butterfield (Flickr, Slack UX)
Julie Zhuo (Facebook UX 리더)
Chris Cox (Facebook 제품 디자인)
Ev Williams (Twitter, Medium UX)
Jack Dorsey (Twitter, Square UI)
Biz Stone (Twitter UX 기여)

# 게임 & 인터랙션 디자인
Shigeru Miyamoto (닌텐도 UX, Wii 인터페이스)
Hideo Kojima (게임 내 UX/스토리텔링 혁신)
Will Wright (심시티, 사용자 에이전시 UX)
John Carmack (VR/게임 UX, Oculus)
Brenda Laurel (Human-Computer Interaction & 게임 UX)

# AI, 음성, 미래 UX
Tristan Harris (Time Well Spent, 윤리적 UX)
Kate Crawford (AI 윤리, 알고리즘 UX)
Josh Clark (Designing for Touch, AI UX)
Irene Au (Google/UX 리더십)
Aarron Walter (Designing for Emotion)
Mark Weiser (Ubiquitous Computing)
Hiroshi Ishii (MIT Tangible Media Lab – Tangible UX)
Pattie Maes (MIT Media Lab – Agent UX, Wearables)
Amber Case (“Cyborg Anthropologist”, Calm Technology 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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