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것들이 있다. 지나고 보니 별 것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 좀 더 자란 당신이 해결해 준다
어디에선가 스치듯 보았던 표현인데,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때 그 시절 나의 모든 것을 차지했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대부분의 불행은 갈등으로부터 시작되고, 갈등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를 옮겨가며 본래의 의도가 왜곡되기도 하고 부족한 언어적 표현으로 인해 자의적 해석이 확대되며 다른 이의 생각을 오해하게 된다. 무엇보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생존하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가 된 사회에서, 내가 옳고 상대가 그르다는 논리가 지배적인 것도 갈등과 오해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말은 글보다 더 휘발성이 강하다. 반대로 말하면, 글은 말보다 더 오래 기억되며 영구적으로 기록된다. 칭찬은 글로 하고, 싸움은 말로 하는 것이 좋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긍정적인 표현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 글로 하되,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표현은 휘발성이 강한 말로 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 말이다. 그만큼 글의 각인효과는 강력하며, 그렇기에 더욱 신중하고 조심하게 된다.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지점이 나의 생각을 언어로 '잘' 표현하는 것이다. 무형의 사유와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각이 유형의 언어로 표현될 때 의도치 않게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이는 전혀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무언가를 주장하기보다는 '내가 생각하기에', '개인적으로'라는 말을 덧붙여 자기 방어를 위한 명분을 쌓는 자신을 발견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많은 눈치를 봐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종류의 사건들을 마주한다.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부터 뉴스에 나올법한 커다란 일들까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런 일들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다시 단단해지기를 반복한다.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더욱 곧게 서고, 낭떠러지를 마주하면 이를 벗어나기 위해 재빠르게 도망친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때론 바람에 잘 흔들리고, 잘 무너지고 잘 일어나는 것이 어쩌면 제일 단단한 것이라고.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낙화>
누군가가 툭 치는 손길에 쓰러지고, 산들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쉽사리 죽지 않는 갈대. 갈대가 사계절 내내 강한 생명력을 뽐내는 비결을 보면 분명 배울 점이 있다. 조금의 관용이 더 필요하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인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일들을 흘려보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것들에 온 힘을 다해 진지해지기에는 너무나 힘든 세상이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각자의 사연에는 그들의 인생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렵다. 엉킨 실타래처럼 풀어내려 할수록 더욱 꼬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에 너무 애쓰지 않기로 다짐한다. 따끔한 주사가 지나간 자리에는 상처를 감싸주는 반창고가 필요하다. 날카로운 비판도 좋지만, 따뜻한 관용의 품도 좋다. 선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그저 시간이 해결하도록 놓아줄 수 있는 용기를 원한다.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주변을 관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다.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난데없이 찾아온 작은 걱정거리들쯤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위트와 함께, 우리 너무 진지해지지 않도록 해요.
(C) 2025.01. 조준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