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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il Choi Dec 29. 2016

로마의 주말 저녁

Trastevere (트라스테베레) :  Roma, Italia

밥부터 먹자

아무 문제없이 호텔까지 도착한 우리는 젊은 여행자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뛰쳐나오듯이 재정비를 한 후, 첫 식사를 위해서 Trastevere를 선택했다. 호텔 프런트에서도 이 동네가 저녁에 밥 먹고 술 마시고 하기는 최고야 하면서 추천했으니 일단 나가 보기로 한다. 후에 무용담이 될만한 작은 모험들을 내심 기대했는지도 모르지만 너무나 발전한 현대의 통신망과 정보들은 그런 기회를 더 이상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감사할 일이다.



트라스테베레를 향하는 버스는 좁고 굉장히 무질서 해 보이는 로마의 도로를 잘 달려 바티칸을 살짝 스쳐 테베레 강 쪽으로 달린다. 읽을 수는 있어도 뜻을 모르는 수많은 간판들과,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음악이 다시 한번 "너는 유럽에 있어"라고 이야기한다.


Trastevere:  Dolce far niente 


풍문으로는 유명한 동네라고는 들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인터넷의 힘을 빌려, 초입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얼른 앉는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말하면 그냥 오래된 낡은 동네, 그러나 그 동네를 비추는 빛과 음악과 사람들의 소음은 영원한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아무것도 아닌 그냥 조명과 건물과 간판과 길의 낙서까지도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는 여행자에게는 차고 넘치게 로맨틱한 공간이다. 



로마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너무나 단출한 모습인 트라스테베레는 랜드마크 인증샷 같은걸 바라는 여행자에게는 너무나 재미없는 공간 일지도 모른다. 으리으리한 건축물들이 내 카메라 앵글을 채워 주는 게 아닌 내가 보는 매력을 열심히 담아내야 한다. 저 너무나도 노랗고 투박한 가로등의 불빛을 배경으로, 반드시 한 손에 붉은 향기를 가득 채운 유리잔을 들고, 스마트폰보다는 앞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어야 더 옳은 곳이다. 


누군가가 로마에서는 까르보나라를 먹어보라 하기에 별 의심 없이 까르보나라와 봉골레를 주문한다. 물론 하우스 와인과 약간의 애피타이저도... 눈이 번쩍 뜨이거나 하는 맛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맛있는 파스타와 나쁘지 않은 하우스 와인은 참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이미 로마의 밤에 취한 내 입맛에는 딱이다. 결코 편하지 않은 의자와 약간 불안한 각도의 테이블과 그리고 시끌벅적한 노천 테이블의 어울림은 로마의 첫날밤을 온화하게 물들이고 있다.


테베레 강의 노란 가로등은 차분하고 조용하다. 

그 노랗고 크게 특별할 것 없는 가로등의 불빛들 위로 몇몇 건물들의 끝자락들이 보인다. 그것 들 중에는 내가 로마에 있음을 증명이나 해주듯이 베드로 대성당의 쿠폴라가 저 멀리 고고하게 서있고, 가로수 사이사이로 보이는 강변도로의 주말 저녁 교통은 시끌시끌한 로마의 주말 저녁을 잘 대변하고 있다. 어쩌면 현지인보다 더 많은 여행객들이 돌아다니는 로마의 거리이지만, 이곳 트라스테베레에서 만큼은 진짜 로마 시민들을 만날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아깝지 않게 와인까지 완전히 비운 후 슬렁슬렁 강가 쪽으로 걸어 보기로 한다. 멀리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고, 아까와는 다르게 강 건너편 구시가 쪽의 길들은 매우 조용한 편이다. 중간중간 열린 가게들의 불빛과 골목마다 한 개씩 있을 것 같은 작은 광장들과 성당들 앞의 가로등만이 깊어가는 밤의 방랑자들의 발치를 비춰준다. 


아까 골목 초입에 있던 젤라토 가게의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던 피스타치오 젤라토의 향이 아직도 입안에 맴돈다. 파스타와 술의 잔향을 깨끗이 지워내고 기분 좋은 달콤한 향만이 입안에 남아있다. 늦은 시간 일하는 게 불만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았던 그 가게의 아주머니는 약간 무서운 선생님의 호통처럼 내가 처음 골랐던 맛이 아닌 이걸 먹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1초 만에 착한 학생이 되어 오케이하고 추천하는 것을 손에 받아 들었다. 그리고 완벽한 디저트를 선물 받았음을 10초 뒤에 알게 되었다. 배도 기분 좋게 채우고 약간의 산보로 기분도 좋아졌다. 너무 늦지 않게 호텔로 돌아가자... 내일은 두 다리를 내어놓아야 할 만한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테베레강의 야경 하나 , 멀리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 보인다. 


후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낮에 가서 그 매력을 더 보았어야 하는 곳이다. 가봤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그런 방문이었다. 음식점도 많고 생각보다 넓은 지역이다. 낮에도 매력적이겠지만. 다시 간다고 하더라도 저녁 무렵까지 머무르고 싶다.

트라스테베레 (구글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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