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준비할때 가장 즐겁다.
무려 12년 만에 유럽을 다시 여행하게 되었다. 그 어렸던 시기에는 한달도 안되는 시간동안 8개국을 도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웠다면.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10일짜리의 딱 '이탈리아'만 돌아보는 계획을 세웠다.
8개월 전부터 구해 놓은 비행기 티켓과 조금씩 예약해서 아마도 벌써 카드 값까지 다 값아버린 숙소들...
그리고 3일이 남은 지금 피렌체에 가면 방문하게 될 우피치 미술관의 예약을 마쳤다. 이것도 미리 예약할 입장권들중 마지막 순서였다. 9월 15일 목요일 오후 세시 삼십분. 부정 탈까봐 입에 올리기도 무서운 그런 뭔가 어마어마한 사건이 없는한, 나는 그날 그 시간 쯤에는 보티첼리의 '봄'을 내 두눈으로 확인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을 열심히 떠올려, 아내에게 자랑하듯 설명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을 그 순간을 그 시간들을 어떻게든 보관하고 간직하고 싶어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틈이나면 여기저기에 메모를 남기려 하고 있을것이다.
두근 거림, 이런 작은 상상들은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준다.
쉬는 여행보다는 걷고 보고 즐기는 여행을 훨씬 좋아하는 나에게 유럽은 특히 이탈리아는 성지 같은 곳이다. 그 옛날 다녀왔지만 수 많은 아쉬움과 후회로 남아 있는 그 곳.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더 많은 준비하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되는 곳. 그래서 또 다시가야하는 곳.
한달 전에만 해도 더 근사하고 남과 다른 그런 어딘가를 무언가를 가고 보기를 바랬다면 3일 남은 지금에야 현실을 직시하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여행이 다가올 수록 수 많은 "여행을 가기위해 처리 해야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너무 바빠지면서, 아 그 옛날 훌쩍 떠나던 무책임하던 나이와는 다르구나 라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리 뛰고 저리뛰고 3일이 지나면 ...
그렇게 3일 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아내와 나는 첫번째 경유지 시카고행 비행기에 타고있었다. 첫 시작은 잘 해내고 있었다. 아주 충분한 여유를 두고 공항으로 왔다 예상대로 공항으로 오는 고속도로는 금요일 퇴근시간과 겹쳐 밀리는 편이었지만 워낙 서두른 덕에 전혀 문제없이 도착 했다. 지난 이주 동안 너무나 바빴고 이 여행 때문은 아니었다하더라도 여러가지 작고 큰 일들을 처리 해놓고 와야만했다. 그러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 순수하게 즐겁기만한 여행은 할수없구나. 돈도 돈이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푸는 아이의 마음같은 눈앞의 것만을 생각하면서 떠나기에는 지키고 돌봐야만 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푸는 아이의 마음같은 눈앞의 것만을 생각하면서 떠나기에는 지키고 돌봐야만 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내에게 이걸 전했더니 당연한거라 했다. 그녀는 그렇게 나보다 어른이었다. 그런 터무니 없는 배부른 이상주의적 발언을 묵묵히 들어주고 있었다. 물론 돈이든 시간이든 모든걸 자력으로 할수있다는 건 자랑스러울따름이다. 이제야 사람구실을 하는구나 하는 마음도있다. 하지만 정말 어른의 휴가를 떠나는 마음은 더 이상 뛸 듯이 기쁜 어린아이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그리고 그렇게 잘 해내고있다고 생각이든다. 하루종일 업무를 보고 퇴근 후 곧바로 공항으로 달려 게이트 앞에 섰을때 느껴지는 어깨의 나지막한 묵직함과 통증은 내가 이 순간 비행기에서 이글을 쓰는 어쩌면 사치스러운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댓가 정도로 생각함이 자연스러울것이다.
이렇게 글로 나의 철없음을 쏟아내고 나니 왠지 이여행이 더 즐겁다. 어깨의 묵직함도 기분좋은 느낌이다.
이제 로마가 나를 기다리고있다. 낯선 곳에서 펼쳐지는 즐거운 자극과 긴장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