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도장을 찍고 탈의실로 올라가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맨손 위에 낄 목장갑과 그 위에 낄 비닐장갑, 거기에 마지막으로 낄 PU코팅장갑까지 챙겨 현장으로 내려간다. 출근 한 몇몇 동료들과 음료 자판기 앞에서 간단한 인사와 잡담을 주고받는 것으로 나름의 몸풀기를 갖는다. 라인으로 들어가 지난밤 일하고 퇴근을 준비 중인 교대자에게 작업 내용을 인계받으면, 기다렸다는 듯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비로소 공장에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8월. 여전히 많은 기계들이 불 꺼진 조명 아래 우두커니 서 있다. 일부 직원들의 휴무는 이번 달에도 계속된다. 몇몇은 이제 얼굴 못 본지가 석 달이 넘어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조금씩 작업자들의 복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불을 밝힐 조명들과 우렁차게 돌아갈 기계들 수도 늘어날 예정이고. 지난달 말일에는 기대하진 않던 상여금도 지급이 되었다. 회사가 은행에 요청했던 대출도 지급받는 걸로 결론이 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아직이다. 많은 자동차 부품 가공 중소업체들이 이미 문을 닫았고, 우리 회사를 포함해 겨우 버티고 있는 업체들도 살려달라 비명을 지르고 있다. 코로나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며 전 세계 경제를 공황으로 만들고 있고, 그 덕에 우리가 만든 수출품들은 여전히 항구에 묶여 배에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다. 추경을 통한 정부의 지원이나 은행 대출금만으로 완전히 극복하기에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역시나 믿어본다. 모두의 위기지만 그냥 포기하고 넋 놓고 있을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 결국 우리는 한 평생 어려움 없이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 태어난 존재이고, 보육하는 부모이고 부양하는 자녀일 테니.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의지들이 모여 좋은 결과들을 만들어내겠지.
어쩌겠나, 그렇게 믿어야지.
"이야, 이게 얼마만입니까? 오랜만입니다 형님."
오늘도 오랜 휴업을 끝내고 동료 한 명이 현장에 복귀했다. 멀리서 주차하고 걸어오는 걸 보고는 열렬한 박수로 웃으며 환대해주니 겸연쩍어하며 공장 문턱을 넘는다. 원래 우리 공장 주력 상품인 미국 수출품 중 하나의 자동라인을 담당하며 가장 일 많이 하기로 손꼽히던 형님.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가 만든 제품들이 배를 타지 못하고 창고에 쌓여만 가자 어쩔 수 없이 오랜 시간 출근하지 못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집에 찾아가 아침 늦게까지 자고 있던 사람을 깨워서 밥도 먹이고 당구도 치고 했었더랬다.
너무 오랜만이라 일 적응하는데 한동안 고생 좀 하겠다며, 묵묵히 서서 자기가 오기만을 기다려 준 기계들에게 눈길을 준다. 기계들이 생명이 있다면 얼마나 이 형님이 반가울까? 몇 달을 가만히 서 있는다고 얼마나 힘들고 심심했을까? 아마도 세심하고 노련한 숙련공인 형님은, 오래도록 쉬었던 자신의 기계들을 함부로 다루지 않으리라. 아주 천천히, 무리가지 않게 충분히 준비한 다음 움직일 것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기계를 아낄 줄 안다. 잘 알고 익숙하다고 절대 함부로 다루거나 거칠게 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야만 좋은 제품이 가공되어 나오고, 우리의 안전도 보장된다. 이 녀석들, 오래간만에 기름칠 좀 하겠구나 생각하니 괜히 뭉클해진다.
그렇지. 기계는 작동을 해야 진짜 기계인 것이고, 노동자는 일을 해야 말 그대로 진짜 노동자인 셈.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의 일을 하며, 어렵지만 결코 그냥 놓을 수 없는 우리의 삶을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