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일한다는 것

by 일상버팀글


토요일이다. 공장의 노동자들 대부분이 오늘 같은 주말에 출근해서 일을 할 수 있길 원한다. 물론 이유는 '돈'. 오늘 주간 근무 같은 경우 8시간 동안 평일의 1.5배, 나머지 잔업 2시간은 2배의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오늘 같은 주말 야간 근무는 평일 낮 근무 3일 치 정도의 돈을 벌어 갈 수 있는 그야말로 절호의 찬스. 그래서 남들 다 쉬는 토요일, 우리는 서로가 일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래서 금요일쯤 되면 다들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과연 나는 내일 일할 수 있는가? 공장이 어려워 누구는 출근도 못하고 있는데 주말에 일을 하긴 하나? 행여나 내 라인이 쉬더라도 시켜만 주면 뭐든 할 수 있는데...... 도통 일에는 집중이 안되고, 그저 지나가는 관리자들의 눈치를 보며 말이라도 꺼내볼까 어쩔까 조바심에 가득한 이들. 결국 조장이 종이 쪼가리 하나 들고 현장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그제야 곳곳에 치솟던 기대와 욕구들이 사그라든다.

"내일 특근해?"

"아니요, 우리 쪽은 일이 없다네요. 이번 달 물량이 많지가 않아서...... 형님은 내일 출근하세요?"

"어, 그러게. 나는 바쁘다고 나오라고 하네."

"아 네, 고생하시고요. 다음 주에 뵐게요."

"응 그래, 들어가."

내일을 보장받은 이들의 안도와 그렇지 못한 이들의 씁쓸함이 대비되어 묘한 분위기를 이루고, 그 어색한 기운이 싫어 퇴근 종이 울림과 동시에 다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공장을 빠져나간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평일 주말 낮밤을 가리지 않는 이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일을 하게 되면 사실상 승자의 기분으로, 못하게 되면 패배감에 사로잡혀 우울감에 빠지는 곳. 주말을 두고 늘 반복되는 이 현상이, 사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더랬다.

"아니 뭐 얼마나 번다고 주말까지 일을 하겠다고 이리들 아등바등 대냐고. 거 돈 십만 원, 이십만 원 벌면 큰 부자라도 돼? 차라리 가족들이랑 시간 보내고, 여행도 다니고, 취미 생활도 하고, 자기 계발도 하고 그래 봐. 얼마나 좋아?"

호기롭게 사람들을 향해 마치 대단한 현자라도 납신냥, 내 우매한 너희를 깨닫게 하겠노라 힘주어 이야기하곤 했다. 인생은 돈이 다가 아니라고, 있다가도 없는 게 돈이라고, 나처럼 여유도 좀 부리고 느슨하게 살자고 말하며, 툭하면 조퇴하고 연차 쓰고 잔업 안 하고 특근 안 하는 내 일상을 사람들에게 일부러 알리려 애썼다. 보란 듯이 많이 놀고 적게 일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딴 소릴 지껄이며 이들의 노동을 폄하하지 않는다. 하찮은 공장 노동자로 산다는 내 안의 열등감을,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깎아내림으로써 결국 '나는 너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그야말로 얄팍하고 치졸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6년 전, 처음 공장에 출근했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기계들은 산처럼 높아 보였고, 공장을 꽉 채운 에어건 쏘는 소리, 쇠 깎여나가는 소리는 두 귀를 찢을 듯했다. 처음 경험해보는 낯선 공간 낯선 기계들과 소음은 쌩판 초짜인 나를 완전히 주눅 들게 만들었다.

처음 보고 듣는 공구들을 나열해 놓고 이건 이렇게 요건 저렇게 하라길래, 본인은 뭐 하나 아는 게 없어 말귀를 못 알아먹겠음을 수줍게 고백했고, 관리자와 동료들은 뭐 저런 게 들어왔나 하는 눈빛을 내게 여과 없이 쏴 댔더랬다. 순식간에 별 볼 일 없는 놈이 되어버린 나는 꽤 오랜 기간 동료들의 텃세와 무시를 견뎌야 했다.


"몰라요. 나는 잘 몰라서 못 돕겠는데?"


"이런 건 원래 알아서 하는 거예요."


"야, 골치 아프네 일하는 거 보니."

바보가 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낯설고 무지한 이를 향한 그들의 언행은 매우 거칠고 공격적이었다. 가뜩이나 아는 게 없으니 그저 맞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처자식까지 둔 가장으로서 내 기분 나쁨을 이유로 생업을 팽개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밑 보이지 않으려 무던히도 노력했다. 일머리 없고 융통성 없고 덤벙대다 그르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야간근무 때 주어지는 두 시간의 휴식 시간, 남들 다 자고 있을 때 혼자 기계 앞에서 책 뒤져가며 작업 코드와 가공 원리를 외우고 익혔다. 무작정 외우라고만 시킨 것들이 어떤 원리로 이루어지는 것들인지 혼자 고민하고 답을 얻어갔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 이해도가 달라지면서 일을 익히는 속도도 빨라졌다.

조금씩 적응하며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기 시작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하루하루 내 주위에다 보이지 않는 담장을 쌓으며 철저히 나를 가리는데 집중했다. 동료들 앞에서 잘 웃지도 않았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동료에게도 절대 말을 놓지 않았고, 윗사람에게는 겸손하고 공손한 사람으로 비치려 애썼다. 예의는 바르지만 곁을 두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적당한 거리에 선을 긋고, 결코 가까이에서 내 허술한 면모를 발견하지 못하게 경계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속으로 동료들과 그들의 삶을 마구 폄하하기 시작했다.

'니들이 아무리 그래 봤자 내가 더 많이 배웠고, 내가 더 똑똑해.'

'기껏해야 전문대 정도 나온 것들이 4년제 졸업한 나한테 대고 아는 척이야 재수 없게.'

'어쩌다 내가 이 곳까지 굴러 들어왔지만 잠깐이야. 금방 떠날 거야 나는. 더 나은 곳에서 더 대접받으며 살거라고.'

'평소에 얼마나 없이 살면 주말에까지 나와서 일하겠다고 저 난리를 치니 쯧쯧. 불쌍하다 불쌍해.'


그렇게 6년을 보내고서야 이런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되었다. 시작은 엄혹한 환경에서 나를 지키기 위함이지만, 결국 그것이 나를 가두고 망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찌나 부끄럽고 참담하던지. 늦게나마 내 무의식을 들여다 보고 반성할 수 있었던 점을 진심 감사하며 살고 있다.

자, 아무튼 오늘은 토요일. 나는 일하지 않는다. 하고 싶어도 일이 없다. 회사는 여전히 앓는 소리만 하고 있고, 모두의 근심은 하루하루 깊어지는 중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일하지 않으면 놀아야지. 그래서 아침부터 부리나케 차를 몰아 캠핑을 왔다. 이제 땡볕은 사그라들고 나무 아래 텐트에도 선선함이 가득하다. 가만히 앉아 맥주 한 잔 들이켜면 어려운 회사도, 특근하지 못한 초조함도 잠시 눈 녹듯 사라진다. 곧 먹을 맛있는 저녁과, 활활 타오르는 장작을 보며 때릴 불멍을 기대하며, 이번 주말은 아무 생각 없이 다 내려놓고 푹 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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