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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버팀글 Jun 24. 2020

안녕, 마이클

오늘도 그의 음악을 만나다


 그를 알게 된 건 95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중학교 2학년 시절, 카세트로 음악을 듣던 시대를 지나 작고 동그란 콤팩트디스크가 대세로 자리 잡을 무렵이었다. 그 이전부터 부모님은 내가 '음악을 듣는 것'에 무척이나 관대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유행가요에 눈을 떴을 무렵, '서태지와 아이들' 2집 앨범을 거실 전축 앞에 앉아 그야말로 식음도 전폐해가며 몇 번씩 반복해 듣고 앉았어도 아무런 제재도, 간섭도 하지 않으셨더랬다. 중학교 입학 선물 겸, 이제 거실에서 말고 방에서 조용히 너 혼자 들으라는 의미로 소니의 '워크맨'을 사 주셨고, 이듬해, 바로 그 95년 여름 '아남전자'의 '포터블 플레이어'를 내 책상 위에 떡 하니 올려다 놓으셨다. 그때 들으라고 같이 사 주셨던 음반이 바로 '마이클 잭슨'의 정규 4집 앨범 '히스토리(HIStory)'였다.


마이클잭슨 'HIStory' 앨범 커버


 앨범에는 두 장의 CD가 들어 있었는데, 하나는 새로 믹싱 작업을 한 예전 히트곡들, 다른 하나는 이번 앨범으로 발표하는 신곡들이었다. 그전까지 마이클 잭슨에 대해 그의 이름과 문워크 말고는 아는 게 없었지만, 이 앨범은 그의 현재는 물론 과거까지 섭렵하기에 아주 좋은 구성이었던 것. 워낙 명곡들이다 보니 들으면서 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뜻 모를 가사들마저 그냥 들리는 대로 따라 흥얼거리게 되면서, 그렇게 나는 그와 첫인사를 나누었다.


 8,90년대 팝 음악을 넘어 대중문화 전반에 그가 미친 영향력은 너무나 방대한지라 일일이 늘어놓기가 뭣할 지경. 춤은 더 말할 게 있나? 지금도 그의 퍼포먼스를 재현하는 이벤트 성격의 무대를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니까. 작사, 작곡, 프로듀싱 같은 곡 메이킹 능력은 물론, 사람들이 그의 화려한 춤에 마냥 시선을 빼앗겨 간과하게 되는 '보컬'로서의 눈부신 재능까지. 게다가 그는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음악에 담아내고자 했다. 인종차별, 전쟁 반대, 평화와 공존, 환경 문제 등 거대 담론을 가사로 풀어냄으로써, 슈퍼스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것에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다. 세기의 천재가 만드는 음악과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오래도록 보고 듣고 싶었지만, 2009년 불의의 사고로 그만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정확히 10년 전, 1999년 6월 25일 내한공연 중




 6월 이맘때가 되면 괜스레 그의 음악을 더 찾아 듣게 된다. 25일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잊을 수 없는 비극이 있던 날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영감을 전해 준 예술가의 죽음으로 기억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치 추모하는 마음으로 해마다 여름의 초입부터 그의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오늘도 공장에서 폭염에 흐려져 가는 의식도 붙들 겸, 그의 음악들 중 신나는 몇 곡 들을 추려서 플레이한다. 노래에 맞춰 혼자 립싱크도 하고, 문워크에 요즘 다시 유행 중인 '꼬만춤'까지 몰래 시연하며 졸음을 쫓고 있는 와중에 문득 고개를 드니 와, 이럴 수가. 저 쪽 공장 입구 쪽에서 마이클이 내 귓가에 들리는 음악에 맞춰 뚜벅뚜벅 걸어오는 게 아닌가?


 그러자 그가 지나는 기계들 사이사이에서 동료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오더니 그의 뒤를 따르는데, 순식간에 그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중간중간 마이클이 멈추며 모자를 움켜쥐고 뒤꿈치를 들고 팔을 뻗고 접고 할 때마다, 동료들은 일사불란하게 그의 춤과 동작에 자신을 일치시킨다. 결국 코 앞까지 온 마이클은 내 얼굴에 두 눈을 갖다 대고 이렇게 노래한다.


All I wanna say is that

오로지 내가 말하고 싶은  

They don't really care about us

그들이 우리를 전혀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그리고는 경쾌한 걸음으로 동료들과 함께 공장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렇게 그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악덕 자본가와 고용주를 찾아가 푹신한 의자 위에서 끌어내리고, 언제 사고가 날 지 모르는 위험한 곳에서 혼자 일하고 있는 노동자를 그곳에서 구해낸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차별과 갈등을 없애고, 일하는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감으로 곡은 끝이 난다.



-아래 링크를 클릭-

https://youtu.be/QNJL6nfu__Q

Michael Jackson - They Don’t Care About Us (Brazil Version) (Official Video)


 4집 앨범 수록곡 'They don't care about us'의 가사 내용은 좁게 보면 인종차별의 부당함에 대함이지만, 넓게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과 이를 방관하는 시스템을 향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절로 노동 현장에 있는 온갖 적폐들을 깨부수는 식의 가상의 뮤직비디오를 머릿속으로 제작해 본 것. 괜시리 기분이 좋네. 어릴 때와 지금의 내 처지가 다르긴 하지만, 역시나 내가 마이클을 좋아하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살짝 뭉클해진다.




 일전에 누군가가 마이클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을 안타까워 하기에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 인간이 다 가지기엔 너무 많은 재능들을 갖고 태어났으니, 그 많은 시기와 질투를 받으며 평범하게 살다 제 명을 다하기는 힘들었을 것."


 생각할수록 서둘러 끝맺어야 했던 그의 삶의 궤적이 아쉽기만 하다. 음악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노력들이, 그의 명성과 부를 향한 질투와 시기들에 의해 꺾여버렸던 것이 팬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아플 따름이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자라며 그와 같은 예술가가 되려 했던 나는, 그가 떠나고 시간이 흘러 공장의 노동자가 되었다. 꿈은 점점 멀어지고 현실은 혹독하지만 언제나 음악을 잊지 않게 붙들어주고, 언제든 들어도 가슴 뛰게 만들어주는 그의 노래들. 그 변치 않는 음악들로 나를 기다려주는 그에게, 오늘도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본다.


 "안녕, 마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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