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립니다*
금일 아침 회사로부터 6월 임금의 정상 지급이 어렵다는 내용을 전해 받았습니다.
금액을 반반씩 나누어서 20일과 아직 미정인 날짜에 추후 지급하겠다고 합니다. 늦어도 8월 10일 전에는 지급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회사 상황이 어려운 점, 조합에 양해를 구해왔습니다.
관련해서 사측과 만나 추가로 논의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정리되는 대로 한 번 더 공지하겠습니다.
노동조합원 단체 카톡방에 이번 달 월급이 제대로 지급되기 어렵다는 내용을 공지했다. 이 사태에서도 마치 나는 이성적이고 덤덤 한마냥 써 내려간 톡을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린다. 당장 당면한 내 개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번 달 카드값이랑 대출 이자는 어떡하지? 은행 빚을 내야 하나? 아니면 가족이나 친구한테 전화해서 신세를 져야 할까?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불안과 두려움을 낳기 시작한다. 배가 가라앉는 게 뻔히 보이는데 뛰어내리지 못하는 건가? 오갈 데 없는 신세라 그저 멍하니 사태가 나아지기만 바랄 뿐인 건가? 결국 나의 무능력함이 문제인 걸까? 신세한탄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우선은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전화기를 열고 주소록을 천천히 살펴본다. 몇 안 되는 친구들, 선배들...... 돈 좀 빌려달라 선뜻 이야기할 데는 눈에 띄질 않고. 결국은 부모님이다. 은행의 이자와 떨어질 신용등급을 감당하기 싫은 나이 마흔의 불효자 아들의 딱한 사정을, 자식 사랑 지극한 아버지 어머니가 차마 모른 채 하시지는 않으리라 믿으며 통화 버튼을 누른다.
"네. 네. 아니요? 네. 아, 네.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네. 네. 고맙습니다 아버지. 조만간 한 번 들릴게요. 네. 들어가세요."
감사함과 죄송함,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범벅이 된 채 얼른 전화를 끊었다. 절로 나오는 한숨. 일단은 됐다는 안도감이 앞서지만, 아직도 부모로부터 손 벌리는 신세에 대한 자괴감이 그 뒤를 따른다. 그래, 우리는 부모보다 더 못 사는 최초의 세대라잖아?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야. 그냥 현실이지. 안 그러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있는 거야. 혼자 중얼거리 듯 지금의 나를 합리화해 본다. 그리고 서둘러 차를 몰아 약속된 술자리로 향했다.
"솔직히 기분 나빠야지. 누구는 뼈 빠지게 일하는데, 누구는 며칠 씩 출근도 안 하면서 월급에 보너스까지 다 받아먹고. 아무리 조합원이고 동료라지만 이런 식이면 우리가 일해서 그 사람 주머니 채워주는 거밖에 더 돼? 같은 조합원이라고 매번 감싸주고 하는 것도 잘못된 거잖아? 억울하지 않냐고."
노동조합 집행부와 몇몇 조합원들 해서 간단한 회의 겸 술 한 잔 곁들이는 자리. 휴업이 장기화되고 회사 사정도 쉬 풀리지 않다 보니 모여 앉은 이들의 불안과 동요도 점점 커지는 추세다. 서로가 날카롭고 예민하다. 뱉는 말들 속엔 가시가 있고 그것을 굳이 감추려 들지도 않는다. 술자리가 깊어질수록, 술잔이 돌고 돌수록 서로를 찔러대고 상처주기 시작한다.
"위원장, 아니 막말로다가 꼴에 노동조합이라고 있다 하지만, 실상 우리한테 뭐 이득이 되는 게 있어야지. 안 그래도 어려운데 차라리 돈 만 원씩이라도 쥐어주는 게 맞지. 제대로 단합도 안 되는 노조 유지한다고 머리 싸매지 말고 그냥 돈 있는 거 다 나눠갖고 확 해산하던가."
"아니, 정규직들도 지금 몇 달씩 집에서 쉬고 있는데 계약직 외국인들은 특근까지 다 하고. 이 공장은 무슨 외국계 회사야 뭐야? 외국인들 돈 벌어가라고 있는 공장이냐고!"
더 두고 보다가는 자리가 엉망이 될 것 같다. 옆에서 쿡쿡 찌르며 정리 좀 하라는 위원장의 무언의 지시가 내려오고, 나는 썩 내키지 않는 설명과 설득을 시작한다.
"형님, 우리가 일해서 버는 돈을 우리가 가집니까? 회사에다 벌어다 주는 게죠. 우리한테 줄 돈은 그 큰 금액의 겨우 일부분입니다. 일을 한 양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건 그 사람이 전부 다 일했을 때 받기로 측정된 금액에서 덜 받아가는 거지, 내가 받기로 한 돈에서 때어주는 게 아니잖아요?"
"아니 노동조합이 무슨 계라도 됩니까? 조합비가 곗돈입니까 나눠먹고 자시고 하게.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뭉쳐있으니까 이 어려운 시기에 같이 버티는 거지요. 막말로 노조 없었으면 이번 휴무 때 전부 무급으로 됐을지 알 수 없는 겁니다."
"다 좋은데 우리끼리 정규직, 계약직, 내국인, 외국인 나누지 맙시다. 어차피 제일 바깥쪽인 계약직 처우가 좋아야 그보다 안쪽에 있는 우리 처지도 같이 나아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끼리 이런 식으로 편 가르고 나누고 차별하면 회사만 좋은 거지요."
그들의 공격적인 언어들에 맞서 나름의 논리를 펼쳐 맞서 보지만, 지극히 현실은 외면한 듯 한 내 입 바른 소리가 오늘은 나조차도 듣기가 거북해져 온다. 내가 옳고 저들이 그른지도 잘 모르겠다. 나만 고고한 척, 남을 위하는 척하는 건 아닐까? 나 역시 당장 어떤 부정적 상황이 닥친다면 분명 내 이익만 챙기려 들 텐데 말이다. 월급 조금 밀린다고 어쩔 줄 몰라 부모님 도움부터 당장 떠올리는 주제에 뭐 그리 고고하고 잘난 척인가 싶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점점 힘이 줄고, 논리는 금세 바닥을 친다.
술이 더 들어가니 다행히 날카로움은 걷히고 화기애애하게 자리는 마무리된다. 그래도 우리 잘 버텨보자! 힘내자! 껄껄 웃으며 서로 어깨를 걸고 등을 다독인다. 이 사람들, 이럴 거면 아까는 뭐한다고 그리 버럭거렸나? 어이가 없다가 픽하고 웃음이 난다. 뭐가 맞고 틀린지는 모르겠으나, 뭐가 좋은 건지는 알겠네. 많은 걸 바라지 않는 이들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하루가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