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대문, 오토바이, 자동차

아버지

by 주니퍼진

빛바랜 사진 속.

흙 마당에 비스듬히 세워진 파란 오토바이. 빛을 받아 은색 배기통이 더 도드라집니다.

젊은 남자와 남자가 안고 있는 아랫니 두 개를 보이며 웃는 아기. 그 옆에 서 있는 파마머리 키 작은 아줌마. 파란 고무슬리퍼를 신고 월남치마를 입고 할머니 조끼를 입었어요.

그리고 뒤쪽으로 보이는 녹이 슨 파란 대문.

나의 첫 가족사진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

아버지의 파란 오토바이는 대구 변두리에서 대구 시내까지 출퇴근하는 아버지의 발이었다고 해요.

매일이 바빴던 아버지. 17살의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얼굴도 모르는 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의 기둥이자 6남매의 가장으로 한시도 허투루 시간을 쓸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부지런히 일했고 공부했던 아버지. 가난한 가정의 가장은 생활비와 동생들 학비, 아픈 여동생의 약값을 벌어야 했기에 화장품 외판원까지 해 보았다고 해요.

안 해본 일이 없었다던 아버지의 부지런함과 아버지의 기술을 알아 봐 준 교장선생님의 도움으로 설계회사에 취직했고 아버지의 실력과 기술을 맘껏 발휘되는 계기를 맞이했습니다.

힘든 생활이었으나 참 무던하게 견디며 이겨낸 아버지는 엄마와의 결혼을 통해 당신이 책임져야 하는 가정을 엄마와 나누어진 것 같아요.

이른 새벽 제일 일등으로 고봉밥을 드시고 통금 시간에 겨우겨우 통과하여 변두리 마을의 파란 대문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우두두두두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들리면 안 되기에 마을입구서부터 하천 다리를 건너 한참 안 쪽에 있는 집까지 끌고 들어왔다고 했어요.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셨고 아버지가 태어나 자란 그 파란 대문 집에서 태어나 취학 전까지 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파란 오토바이는 동생이 태어날 무렵 파란 자동차로 바뀌었어요.

파란 자동차로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던 여동생은 시집을 가게 되었어요.

이제 파란 대문 기와집에는 아버지, 어머니, 나, 동생이 남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도 안 계시고 삼촌 고모들도 없는 이 집에서 안 바뀐 딱 하나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출근시간과 귀가시간입니다. 늘 쉬는 날 없이 출근하셨고 통금시간이 지나서야 귀가하시는 아버지. 파란 자동차는 끌고 올 수 없기에 타고 올 수 있는 최대의 거리까지 와서 세워두고 집까지 걸어오신 아버지. 어느 날, 쉴 틈 없는 아버지의 열시이 우리에게 답했습니다.

이제 파란 대문과 헤어질 시간이라고. 파란 자동차와도 헤어질 시간이라고.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회사와도 가깝고 동생이 다닐 유치원, 내가 다닐 학교와도 가까운 동네의 아파트로 말입니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뽀글 머리 월남치마 파란 고무슬리퍼 차림으로는 살 수 없겠단 걸 이사 첫날 알게 해 준 곳입니다.

아버지는 이사 첫 날도 통금시간에 겨우 겨우 빗겨 퇴근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버지의 차가 검은색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번호는 4610. 동생 생일 4월 6일. 내 생일 6월 10일.

아버지는 좋다고 하셨데요.

아버지는 파란 대문, 파란 오토바이, 파란 자동차를 거쳐 아버지의 새로운 시작에 모든 걸 새로이 했습니다. 그때라도 아버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