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와 달리기
지난해 여름 조조가 아랫집 엄마 댁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조조가 일주일 동안 머물게 되자 엄마는 손자를 어떻게 해야 지겹지 않고 즐거운 추억으로 채울지를 내내 고민하셨다.
엄마 나름대로 우리 남매를 키울 때의 기억을 더듬어 바둑돌도 찾아 놓으셨고
장미 접기, 학 접기, 외출할 장소들을 정리해 놓으셨다.
조카가 자기 집에서는 이것저것 마음대로 놀 거리도 많겠지만 할머니 댁에서는 휴대폰 게임도 할 수 없고
장난감도 없어서 무료할 것이라 생각했던 엄마는 아이와 최대한 많은 대화를 하며 동행하려고 했다.
다행히 조조는 엄마의 계획들을 잘 따랐다.
처음으로 할머니께 오목도 배웠고 스승을 이겨 보겠노라 수도 없이 반복하며 결국은 할머니를 이겼다.
"그 녀석 근성이 있어. 뭐든 하겠더라." 엄마는 손자의 이런 모습이 흐뭇했던 것 같다.
장미 접기를 배워 엄마의 종이 장미함을 채웠고, 종이학 접는 법도 배워 엄마의 종이학함도 채웠다.
할머니와 함께 화훼 단지를 다녀오며 할머니가 좋아하는 꽃나무가 무엇인지 알아왔고
할머니와 지하철을 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다니며 종착역에서 맛있게 컵라면도 먹었다고 이야기했다.
조조에게 고마웠다. 당시 엄마는 자신의 시간을 다루어 쓰질 않고 있었다. 그냥 흐르는 대로 두었다.
그런데 조조의 등장으로 엄마는 주도적으로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모처럼 엄마는 시간이 남아돈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일주일이 채워갈즈음 조조는 이 고모와 함께 아침 러닝을 하기로 약속했다.
여름이라 7시에 나서도 날이 밝아 조조와 나서는 걸음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조조와 간단히 준비 운동을 하고 살랑살랑 뛰기 시작했다.
조조는 아이처럼 나를 마구 앞질러 가다가 기다리다가 헥헥거리다가를 반복했다.
이런저런 잔소리 없이 너 하고픈대로 해봐라 하고 두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 곁에서 살살 따라오고 있었다.
"고모는 빠르지 않아도 멈추지 않고 뛰네요." 조조가 말했다.
"응. 이렇게 뛰면 더 멀리 갈 수 있어."
그러다 저 멀리 나 혼자 의미 둔 '아빠나무'가 나타났다.
"조조야. 고모가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길을 뛰는데 너무 마음이 아픈 거야.
그때 저기 큰 나무가 눈에 들어왔어. 마치 할아버지가 떡 하니 기다리고 있는 것 같더라. 고모는 그때부터 저 나무를 보면 할아버지가 떠올라. 할아버지가 고모한테는 나무 같은 분이었거든."
"할아버지 느낌 나요... 고모! 할아버지는 못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할머니 집에 있으니까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게 진짜 많아요. "
"그지? 고모도 그렇게 생각해. 할아버지는 진짜 척척박사 같아."
몇 걸음 가다 조조가 말했다.
"근데 고모. 할아버지도 못 한 게 하나 있어요."
"뮐까?"
"죽음을 막진 못했어요. 슬펐어요."
조조의 이 마지막 한 마디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조조의 손을 잡았다. 조조에게 부탁했다.
"조조야, 고모 한 번만 안아 줄래? 조조야. 고마워."
조조는 내 허리를 꼭 안았다. 한참을 그렇게 해 주었다.
나는 그렇게 가장 어린 가족에게서도 위로를 받았고 공감을 나누었다.
조조의 기억에 오늘이 추억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