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중하위권에게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편이다.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마음 가짐으로 인생을 살고 있는지? 이것은 본인만의 노하우이기에 잘 공개하지 않는다. 사실 잘하는 사람의 스토리는 많은 사람에게 공감받지 못하기도 하고, 단순히 자랑 정도로 치부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내용을 늘 갈구하고 있었다. 분명히 공부도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이 있고, 마음가짐이 작용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의 학습법이나 사고관을 들으면 나의 상황에 대입해보면서 새로운 것들은 배워서 적용시켜 볼 수도 있었다. 가끔은 잘하는 사람을 나의 잠재적인 라이벌이나 목표로 잡아서 성장의 동기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연스레 남들보다 앞서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진화론적으로 본인의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 하는 심리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지금의 한국의 사회적 상황이나 교육방식 역시 그런 욕망을 더욱 강해지도록 부추기고 있다. 경쟁을 강요하고 결과에 따른 차별화를 두는 것을 어린 나이에서부터 익숙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도 그곳에서 남들보다 앞서 가고 싶다는 욕심이 조금씩 피어났다. 그 마음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 목표가 되었고,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더 생각하고 더 공부하고자 하였다.
학교나 가정에서는 아이에게 이런 경쟁심이나 욕심을 인위적으로 형성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이 방법이 잘 맞아떨어진다면, 아이도 본인이 노력한 만큼 성취감을 얻어가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한번 상위권에 오르면 그 성취감은 다시 엄청난 내적 동기가 되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는 힘이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다. 본인이 노력한 것에 비해 낮은 성취를 얻게 되는 아이들(중하위권)은 노력을 줄이거나 포기하게 되는 현상이 생긴다. 처음에는 작은 차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가 생기기도 한다. 성적이 계속 잘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노력을 더 붓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위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초기에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성적이 안 나온다고 쉽게 포기하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 당장 서열화되는 학교에서는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겠으나, 남들과의 비교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스스로 성장해나가는 것에 기반을 두는 '절대평가의 방법'으로 꾸준히 노력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꾸준히 해나가는 경험 (성장해간다는 성취)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미미해 보일지라도, 대학을 간 이후나 취업하는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줄 것이다.
위의 내용에 부합하는 친구의 이야기가 있다. 이 친구는 중학교 1학년 첫 시험 성적표에서 전교 꼴등을 했다. 그런데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시험기간마다 나를 따라다니며 도서관을 함께 다녔다. 이해가 못하면 나를 잡고 끝까지 물어보면서 이해하려는 집요함도 있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성적은 잘 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1학년 때는 550등에서 시작했지만, 스스로 목표를 달성해가며 졸업할 때에는 300등까지 올라갔다. 높은 성적은 아니나 천천히 성장하는 법을 익힌 친구는 고등학교에서도 높은 성적은 아니지만 꾸준히 공부를 했다. 첫 수능에서는 성적이 매우 낮게 받아 인 서울 대학을 갈 수 없었다. 조금 더 노력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재수를 선택했다.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노력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쳐지진 않았지만, 효율이 많이 떨어지는 케이스였다. 이 친구는 내가 있는 산속 고시원까지 따라왔고, 나는 도움을 주고자 열심히 수학 과외를 해주었다. 결국 수학과 영어 모두 2등급씩 올리면서 재수에 성공했고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인 서울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 친구는 남들보다 앞서가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파악했고, 거북이처럼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 친구는 대학에 가서도 술도 마시지 않고 항상 도서관을 다니면 꾸준히 공부했고, 결국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지만 좋은 대학 출신들도 가기 힘든 공기업에 취업하게 되었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것들
나는 중학교 첫 시험에서는 상위권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올라가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그리고 상위권을 달성한 친구들에게 어떻게 공부하는지? 얼마나 공부하는지? 계속 물어보곤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항상 나는 충격을 받곤 했다. 나는 노력의 최대치가 100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100만큼 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200 or 300을 기준으로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면 나도 천장을 높여가면서 200과 300을 달성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였다. 그리고 다음 시험에서 드디어 상위권 (전교 30등 내)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한번 상위권에 도달하게 되면 절대 그 자리를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상위권부터는 본격적으로 '천장을 높이는 싸움이 시작된다'. 서로 누구의 천장이 높은지 공유하지 않은 채 끝없이 경쟁하는 것이다. 늘 책장 앞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간다'를 써두면서 끝없는 경쟁을 하였다. 보통 1등을 하는 친구들은 교과서를 모두 화이트로 칠한 다음 글자 한 토씨도 틀리지 않도록 외울 정도였다. 그렇게 까지는 못하겠다 싶어서 전교 10등권은 그냥 양보하였다. 10등을 더 올려서 얻는 이득보다는 적당히 숨 쉬는 것이 정신적으로 더 나은 것 같았다.
천장을 높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것이었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에는 분명히 부작용도 있다. 스트레스와 강박에 심한 친구들은 중학생의 나이에서 벌써 불면증이나 불안증을 겪은 친구도 있었고, 흰머리가 나는 애들도 있었다. 어떤 친구는 번아웃이 와서 고등학교를 가서 아예 공부를 놔버리기도 했다. 늘 경쟁이 중요하다 보니 이기심이 강해지고 원만한 교유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상위권의 친구들은 더 격차를 벌리기 위해 특목고 (당시에 과고나 외고) 진학을 선택했다. 그렇게 여러 지역에서 모인 상위권들끼리 새로운 경쟁이 시작되었다. 상위권에 익숙했던 친구들이 모였지만, 그 속에서 다시 상위권과 하위권으로 갈리게 되었다. 학생들은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만 남들보다 앞설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런 경쟁 속에서 떨어져 나온 친구들은 좌절을 겪게 되고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과 같은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그렇다고 살아남은 친구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계속해서 경쟁하였다.
나도 앞서가는 순간도 있었고 뒤쳐진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다. 사실 뒤쳐지는 것보다야 앞서가는 게 낫긴 하나 그 속에서도 늘 어려움을 있었다. 정말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앞서가기 위해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하고 잠도 줄여가는 인고의 시간이 숨겨져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 앞서 나가는 사람도 굳이 그 내용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본인이 적은 노력으로도 대단한 결과를 내놓은 양, '천재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노력이 몸에 배어있는 경우가 많고, 보통의 사람과 노력의 기준이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앞서가는 사람들은 항상 외롭다. 또래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들의 노력이 '타고난 머리'로 폄하당하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들은 '자랑'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아 말을 아끼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그들을 깍아내리려고 누군가는 싹수가 없다는 식으로 무리에서 도태시켜려고도 한다. 또한, 앞서 나가는 사람은 늘 기대감이 따르기에 항상 부담감에 사로잡혀있고, 자존심이 강한 경우가 많다. 일에 대한 과한 책임감을 요구받는 경우도 많고, 앞선다는 이유로 부당한 배려를 강요받는 경우도 많다. 즉, 타인과 어울리기에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이런 이유로 앞서 나가는 사람일수록 보통의 사람보다 더 올바른 마음가짐과 태도가 요구된다. 과거의 사회에서는 앞서가는 경우 어느 정도 인성이 안 좋아도 용인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높은 도덕적 잣대가 들이밀어지는 분위기이다. 어릴 때부터 늘 앞서가는 삶만 살아왔다면 자신과 다른 타인을 공감하는 능력이나 베풀고 희생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오히려 그런 것을 배울 기회가 없었을 수 있거나 배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기에 앞서가는 사람일수록 대외활동을 많이 하고 사람들과 많은 관계를 맺으면서 인성을 쌓아가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자녀를 키울 때에도 공부를 잘한다고 '인성교육'을 패스하는 것은 미래에 독이 될 수도 있는 길이다. 뉴스만 봐도 엘리트들이 보여주는 비도덕적이고 비정상적인 내용들도 상당하지 않은가?
앞서가는 것의 끝은 어디일까?
과연 어디까지 앞서 나갈 수 있을까? 앞서 나가는 것의 기준이 무엇일까? 사람들 마다 중심을 두는 가치가 다를 수 있다. 또래보다 좋은 대학? 좋은 회사? 좋은 직업? 높은 연봉? 결혼? 직책?.... 아니면 노화인가? 농담이다. 보통의 친구들이 따지는 기준으로 보자면 나는 운이 좋게도 다양한 면에서 또래들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 편이다. 또래들에 비해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고 높은 직책에 있으며 높은 연봉을 받는다. 하지만 회사는 주는 만큼 무거운 책임감과 능력을 요구하고 있기에 나이에 비해 부담이 되는 점도 크다. 솔직히 지금은 이런 점들이 남들보다 앞서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앞서가는 것은 '앞서가야 된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가는 것'이다. 당장 물질적인 것이나 능력적인 것으로 앞서 가봐야 몇 년 남짓이지만, 인생에서 정신적인 만족감과 성취감을 채워가는 법을 알게 된다면 누군가는 일 평생 깨닫지 못하는 것을 단번에 얻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이 무엇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설명해보자면 아래와 가까울 것이다.
물욕이나 과시욕이 적다.
행복감은 자아성취와 삶의 만족감을 통해 얻는다.
늘 하고 싶은 것이 많다.
하루가 소중하고,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이 아쉽다.
짜증이나 화가 잘 나지 않는다.
마음이 늘 평온하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일어난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앞서가는 것의 끝은 남과의 비교에서가 아닌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