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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도난 사건...

2편, 이 사건 직접 해결하겠어!

by 강준
인생에서 가장 시트콤 같았던 순간.

약대 재학 시절, 친한 친구가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공동생활이 불편하여 자취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원룸을 2번이나 구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름 경력자 행세를 하며 함께 부동산도 다녀주기로 했다. 몇 곳을 둘러보았고 집을 고르는 꿀팁을 전수해주며 친구 상황에 적합한 집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친구는 처음 자취를 하다 보니 궁금한 것도 많고 필요한 것도 많아 자주 도움을 요청했다. 처음 문제가 발생한 것은 전기요금이었다. 친구는 방학 잠시 본가에 내려가 있었고 한 달 후에 다시 원룸으로 돌아왔는데 전기요금이 4만 원이나 나와있던 것이었다. 평소에도 집의 전기요금이 생각보다 많이 나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집을 비워둔 사이에도 한 달새에 이렇게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혹시 누가 집에 들어와서 전기를 쓴 건가 하고 무서워하기까지 했다. 내가 가서 계량기를 살펴보니 아무래도 다른 집이랑 뒤 바뀌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었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해당 사실을 설명하였더니 본인이 이 집을 짓고 10년 동안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믿지 않았다. 몇 차례 더 이야기를 하고 나니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찾아오셨다. 그리고 나서야 전기 관련 사람들을 불러 계량기를 확인하게 되었다. 결국 모든 계량기가 뒤죽박죽인 것이 확인되었고 친구는 지금껏 과하게 냈던 전기세를 모두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집주인은 정말 미안하다고 하였고... 도대체 10년 동안 왜 아무도 항의를 안 했는지 의문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집주인과는 다시 볼일이 없을 것 같았다.


어느 화창한 토요일이었다. 그날따라 소곱창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 친구에게 곱창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도 친구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큰일 났다!!!. 빨리 우리 집으로 와!!!" 나는 무슨 일이 생겼나 급하게 친구 집으로 달려갔다. 도착했더니 친구 집 바닥은 물난리가 나 있었다. 아니 이렇게 화창한 날에 홍수라도 난 거야? 온 바닥은 물로 가득 차 있었고 바닥에 두었던 옷이나 책들은 모두 젖어있는 상태였다. 이미 친구가 휴지와 수건으로 막아보려고 애쓴 흔적들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뿐인데 집이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바닥의 물은 만져보니 따뜻하고 깨끗한 물이었다. 음... 이건 보일러관이 터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해당 사실을 설명드렸다. 집주인 아저씨는 이 집을 짓고 10년 동안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믿지 않았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오신다고 했다. 그 사이 우리는 집을 치울 용품을 사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다이소에 가는 도중에 친구는 갑자기 신용카드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집에 두고 왔겠지'라고 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일단 집 정리부터 하고 이후에 찾아보자고 하며 안심시켰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열심히 물을 퍼냈다. 열심히 걸레질을 하고 휴지로 닦으면서 청소를 하던 도중 집주인 아저씨가 도착했다. 아저씨는 상황을 보고 매우 난감해하시며 공구를 가지고 와서 직접 보일러 관을 고치시겠다고 하셨다. 내가 할 줄 아시냐고 여쭤보니 처음 해본 다고 하셨다... 그렇게 아저씨는 집 세면대 아래쪽에서 쭈그리고 앉으셔서 공구로 보일러 관을 만지고 계셨고 나는 남은 물을 퍼내고 있었고 친구는 휴지를 사 오겠다며 편의점으로 갔다.


친구가 양손에 휴지를 들고 돌아왔다. 휴지로 마지막 남은 물기들을 제거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친구가 소리를 질렀다. "헐... 큰일 났어!!!!". "아니 또 왜?". "누가 내 신용카드로 돈 긁었어...". "뭐라고?".

그리고는 나에게 휴대폰으로 결제된 문자 내역을 보내주었다.


<결제 내역>

11:50, 로데, 15,000원 결제.

11:52, 집 앞 편의점, 3,500원 결제.

11:55, 로데, 150,000원 결제.


황당했다. 15,000원을 먼저 긁고 5분 뒤 15만 원을 긁은 것은 매우 수상했다. 친구는 멘붕에 빠졌다. 나는 친구에게 카드 뒤에 사인을 해두었냐고 물어봤다.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평소 결제할 때 서명을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다. 대충 찍 긋는다고 했다. 난감했다. 일단 경찰서에 전화해서 도난 신고를 했다. 바로 출동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카드사에 전화를 해서 카드를 정지시켰고 '로데 (가명)'의 소재지가 어디인지 확인했다. 그곳은 의정부 소재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로데라는 곳을 검색했다. 시장 쪽에 있는 음식점이었는데 전화번호는 나와있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다음 거리뷰'를 통해 추적해보니 간판이 보였고 그곳에 전화번호가 쓰여있었다. 나는 녹음을 킨 채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방금 그 업장에서 '도난카드 사용' 신고가 확인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15,000원 결제하고 연달아 150,000원 결제한 사람 있나요?]

[네? 누구신대요.]

[카드 주인이에요.]

[잘 몰라요.]

[잘 모르다뇨, 방금 10분 전에 15만 원을 결제한 것이 확인되었어요.]

[아, 난 손님 얼굴 기억 못 한다니까 방해하지 말아요.]

[카드 도난 사건이에요. 방금 전에 결제했으면 아마 지금 계실 텐데요. 음식점인데 어떻게 15만 원짜리 음식이 있죠?]

[술이에요.]

[술을 시켰으면 지금 마시고 계실 텐데 그 손님 자리에 있죠?]

[아뇨, 돈을 긁고 나가서 몰라요. 아 바빠요 끊어요.]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가 꾸리 한 냄새가 났다. 분명히 범인과 주인은 아는 사이이거나 단골일 것 같았다. 15,000원을 긁고 잔액 유무를 파악한 후에 15만 원을 긁은 것은 너무 뻔한 전개 아닌가? 하필 운 좋게 (?) 그 사이에 친구는 편의점에서 삼성 페이로 휴지를 구입하였다. 이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느낌이었다. 그리고 카드가 없어진 것을 깨닫고 20분도 안되어 의정부에서 긁힌 것으로 보아 카드는 오늘이 아닌 어제 분실했던 것 같다. 게다가 15만 원짜리 술을 시키고 바로 음식점을 나간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잠시 후, 경찰차가 온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와보았다. 두 명의 경찰관이 운전석과 조수석에 타 있었고 조수석에 탄 경찰은 창문을 내린 채 운전석의 경찰관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조수석 경찰관이 사수였다. 원룸이 약간 골목이다 보니 부사수는 한 번에 차를 주차에 성공하지 못했고, 수차례 시도에도 영 시원치 않았다. 사수 경찰관이 버럭 화를 내면서 부사수 경찰관에게 내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본인이 직접 운전하여 주차를 했다. 두 명은 약간 만화에서 보는 콤비(?) 같은 느낌이었다. 선배 경찰은 약간 키가 작고 잔소리가 많은 스타일이었고, 후배 경찰은 키가 크고 말랐으며 약간 어리바리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사건 접수를 위해 집 현관까지 데리고 들어왔다. 집 안에 들어와서 경찰관들이 마주한 상황은 실의에 빠진 내 친구와 몸을 수구린 채로 세면대를 수리 중인 집주인 아저씨였다. 갑자기 두 명의 경찰관이 등장하자 내 친구와 집주인 아저씨도 깜짝 놀랐고, 경찰들도 홍수가 난 집안 상황과 벌러덩 누워있는 아저씨를 보고 당황해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내가 중간에 끼어서 서로에 대한 소개를 해주었다. "아, 이쪽은 이 건물 집주인 아저씨가 이쪽은 카드를 분실한 친구이고 저는 이 친구의 친구입니다.", "아저씨, 이 분들은 카드 분실 신고를 받고 온 경찰분들이고요." 집주인 아저씨는 머쓱하게 일어나셔서 "수고 많으십니다. 파이팅!"을 외치시고는 다시 보일러 관을 들여다보셨다. 경찰은 "아... 수고하십시오"라고 답을 했다. 이 상황이 너무 웃겼지만, 그 자리에서는 차마 웃을 수 없는 분위기라 혀를 깨물어가며 열심히 참았다. 나는 친구를 대신하여 경찰관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선배 경찰은 사건 접수를 하다 말고 갑자기 지갑을 꺼내 본인의 신용카드를 보여주며, "이렇게 뒤에 서명을 해두셔야 합니다~ 그리고 매번 같게 서명을 하셔야 카드사에서 배상을 해줍니다."라고 갑작스러운 조언을 해주었다. 일단 로데라는 곳에서 범인이 도난카드로 술을 긁었고, 가게 주인과 분명 안면이 있는 사이 같으니 그쪽부터 수사를 해달라고 했지만 경찰관들은 자기들이 판단해서 하겠다고 하시고 떠났다. 집주인 아저씨도 배관 나사를 잘 조였으니 괜찮을 거라고 하고 가셨다. 그리고 우리는 기분 전환을 위해 곱창을 먹으러 갔다.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사건을 배정받은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어봤더니, "뭐 출동도 해봤는데 CCTV도 없었고 결국 못 잡았어요. 금액도 그렇게 크지도 않은데... 음...", "그래도 도난사건이니 잡아주세요. 그쪽 가게 주인이랑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가게 주인도 물어봤는데...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데요, 일단 알겠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세요" 내가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문자가 왔다. '이번 사건은 OOO에 이관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또 문자가 왔다. '이번 사건은 OOO에 이관되었습니다.' 사건 해결을 기다리다가는 범인도 못 잡고 돈도 못 돌려받을 것 같았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기로 했다. 사실 카드 뒤에 서명을 잘해두고, 매번 같은 서명으로 결제를 했다면 카드사에서 전액 배상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 기었기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친구의 핸드폰을 빌려 로데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도난 카드 관련해서 연락드렸어요.]

[아! 왜 또 전화하고 그래요, 경찰 한태 모른다고 말했는데!]

[아뇨~ 그냥, 아주머니 아니신 거 알죠. 그냥 그때 상황만 한번 여쭤보려고요. 혹시 그 사람이 왜 나눠서 결제를 해달라고 했나요?]

[몰라, 뭐 잔액 있나 확인해본다고 해달라고 했어요.]

[아, 그러셨구나. 그럼 15만 원 결제할 때에는 아마 그 사람이 서명했을 텐데, 뒤에 싸인이랑 비교해보시는 것 잊지 않으셨죠?]

[아~내가 바쁜데 그거 비교해볼 시간이 어딨어? 그냥 내가 쓱 긋고 말았지.]

[... 직접 쓱 긁으셔서 확인 못하셨겠군요?]

[응 맞아, 바빠서 그랬지.]

[협조 감사드려요.]

나는 로데 주인이 '대리 서명'을 했다는 녹음본을 확보했다. 그리고 카드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카드사 담당자에게 결제일 당시 로데 (의정부, 카드 결제) -> 편의점 (서울, 삼성 페이 결제) -> 로데 (의정부, 카드 결제) 순으로 2~3분 간격으로 긁힌 것을 제시하면서 카드가 명백히 도난당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를 통해 카드에서 피해금액의 50%를 배상해주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그리고 담당자에게 카드 결제가 대리서명이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녹음파일을 보내주었다. 며칠 뒤, 카드사에서 연락이 와서 로데 주인이 대리 서명한 것을 시인했다고 하여 나머지 50%는 로데 주인이 배상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그렇게 피해금액 전부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물론 16만 5천 원은 적은 금액이었지만... 남이 해주기만을 기다린다고 해서 일이 모두 풀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몇 주 뒤, '해당 사건은 OOOOOO 한 이유로 수사 종결되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그렇게 카드 도난 사건은 미제사건이 되어 버렸다. 범인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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