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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근로계약서를 쓰다.

8편, 경제적인 자립 계획을 세우기.

by 강준
첫 근로계약서를 쓰고 세금을 내는 어른이 되었다

다시 약대 졸업 직전으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나는 마지막 학기까지 진로에 대해 끝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끝까지 고민했던 두 가지의 방향이 있었다. 첫째는 군대를 다녀와서 약국에서 근무를 하는 것이다. 이 길은 빠르게 경제적으로 안정해질 수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선택하는 길이다. 다만, 새로운 도전의 기회는 더 이상 없을 수 있다. 두 번째는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다. 석사 학위를 취득하면 제약회사에서 전문 연구요원을 병행할 수도 있고 아니면 박사 학위를 하면서도 병역을 대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길의 필요조건은 내가 대학원과 잘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석사는 2년 졸업이지만 교내 자격요건이나 교수님만의 조건에 맞추지 못한다면 3~4년 내에도 학위를 취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특히, 박사의 경우에는 학위를 수료하고 (보통 3~4년), 전문 연구요원으로 3년을 추가로 복역해도 적어도 6~7년을 걸린다. 사실 서울대만 둘러보더라도 6~7년 만에 졸업하는 경우는 빠른 편이고 늦은 사람들은 10년이 넘도록 남아있기도 했다. 한 번 잘못 발을 들이게 되면 중간에 포기하기도 힘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본인의 성향이나 교수님의 성향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방학을 이용하여 다양한 연구실에서 미리 인턴생활을 경험해보았던 것이고 그를 통해 나의 성향을 파악해본 것이다. 결론은 연구는 정말 재밌지만, 대학원 생활 자체는 나와 전혀 맞지 않았다. 박사까지는 정말 못하겠고 꼭 한다면 석사까지는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4학년 심화실습 때, 친구들은 회사, 병원, 약국에 가려고 경쟁할 때 나는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대학원을 편하게 선택하였다. 게다가 선배들도 잘 가지 않는다는 악명 높은 연구실에서 해보기로 결정했다. 소식을 들은 일부 교수님들은 (나를 이뻐하시는) 나를 따로 불러서 말리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꿋꿋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왜 아무도 안 갈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물론 아무 계획도 없이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보통은 약대 선배들이 있는 연구실에 들어가서 도움을 받는 것이 심적으로 편할 수는 있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안정된 길이라는 반증이 되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자유도가 떨어진다'라고 생각하였다. 내 위에 직속 선배가 있다는 것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가로막는 천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약대 선배가 한 명도 없는 연구실 (타대생으로 구성)에 지원하기로 했다. 내가 들어간다고 하니 교수님도 매우 기뻐하셨다. 내 전략대로 나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었고 교수님의 기대에 120% 부응하였다. 이미 연구에 대한 경력이 쌓여있어서 나는 짧은 적응기간을 마치고 개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연구실에서 진행되는 국가과제를 맡아 주도적으로 진행하였다. 당시 학부생임에도 동아제약과 진행하는 연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며 성공적으로 결과를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교수님은 나에게 대학원에 들어오라고 수차례 설득하였고, 나는 '조기졸업'을 시켜달라고 협상을 시도하였다. 조기졸업제도는 지금껏 '유명무실'한 제도로 1년 반 만에 석사를 일찍 졸업시켜주는 제도였다. 그 이유는 해당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들이 필요했다. 첫째로는 대학교 학점이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야 하고, 3학기 내에 대학원 학점을 전부 이수해야 하고, 3학기 내에 졸업자격시험/논문 발표/구술평가 등에 합격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다른 교수님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필요했다. 사실 어떤 교수도 대학원생을 잡으면 더 잡고 싶지 일찍 놔주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교수가 조기졸업을 시켜줘 버리면 다른 학생들의 분위기를 흐릴 수도 있기에 지금껏 조기 졸업의 사례가 없었던 것이다. 교수님도 조기졸업 건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으셨다. 조기 졸업을 하려면 다른 교수들이 인정할 만한 수준의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적어도 졸업 전에 SCI급 해외 학술지에 논문 1편을 출간한다면 조기졸업을 시켜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흔쾌히 승낙을 하고 졸업하기로 결정하였다. 물론 그때는 학부생이라서 잘 몰랐다. 석사과정이 1년 반 만에 SCI급 논문을 출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약대 졸업과 동시에 나는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나는 앞으로 대학원 생활을 위한 자금 관리 계획을 세워야 했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은 주말 알바를 구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과외로 돈을 버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제 면허를 땄으니 약사로서 일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였고 주말 약사에 지원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집에서 가까운 큰 시립병원에 이력서를 보냈더니 바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간단한 면접을 진행하고 며칠 뒤에 합격통보를 받았고 근로계약서를 쓰러 오라고 하였다. 나는 기간제 근로자이면서 근무시간이 적기 때문에 '촉탁직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된다고 했다. 정규직은 아니었지만, 나의 공식적인 첫 근로계약서였기 때문에 꼼꼼하게 읽어보고 서명을 하였다. 근로계약서를 쓰니 이제 나도 정말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물론 풀타임 근무를 아니라서 연말정산은 하지 않지만 5월마다 종합소득세를 정기신고를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사회인이 된 것이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병원에 취업하면서 나의 일상을 단조로워졌다. 평일에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실험을 '열심히' 하고 오후 6~9시 사이에 퇴근을 했다. 대학원은 토요일도 동일하게 출근을 했고 낮 12시까지 연구를 하고 퇴근을 했다. 퇴근 후에는 주로 데이트를 하곤 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병원 약사로 근무하는 생활을 살았다.


[대학원 생활 자금 관리 계획]

1. 학비 = 매 학기 600만 원 X 3 학기 = 1,800 만원.

우수한 성적을 받고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면 학교에서 장학금을 주는 제도가 있었다. 덕분에 딱 한 학기 등록금만 내면 되었고 조기졸업을 하게 된다면 1학기에 대한 비용도 절감할 수 있었다.

2. 주거비용 = 한 달 40만 원 x 18 개월 = 720 만원.

3. 생활비 = 한 달 80만 원 x 18 개월 = 1,440 만원.

4. 저축 = 한 달 50만 원 이상.


이제 나이가 들면서 주거비용, 생활비 그리고 부대비용에 대한 지출이 많이 증가하게 되었다. 한 달에 120~140만 원 정도를 소비로 사용했고 그 외의 비용은 저축하는 데 사용했다. 당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자연스레 데이트 비용도 늘어나면서 생활비가 학생 때보다는 급증하게 되었다. 당시 연구실에서도 참여하는 국가과제가 있기에 매달 인건비를 받았고 주말에도 약사로 근무를 했기에 한 달 수입은 약 160 ~ 200 만원 정도가 되었다. 석사 1년 차가 지나가면서 학교에서도 장학금도 받고 외부 용역도 병행하면서 수입이 260~300 만원까지 증가하기도 했다. 물론 추가적으로 업무를 해야 하기에 평일 밤 10시 이후까지 일하는 것도 비일비재했었다.


소소하게 돈을 모으면서 언젠가는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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