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가 없어도 성장할 수 있다
11편, 사수가 없는 팔자인가?
물고기를 잡는 법을 스스로 익히면, 혼자 새도 잡고 닭도 잡는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제약 벤처회사에서 입사 제안을 받아 합류하게 되었다. 나의 주요 담당 업무는 신약개발이었다. 작은 회사다 보니 내가 입사하면서 새로 팀을 만들게 되었고 사수도 없이 홀로 팀장이 된 것이다. 물론 사수가 없는 경험은 대학원 때에도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내 사수가 한 달도 안되어 자퇴를 하였고 그 팀에서 혼자 기존 업무를 인계받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대학원 때에는 학생이라는 신분이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교수가 지는 것이었고 나는 어느 정도 부담에서 벗어나서 나의 일만 열심히 하면 되었었다. 반면에 회사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회사 전체로 보면 다양한 부서들이 있고, 전체적인 업무가 분담이 되어있기에 한쪽에서 금이 가게 되면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나로 인해 회사가 손실을 입을 수도 있기에 팀장이라는 자리가 가지는 책임과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학원에서는 다루던 연구비 수준이 천만 원대의 수준이라면 회사에서는 억대로 쓰기 때문에 결정에 있어서도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그러면 이 회사가 아니고 다른 회사를 가지 그랬냐?라고 했던 지인들도 많았다. 그래도 이미 체계가 잘 갖춰진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안정적이고 정석적인 방법이겠지만... 설레지 않았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봐도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그것이 또 벤처정신 아니겠는가? 그래서 멘땅에 헤딩을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시행착오가 크겠지만 일단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사수가 없는 회사를 가지 말라던 주변의 조언들]
1) 사수가 없다는 것은 체계가 없다는 것이에요. 절대 가지 마세요.
2) 이직 후 더 큰 곳에서 동일 연차의 동료들과 퀄리티 차이가 많이 될 것입니다. 연봉 대우도 다를 거고요.
3) 본인이 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객관적인 시선을 놓칠 수가 있어요.
4) 오만가지 일을 혼자 해야 되니 고생만 합니다.
5) 깡통 경력됩니다. 무조건 가지 마세요.
'청개구리 심보' 혹은 '반골기질'이 있던 나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는 오기를 불러일으켰다. 사수가 없는 것도 혹시 좋은 점이 있지 않을까? 하며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다. 역시나 어떠한 내용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벤처기업의 성공신화를 이끌었던 누군가는 당연히 사수가 없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이렇게 고민한다는 뜻은 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뜻이다. 이왕 갈꺼라면 고민하다가 나중에 돌아가지 말고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돌이켜보니 가장 좋은 사례는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원에서 사수가 없었음에도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우수 대학원생'으로 졸업을 했던 것에는 분명 숨겨진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사수가 없이 성장하는 방법]
1. 불안감을 활용하자
자주 사용되는 표현 중에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라'라는 말이 있다. 사수가 있는 환경에서는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사수가 없는 환경을 비유해보면, 친구들이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우고 있을 때 부럽다고 구경만 하지 말고, 그물을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보자.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스스로 그물을 만드는 법을 익히고 고기를 잡아본다면, 나중에는 새총을 만들어서 새도 잡고 닭장을 만들어서 닭도 사육할 능력까지 생기게 될 것이다. 반면, 그 친구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닭을 잡으라고 시키면 닭장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줄 사수를 또 찾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누구나 처음 하는 일에는 부담감을 가지게 된다. 일의 중요도가 높을수록 불안감은 더욱 커지곤 한다. 내가 가는 방향이 옳은지? 어느 정도로 준비를 해야 하는지? 이렇게 해도 되는지? 항상 고민하고 걱정의 반복이다. 물론 좋은 사수가 있다면 해결책을 제시해주거나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수에게 일을 잘 배우고 응용한다면 크게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를 경험해보면 꼭 좋은 사수만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사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성장을 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남들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많은 시도를 하고 더 많은 실패과정을 거쳐야 한다. 내가 처음 석사가 되었을 때 나는 항상 다양하고 새로운 분야들을 도전했다. 불안하고 성공 가능성도 낮았지만 성공하기 위해 논문을 계속 공부하고 생각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경험을 하나씩 쌓아나갔다. 처음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으나 어느 정도 쌓인 경험은 내공으로 변화되었고 이후에는 속도가 붙기 시작해 남들보다도 빠른 일처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2. 한계는 정하지 말고 자유를 활용하자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있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아졌음을 비유하는 말인데, 이런 상황은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제자들을 키우고 그중 몇 명만 '청출어람'을 이뤄내며 인류는 조금씩 발전해왔다고 생각한다. 회사라는 특수한 곳에서 사수에게 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데 사실 그 사수를 뛰어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회사라는 수직적인 구조 내에서 사수나 부사수 둘 중 하나가 퇴사하지 않는 이상 함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어떤 업무를 하더라도 사수의 지시를 받게 되고, 업무에 대해 항상 보고를 하고 피드백을 받아야 하기에 보이지 않는 벽을 부수는 게 쉽지는 않다. 당연히 나의 업무 경력이 쌓임과 동시에 사수의 경력도 함께 쌓인다. 나는 업무 능력만 쌓았지만 그는 사람을 관리하는 능력까지 쌓고 있다. 청출어람은 회사 내에서는 쉽지 않은 말이다. 또, 나의 한계점이나 기준은 사수의 수준에서 정해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사수가 했던 만큼만 혹은 사수보다 약간 더 잘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기준으로 잡혀 나의 발전 가능성에 한계를 만드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사수가 없는 것의 장점 중 하나는 자유로움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제약을 덜 받게 된다. 이는 도전의 기회를 줄 것이고 자유로운 창의성을 높여줄 수 있다. 만약 나와 생각이 다른 사수가 있었다면, 성공확률이 낮은 프로젝트나 귀찮은 일은 사전에 차단당할 수도 있다. 내가 처음 연구를 시작하던 당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모델을 확립하여 기전을 증명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참고할 만한 논문이나 문헌조차 없었다. 이를 보고 주변에서는 '남들도 해봤는데 안됬으니깐 없겠지?'라며 말리거나 '선배들이 한 만큼만 하면 졸업이야. 적당히 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실패하면 뭐 어때? 해보고 안되면 좋은 경험이지 라는 생각으로 일을 추진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사수도 없었기에 내 선택을 말릴 사람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대학원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한정된 시간 안에 빨리 결과를 내고 학위를 따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도전도 두려워한다. 내가 도전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약사'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심리적 안전장치를 얻기 위해 약대에 진학했던 것도 있었다. 결국 나는 남들이 해보지 않은 새로운 도전들을 시도해보았고 좋은 결과를 얻어 오히려 남들보다 빠르게 학계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3. 문제 해결 능력 만렙을 찍을 수 있다.
회사에서 임원진들은 사업 계획 방향 수립, 타 회사 간의 네트워크 확립, 올바른 조직 문화 확립, 회사 내 인재 관리 그리고 회사 내/외 문제 해결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를 꼽아보자면 '문제 해결 능력'이 아닐까 싶다. 회사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문제들이 끝없이 터진다. 실무 담당자들은 업무에서 만큼은 임원보다 전문가일 수 있지만 숲보다는 나무만 보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임원이라면 모름지기 숲을 보면서 다양한 문제들을 조율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위치이다. 그만큼 어깨에 지고 있는 부담감도 크고 책임을 져야 할 때는 자리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직책에 대한 이해도가 적은 신입 사원들은 업무에 대해 잘 모르는 임원을 보고 '어떻게 임원이 되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축구 감독이라고 다 축구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수가 없는 환경에서 문제 해결 능력은 자연스레 성장하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수가 없이 일을 하다 보면 상당히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하고 많은 문제들이 터진다. 직접 고민하고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 능력'이 자연스레 길러지게 된다. 말은 쉽지만 그 과정 속에는 끝없이 고민과 노력이 숨어있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일련의 과정을 수도 없이 겪다 보면 몇 년이 지났을 때 본인도 모르게 비약적으로 발전돼있을 것이다.
당연히 사수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안정적이고 성공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한 번쯤은 사수가 없는 환경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경험도 필요하다. 그런 경험은 언젠가 본인에게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사수는 없는 운명이지만 부사수들은 참 많았다. 대학원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여러 부하직원들과 함께 업무를 하고 있다. 덕분에 젊은 나이부터 중간관리자로서 사람을 관리하는 기회를 많이 얻고 있다.
그러면서도 느끼는 것은 업무 중 가장 힘든 것이 사람을 관리하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