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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Jan 29. 2020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ureka 비문학 읽기 18


아이히만은 아주 근엄한 태도로 교수대로 걸어갔다. (…) 검은색 두건을 머리에 쓰겠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나는 그것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는 완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 냈다. 교수대에서 그의 기억은 그에게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던 것이다. 그의 정신은 ‘의기양양하게 되었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Context

배경 읽기_ 아이히만과 악의 평범성

작품 해설_ 악마인가 악마로 만들어진 사람인가

 ① 극악무도한 유대인 문제 해결책

 ② 아돌프 아이히만그는 어떤 사람인가?

 ③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 대하여


배경 읽기_ 아이히만과 악의 평범성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년 10월 14일 ~ 1975년 12월 4일)

독일 출신의 정치 이론가. 종종 정치 철학자로 평가되지만, 아렌트는 철학이 "단독자인 인간"에 관심을 갖는다는 이유로 그러한 호칭을 거절했다. 그는 대신에 자신을 정치 이론가로 묘사했는데, 자신의 업적이 “‘한 인간’이 아닌 ‘인류’가 지구에 살며 세계에 거주한다.”는 사실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의 업적은 주로 권력의 속성 및 정치, 권위, 그리고 전체주의에 관한 것이다. 그의 업적의 상당한 부분은 집단적 정치 행동과 같은 의미로서의 자유의 개념을 긍정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자유는 정치가 끝나는 데서 시작한다”라는 자유주의 가정에 대항하여, 아렌트는 자유를 공적이고 연합적인 것으로 이론화하였다.


아렌트는 <뉴요커>에 낸 아이히만 공판에 대한 보고서(훗날 이 보고서를 발전시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집필했다)에서 악이 근본적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평범성(banality)의 작용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책에서 '생각 없음'(thoughtlessness)이 악행을 낳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는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유대인과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 약 1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계획적으로 학살한 사건을 의미한다. 사망자 중 유대인은 약 6백만 명으로 그 당시 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 중 약 2/3에 해당한다. 약 백만 명의 어린이, 약 2백만 명의 성인 여자와 약 3백만 명의 성인 남자가 죽은 것으로 파악된다.


유대인 학살은 히틀러 한 사람만의 범죄가 아닌, 독일 사회가 인종차별주의에 동조하는 가운데 벌어진 범죄다. 당시 독일의 모든 부서가 학살에 관여했다. 교회와 내무부는 유대인의 출생기록을 제공했고 우체국은 추방과 시민권 박탈 명령을 배달했다. 재무부는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했고, 기업은 유대인 노동자를 해고하며 유대인 주주들의 권리를 박탈했다. 대학은 유대인 지원자를 거부했고 유대인 재학생에게 학위를 수여하지 않았으며 유대인 교수를 해고했다. 교통부는 강제수용소로 이송할 기차를 운영했다. 제약회사는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에게 생체실험을 행했다. 수용자들은 수용소에 들어가면서 모든 소지품을 반납했고 이는 독일로 보내져 재활용됐다. 또한 독일 중앙은행은 비공개 계정을 통해 유대인에게 갈취한 검은돈을 세탁하는 데 일조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나치나치당)

1919년 1월 5일에 조직되었으며 초대 대표는 안톤 드렉슬러였다. 1919년 9월 12일, 아돌프 히틀러는 상관 장교로부터 독일 노동자당(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전신)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1920년, 뮌헨의 한 맥주홀에서 개최된 독일 노동자당 집회에 참석한 히틀러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독일 노동자당의 위원이 된다.


이후 나치는 ‘아리아인’, ‘게르만인’, ‘독일인’ 혈통의 유전적 우수함을 주장하며 당시 독일인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는다. 1932년에 나치는 독일의 제1당이 되었으며,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임명된 1933년에는 나치 당원 수가 250만 명에 이르렀다. 정권 장악 후 히틀러는 수많은 반유대적‧반인권적 법안을 도입하며 12년 동안 독일을 통치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패배가 확실해진 1945년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히틀러의 통치 기간 동안 학살된 사람은 1100만 명(추정치)에 이른다. 가장 끔찍한 사실은, 이 반인륜적인 범죄자가 오직 선거와 투표라는 민주적인 절차만으로 독일의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내세운 25개 조 강령의 내용 중 일부.
제4조. 게르만 민족만이 시민이 될 수 있다. 종파에 관계없이 게르만족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만이 시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유대인은 민족의 일원이 될 수 없다.
제7조. 국가의 모든 인구를 부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국외로 추방시킨다.
제8조. 더 이상 비독일인의 이민을 제한하여야 한다. 우리는 1914년 8월 2일 이후에 독일로 이주한 비독일인을 즉시 국외로 추방할 것을 요구한다.


아돌프 아이히만(1906년 3월 19~1962년 6월 1)

1932년 나치당에 가입했고, 1933년 나치 정보부에 들어갔다. 나치 정보부의 유대인 과장으로서 유대인을 유럽 각지에서 수용소에 열차로 이송하는 최고 책임자였다. 1960년 5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돼 이스라엘에서 공개 재판 후에 1962년 6월 1일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작품 해설_ 악마인가 악마로 만들어진 사람인가



① 극악무도한 유대인 문제 해결책


‘유대인 문제 해결책’이라니! 마치 유대인에게 닥친 어려움을 없애주는 친절한 해결책의 이름 같다. 그런데 사실 ‘유대인 문제 해결책’이란 말은 유대인을 독일 밖으로 추방하고, 한 곳에 격리하고, 결국에는 학살하기 위한 잔인한 계획이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던 사람이 선생님께 “그냥 저희끼리 장난친 거예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살인을 ‘해결책’이라고 부르다니!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용어를 사용했을까?


나치는 이런 완곡한 용어를 수도 없이 사용했다. 이는 스스로의 잔인함을 감추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유대인 학살’을 ‘특별취급’ 혹은 ‘유대인 문제 최종 해결책’이나 ‘소개(疏開; 분산시키거나 분리시키는 것. 특히 제한된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부대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받는 취약성을 감소시키기 위해 분산 또는 분리시키는 것.)’라고 말하는 것. ‘유대인을 학살센터로 이송하는 것’을 ‘재정착’ 혹은 ‘동부지역 노동’이라고 말하는 것. ‘가스 살인’을 ‘안락사’라고 말하는 것. 나치는 이런 표현을 '언어 규칙'이라고 표현했다.


현대 정치인들도 교묘한 정치적 표현 즉, 언어 규칙을 사용하곤 한다.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노동개혁 5대 법안’ 논의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 법안이 겉만 번지르르할 뿐 하나같이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노동개혁 5대 법안’을 ‘노동개악’이라고 바꾸어 불렀다.
하지만 이렇게 겉만 번지르르한 정치적 표현의 효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강력하다. 매일매일 일 하느라 바쁜 직장인들, 공부하느라 바쁜 학생들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사실관계를 확인해 볼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노동개혁 5대 법안’이라는 말은 마치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말처럼 들릴 테니.


나치당의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언어 규칙을 알았겠지만, 지도자의 명령을 수행하기만 했던 낮은 지위의 사람들은(적어도 그중에 일부는) 언어 규칙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인 문제를 해결한다고 할 때 그게 진짜로 유대인에게 닥친 어려움을 해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을 ‘재정착’시킨다거나 ‘동부지역 노동’을 위해 이송한다고 할 때 그게 동부지역에서 유대인을 학살한다는 의미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치는 세 가지의 ‘유대인 문제 해결책’을 준비했다. 첫 번째 해결책은 유대인을 모조리 국외로 ‘추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주변국이 갑작스레 수많은 유대인의 이민을 수용하는 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랐다. 따라서 그다음으로 제기된 두 번째 해결책은 독일 또는 독일이 지배하는 국가의 특정 공간에 유대인을 모조리 ‘격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치의 혐오 정치로 유대인 혐오 정서가 만연했던 당대 독일과 독일의 식민지에서 ‘유대인을 위한 영토’를 마련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였다.


당시에는 ‘격리’가 아니라 ‘수용’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나치는 ‘첫 번째 해결책: 추방’과 ‘두 번째 해결책: 격리’의 실패 소식을 알리며 ‘내쫓는 것도, 한 곳에 몰아넣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건 한 가지 선택뿐이다.’라는 생각을 주입했다. 그리고 그들의 진정한 포부(!)를 밝혔다. 그것이 바로 '학살'. 그들은 학살을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이라고 부른 것이다.


나치는 학살의 시작을 이렇게 묘사했다. “정치적 해결책의 시대가 가고 신체적 해결책의 시대가 시작된 때.”



②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어떤 사람인가?


‘배경 읽기’에서 얘기했듯이 아이히만은 유럽 각지의 유대인들을 독일이 마련한 학살 수용소로 이송하는 이송 전문가였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아이히만은 나치당에서 결코 높은 지위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즉, 아이히만은 앞서 말했던 언어 규칙의 실체를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히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는 ‘동부지역 노동’ 혹은 ‘재정착’을 위해 유대인을 국외 또는 게토(유대인의 격리 장소)로 이송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큰 잘못이지만 유대인을 살육장으로 보낸 사람보다는 유대인을 격리하고 추방한 사람의 죄가 가볍기 때문에, 유대인 문제 해결책이 시행된 초기 상황에 대해 아이히만은 이렇게 변명했다고 한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몰랐다."


그러나 결국에는 아이히만도 ‘최종 해결책’이 진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고, 그때 아이히만은 엄청난 실의에 빠져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폭력을 통한 이런 해결책에 대해……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나는 이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내 일의 모든 기쁨, 모든 자발성, 모든 관심을, 말하자면 나는 완전히 김이 새 버렸다.


극악무도한 살인마의 말 치고는 어딘가 이상하다. 자신은 폭력을 원하지 않았다는 말처럼 들리니까. 그런데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이히만은 더 강경하게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이제 상부의 지시가 내려오지 않아도 ‘총통(히틀러)의 의지’를 스스로 생각해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김이 새 버렸다면서 더 잔인하게 행동하다니,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의 행동을 설명하는 가장 합리적인 대답은 당시 나치 지배하의 독일에서 히틀러의 명령은 그 자체로 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감히 히틀러의 명령을 거절했다가는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히틀러가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는 것. 그래서일까? 재판 당시 아이히만의 변호인도 아이히만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아이히만은 이기면 훈장을 받고 패배하면 교수형에 처해질 행위를 했을 뿐이다. 복종을 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고, 만약 아이히만이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가 그 행위를 수행했을 것이다. 아이히만은 신 앞에서는 스스로가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다.


하지만 변호인의 말처럼 단순히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주장으로는 아이히만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아이히만은 때로 상부의 명령도 거부하곤 했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히만은 ‘총통(히틀러)의 의지’를 거스르는 명령은 자율적으로, 즉 '자신의 의지'로 거절했다(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때의 아이히만에게 '자신의 의지'란 사실 '총통의 의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나치가 전쟁에서 패할 게 확실해지자 나치의 고위 간부 중 일부는 자신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유대인을 구출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는데, 아이히만은 그런 명령을 ‘추잡한 일, 부패’라고 비난하며 따르지 않았다. 그 지시가 총통의 의지에 반하는 지시였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이 그가 유대인을 혐오하는 극악무도한 살인마였기 때문일까? 아이히만이 양심도 없는 괴물이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말하고 싶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가 아이히만을 ‘정상’으로 판정했고, 아이히만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던 성직자는 그가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발표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에 대한 광적인 증오를 가진 사람도 아니었고, 열광적인 반유대주의 세뇌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었다고 한다.


아이히만에게도 양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경우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양심의 스위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아이히만은 어떤 행동이 옳은 것인가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어떨 때 수치심을 느끼고 어떨 때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가 지닌 양심의 스위치는 어떤 것이었을까?



③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 대하여


아이히만은 자기모순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대답을 할 때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서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투어’로 대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두 가지 예를 살펴보자.


재판에서, 자신이 젊은 시절에 배운 단 한 가지가 바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아이히만에게 판사가 “자신의 변호를 위한 증언을 하고 싶다면 선서를 한 뒤 할 수도 있고 선서 없이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아이히만은 선서 아래 증언을 하겠다고 대답한다. 젊은 시절에 유일하게 배운 것이 맹세하지 말라는 것이라면서 선서 아래 증언하길 택하는 행동. 자기모순의 첫 번째 예시다.


아이히만은 법정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악의 짓이 책임을 회피하려고 자신의 목숨을 위해 싸우거나 자비를 간청하는 것이라고 확언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변호인의 지시에 따라 자비를 호소하는 자필 문서를 태연하게 제출한다. 스스로 최악의 짓이라고 말한 행동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행동. 자기모순의 두 번째 예시다.


아이히만의 말과 행동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만한 '관용구'를 떠올리면, 그는 자기모순 따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그 관용구를 사용하고 만족스러워했다. 저자 아렌트에 따르면 그는 언어 규칙(관용구나 상투어) 없이는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이렇게 묘사한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그 어떤 고상한 취향도 없는 사람. 기억력에 엄청난 결함이 있으며 약간의 실어증 증세를 보이고,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것에 철저히 무지하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


앞서 살펴봤듯 나치는 자신들의 행동을 미화하고,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들어 그들을 손쉽게 지배하기 위해서 모순적인 언어 규칙을 사용했다. 그리고 지배자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이 불법이나 다름없는 독재 체제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와 같은 모순적인 언어 규칙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생각 없음; thoughtlessness) 편이 살아남기 편했다. 그런 점에서, 아렌트가 묘사한 아이히만의 부정적 특징들은 아이히만이 나치 체제에서 살아남고 성공하는 데에는 오히려 도움이 됐다. 아이히만처럼 독재자의 언어 규칙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면서 체제에 적응하는 사람이 오히려 나치 체제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쉬웠던 것이다. 아이히만이 사용하던 관용구의 상당 부분은 나치의 언어 규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조지 오웰은 개인을 철저히 감시하는 독재사회의 모습을 그린 자신의 소설 <1984>에서 아이히만처럼 모순적인 두 가지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모두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을 ‘이중사고’라고 표현한다.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자신이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읽었고 “내 의지의 원칙이 항상 일반적 법의 원칙이 되도록 행동하라”라는, 의무에 대한 칸트의 정의에 따라 살았다고 주장했다.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행동을 그렇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을까? 아이히만이 칸트의 말을 엄청나게 왜곡해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칸트는 내 의지의 원칙을 일반적 법의 원칙으로 삼았을 때 문제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라고 말한 건데, 아이히만은 일반적 법의 원칙에 총통의 의지를 대입해 생각했던 것이다. 즉, 아이히만은 의무에 대한 칸트의 정의를 "내 의지의 원칙이 항상 총통의 의지와 같도록 행동하라"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항상 히틀러의 의지에 따라 행동한 그로써는 자신의 행동이 아주 양심적인 행동처럼 느껴졌던 셈이다. 아이히만에게 옳은 것이란 히틀러의 명령이었고, 아이히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경우란 히틀러의 명령을 거역할 때였다.


반인륜적인 독재자의 명령을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다니 끔찍하게 느껴진다. 대체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묻고 싶어 진다. 그런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 비단 아이히만뿐일까? 아이히만을 양심도 없는 괴물 또는 악마라고 비난하며, 그를 교수형에 처하는 것만으로 모든 악이 사라질까?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양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마다 다른 종류의, 양심의 스위치를 가지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무단횡단만 생각해도 양심의 불이 켜지는데, 누군가의 양심의 불은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여 놓고도 켜지지 않는다. 이처럼 인간의 양심은 사실 완벽하지 않고, 체제는 그러한 인간의 약점을 끊임없이 공략한다. 지금도 수없이 만들어지는 수많은 언어 규칙은 인간이 자유롭게 생각하는 능력을 옥죄고, 그로 인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조금씩 악마가 되어 가는 것이다. 인간은 어쩌면 태초부터 악한 게 아니라 악하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이 책의 저자인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과 말하는 능력. 그런 능력들을 손쉽게 빼앗기고 마는 인간의 연약함. 어쩌면 우리 모두가 연약하기에 말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야만 악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히만은 아주 근엄한 태도로 교수대로 걸어갔다. (…) 검은색 두건을 머리에 쓰겠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나는 그것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는 완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 냈다. 교수대에서 그의 기억은 그에게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던 것이다. 그의 정신은 ‘의기양양하게 되었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글_ 이준기 유레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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