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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Mar 20. 2017

Eureka 비문학 읽기 07 "총, 균, 쇠"

불평등의 기원. “그건 다만 행운이었어.”


문명사회의 진화는 불평등의 진화와 다름없었다. 문명사회의 진화는 여러 가지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천명했다. 제국주의 시대의 우생학, 백인우월주의, 남성우월주의, 외모지상주의, 황금만능주의 따위가 그 결과들이다. 이런 불평등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어떤 문명은 쇠락했고 어떤 문명은 부흥했다. 쇠락한 문명과 부흥한 문명, 그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었을까? 문명의 흥망성쇠, 희비를 가른 것은 그저 운이었다.


인간은 침팬지보다 위대한가?     

침팬지는 기껏해야 몇몇 도구를 다룰 수 있을 뿐이다. 개중에도 스스로 창조한 것은 거의 없다. 자연의 산물을 그대로 사용할 뿐이다. 자연의 산물을 필요에 맞게 개량해서 기술을 발전시킨 것은 우리, 인간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문명과 사회의 발전, 예술의 발전, 언어의 발전, 정치제도의 발전은 인간만이 이룰 수 있었던 위대한 업적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인간은 침팬지보다 위대하다. 

혹시 인간은 침팬지보다 위대하다는 말이 불편하지는 않은가? 혹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총, 균, 쇠>는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히 위대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모두 깨부수는 책이다. 실로 위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위대함의 기준은 우리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침팬지의 입장에서 위대함의 기준이 우리와 똑같을 리 만무하다.

자, 인간은 침팬지보다 위대하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면, 당신은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끝났다.


우월주의위대한 거짓말

정말 돈도 실력일까? 정말 부모를 잘 만난 것도 실력일까? 그보다도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실력에 의한 불평등은 아무런 문제가 없이 정당하다는 말인가? 우리가 침팬지보다 ‘똑똑’하다고 해서 침팬지를 마음대로 다뤄도 된다는 말인가? 우리 반의 누구든지 주먹이 세다고 해서 친구들을 함부로 다뤄도 된다는 말인가? 신대륙의 원주민 사회가 구대륙의 중앙 집권적 사회보다 ‘미개’하다고 해서 총과 병원균, 쇠로 된 무기와 갑옷을 이용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원주민 여자들을 납치하며 원주민의 땅을 뺏어도 된다는 말인가? 나치나 일본의 제국주의 국가가 강력하다고 해서 이웃 나라를 식민 지배하며 생체실험, 위안부 등으로 사람을 함부로 다뤄도 된다는 말인가? 제아무리 태생적으로 ‘위대’하게 태어났다고 해도 다른 생명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함의 기준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먼 옛날 신대륙을 발견한 구대륙의 사람들은 신대륙의 원주민들보다 자신들의 민족이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나치는 유대인 민족보다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주장했으며,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도 우리 민족이나 다른 민족들보다 자신들의 민족이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우린 침팬지 민족보다 우월한가? 우리가 만약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그 이유는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진화는 자연의 산물일 뿐, 우월함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니다. 우월하다고 해서 멸시와 불평등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생각들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들이 이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단순히 주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왜 어떤 사회는 위대해지고 어떤 사회는 위대해질 수 없었는지를 심도 있게 분석한다. 침팬지와 인류는 유전적인 차이가 뚜렷하게 존재한다. 인간 민족 간에도 그런 뚜렷한 유전적 차이가 존재하는 걸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 민족 간의 차이는 유전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주로 지리적, 환경적 요인 때문에 나타났다. 그렇다면 지리적, 환경적 요인은 인류의 문명과 사회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불평등의 기원

세상이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 불평등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을까? 개인이나 민족의 능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월한 개인이나 우월한 민족은 그렇지 않은 개인이나 민족에 비해 유전학적으로 뛰어난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일까? 솜씨 좋은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들은 다 잘 나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일까? 우린 정말로 연장 탓을 하나도 하면 안 되는가? 솜씨 좋은 목수와 솜씨 나쁜 목수의 불평등은 어쩌면 진짜로 연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세상의 불평등은 지역에 따라 지리적, 환경적 요건이 다르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지리적, 환경적 요건 차이는 어떻게 오늘날 존재하는 수많은 불평등의 씨앗이 되었을까?

(1) 우리가 타고난 것은 운밖에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다. 당장 오늘내일 먹을 밥이 없다면 기술과 문화의 융성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말은 희망을 주기 위한 격언에 불과하다. 당장 오늘 먹을 식량을 구하지 않으면 내일 굶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목숨을 건 사치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당장 오늘 먹을 식량을 구하는 수렵과 채집 대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을까?

인류 문명이 발전하는 데 영향을 미친 가장 핵심적인 요인을 꼽으라면 단연코 식량 생산의 기원을 꼽아야 할 것이다. 왜 어떤 민족은 오늘날까지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민족은 농경과 목축으로 살아갈까? 오늘날까지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는 민족은 열등하거나 미개한 민족인가? 아니다. 우리가 타고난 것은 운밖에 없다. 운이 좋아서 농경과 목축 기술이 발전하기 좋은 곳에 태어난 사람들은 농경과 목축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2) 식물의 작물화

야생 식물 중에는 사람이 먹었을 때 위험한 식물들도 많다. 그런데 어떤 용감한 사람이 그런 식물들을 다 먹어보고 작물화하려는 생각을 다 했을까? 최초의 작물화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식물은 스스로 씨를 퍼뜨릴 수 없으므로 동물을 매개로 씨를 퍼뜨리도록 진화했는데, 우리는 그 매개체가 되었던 동물 중에 한 종에 불과했다. 딸기는 새를 매개로, 도토리는 다람쥐를 매개로 씨를 퍼뜨리도록 진화했다면 최초의 작물은 사람을 매개로 씨를 퍼뜨리도록 진화했던 것이다.

우리의 조상은 열매가 크거나 맛있는 등, 필요한 종자를 취사선택했다. 따라서 필요한 종자가 아니면 씨를 퍼뜨릴 수 있는 확률이 감소했다. 필요한 종자들만 퍼지고 그렇지 않은 종자들은 서서히 사라졌다. 인간이 먹고 씨를 뱉거나 배설한 장소에서 새롭게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며 우리의 조상들은 작물화를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초기의 작물화 과정에 지식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어떤 지역에서 이런 작물화가 빠르게 시작될 수 있었을지가 중요하다.

작물화가 가장 먼저 시작되었던 유라시아 대륙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겨울은 온난 다습하며 여름은 길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대에 속한다. 이 지역에서는 긴 건조기에도 살아남았다가 다시 비가 내리면 재빨리 성장을 재개할 수 있는 콩류와 곡류 등의 한해살이 식물이 많이 살아남았다. 이런 식물들은 먹을 수 있는 종자를 생산하는 데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열매의 열량이 높고 영양분이 풍부했다. 또한 이들의 열매는 긴 건조기에 적응하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관해 두고 먹을 수 있다. 이런 식물들은 작물화하지 않은 야생 상태에서도 이미 생산성이 높았던 경우가 많았고, 큰 군락을 이루며 자랐기 때문에 수렵 채집민도 그 가치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식물군은 자웅 동주형 제꽃가루받이(자화수분) 식물의 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초기 농경민들이 필요한 형태의 열매를 얻기 위해 식물을 교배시키기에도 편리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초기 농경이 이르게 시작된 것은 그 지대에 살던 조상들이 유난히 똑똑했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지대에 살던 조상들도 저마다의 농경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의 농경만큼 효율적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은 농경과 수렵채집을 병행하거나 그마저도 힘들 때는 농경을 아예 포기하고 수렵채집으로 연명했다. 누군가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3) 동물의 가축화

동물종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그중에서 가축화된 동물은 대부분 대형 육서 초식 동물이다.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가축화의 후보는 많지만 그중에 진정 가축이 될 수 있는 동물은 소수에 불과하다. 가축화는 야생 동물을 인간에게 더 유용한 동물로 유전적으로 개량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야생 동물을 길들이는 것과는 다르다. 야생 후보종이 가축화되려면 다음과 같은 여러 까다로운 특성을 갖춰야 했다.

우선 물에서 사는 동물은 수조도 없는 초기 인류가 가축화하기엔 너무 어려운 상대였다. 식성의 문제도 있다. 체중 450kg의 소를 키우려면 대략 옥수수 4500kg이 필요하며 체중 450kg의 육식 동물을 키우려면 대략 4500kg의 초식 동물을 먹여야 한다. 따라서 육식성 포유류는 단 한 종도 식용으로 가축화되지 못했고 식성이 너무 까다로운 동물들도 가축화의 후보군에서 제외됐다. 이외에도 성장 속도가 너무 늦거나, 감금 상태에서 번식시킬 수 없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너무 겁먹는 등 골치 아픈 성격을 가진 동물들도 가축화의 후보군에서 제외됐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구조를 가진 동물들은 목축에 적합하다. 이런 동물들은 무리를 이루어 살며 무리의 우열 위계가 잘 발달되어 있다. 또, 다른 무리가 자기 무리의 영역을 침범하더라도 싸우거나 도망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한다.

전 세계의 어느 지역에서나 동물을 가축화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흔하지 않았다.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 종이 많은 지역의 사람들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손쉽게 가축의 단백질(고기), 젖(우유), 노동력(탈 것, 쟁기 끌이) 등을 이용할 수 있었고, 그들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4) 정착 생활의 시작인구 밀도의 증가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며 인류는 점차 삶의 터전을 다른 지역으로 바꿀 필요가 없어졌다. 식량생산의 효율성이 증가되면서 식량생산에 투자하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었고, 잉여 식량이 생기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5) 직업의 세분화와 중앙 집권적 정치 체계의 확립불평등의 시작

식량생산에 투자하는 시간이 줄어들며 모든 사람이 식량생산을 위해 일할 필요가 없어졌다. 식량생산 이외의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전사들과 정치가들이 생겨나고 무기 제작자나 예술가도 생겨났다. 식량을 수급하고 전사들을 관리하며 제사를 지내는 등의 역할을 하는 추장도 처음에는 수많은 전문 직업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말을 따르고 누군가는 그들을 이끌며 계급이 생겨났을 것이다. 잉여 식량이나 예술품, 권력 등이 불공정하게 분배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일을 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착취하는 일을 했다.

불평등은 잉여 식량과 함께 생겨났다.

(6) 기술과 문자문화의 발전

직업이 세분화되고 전투가 잦아지며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도구들이 많이 필요하게 됐다. 도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 발전했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새로운 도구들이 발명됐다. 서로가 서로의 발전을 촉진했다. 동시에 정치가들은 민족의 특성에 맞는 문화를 발전시켰고, 더러는 문자를 발명하기도 했다.

(7) 전파와 확산의 불균형

이런 문화와 기술의 전파 속도 또한 지리적, 환경적 특성에 따라 달라졌다. 물이나 사막, 높은 산이나 밀림 등의 험난한 지형이 지역과 지역을 갈라놓은 경우에는 문화와 기술이 쉽게 전파될 수 없었다. 또한 대륙의 축 방향도 문화나 기술의 전파와 확산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다. 동서축으로 길게 뻗은 대륙(위도가 같음)은 대륙 내에서 기후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작물과 가축이 비교적 자유롭게 전파될 수 있었지만, 남북축으로 길게 뻗은 대륙(경도가 같음)은 대륙 내에서 기후 차이가 커서 그럴 수 없었다. 기후가 다른 곳에서는 살 수 있는 식물과 동물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동서축으로 길게 뻗은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농경과 목축 등의 문화와 기술이 남북축으로 길게 뻗은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에 비해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고, 따라서 다른 지역들보다 사회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은 대륙의 축이 동서방향이라는 점에서, 사회가 빠르게 발전하기에 다른 대륙들보다 운이 좋았다.     

(8) 전쟁의 승패를 가른 총

이웃한 민족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강한 민족이 약한 민족을 흡수하거나 노예로 부리거나 공물을 받았다. 어떤 민족이 강하고 어떤 민족이 약했을까?

총이나 쇠로 된 무기, 갑옷처럼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있는 민족, 가축을 일찍부터 기르고 밀집해 살면서 전염병에 면역을 가진 민족이 전쟁에서 유리했다. 또한 중앙 집권적 정치체계를 이루고 문자를 가진 민족은 그렇지 않은 민족에 비해 전쟁에서 유리했다.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효율적으로 전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한 민족이 강했던 이유는 그들이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다. 식량생산이 이르게 시작된 지역이나 그 문화와 기술이 쉽게 전파될 수 있는 지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강한 민족은 단지 운이 좋은 민족이었을 뿐이다.

(9) 대국의 형성과 원주민들

민족과 민족이 합쳐지면서 점점 인구가 많아졌고 소유한 대지가 넓어졌다. 서로의 기술을 받아들이거나 모방하고 전쟁하면서 도구와 기술도 점점 발전했다. 문자도 점점 체계를 갖췄고 정치 조직도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직업은 더욱더 세분화되었다. 추장 사회를 넘어 대국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왕권 사회, 민주주의 사회 등 다양한 사회가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회들의 영향을 받지 못했거나 그것을 이겨낸 민족들은 아직도 원주민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문명사회는 원주민 사회보다 위대한가?

문명사회는 원주민 사회보다 위대한가?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우리가 타고난 것은 운밖에 없다. 모든 불평등은 하나도 정의롭지 않다. 운이 좋았다고 해서 착취하는 것, 운이 나빴다고 해서 착취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절대로 정의롭지 않다. 우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위대한 것은 실로 아무것도 아니다.

인류의 과제는 타고난 운에 의한 불평등을 해소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이 아닐까? 인류가 있는 한 세상은 진보한다. 위대하고 우월한 기술의 발전을 이룩해가는 과정도 분명한 진보다. 하지만 그 기술들은 누군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진보는 또한 정의롭고 공평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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