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의 어느 카페

by 이준

용산에 마당이 딸려있는 카페라니. 귀하다. 물론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용산의 땅값이 지금처럼 비싸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때는 이 카페 건물조차 그저 낡고 오래된 고택에 불과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을까. 20년이 지난 오늘, 그 초라한 건물이, 세월을 정면으로 맞은 듯한 건물이 이렇게 멋스러운 카페로 새로 태어나게 될 줄을...


적갈색 벽돌을 쌓아 올려 지은 건물이다. 그래서 건물 내부 시멘트 벽면을 벗겨낸 자리에는 붉은색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수십 년 전 왠지 초라하고 빈약해 보여 시멘트로 마감을 한 벽면이 세월이 지나 이제는 그 속살을 대놓고 드러내며 그 세월과 풍파를 오래된 훈장처럼 자랑스레 뽐내고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건물의 시그니처 포인트는 바로 지중해의 에메랄드 바다 빛을 띠고 있는 현관문이다. 오래된 벽돌만으로는 다소 힘을 잃을 수 있는 외경에 현관문을 차디찬 에메랄드빛 물감으로 색칠하며 건물에 커다란 반전을 가져다주었다. 문은 아무리 낡고 오래된 것일지라도 거기에 예술이 더해지는 순간 거기에 놀라운 기적 또한 도래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이 건물주는 색감에 대한 조예가 남다른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건물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현관문을 다가가고 있노라면 현관문 옆에 두 뺨 정도 되는 작은 크기의 원형 테이블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위에는 졸린 눈을 억지로 치켜뜨고 누가 또 왔나 지켜보고 있는 고양이 모짜와 대면하는 순간 그대로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은 모짜의 그 치명적 귀여움과 마주하게 된다. 물론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치명상이다.


카페 야외에는 커다란 목련나무와 테이블이 있지만 새하얀 목련 꽃도 온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1월의 영하 날씨에 앉아 있기에는 약간의 용기와 인내가 요구되는 곳이다.

드디어 커다랗고 무게감 있는 에메랄드빛 문의 황금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그때, 기분 좋은, 투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현대적이지도 않은 종소리가 매장 안에 울려 퍼진다.

언제나 나의 최애 자리는 안락한 소파가 있는 1층 통창 옆 4인석 자리이지만 '3인 이상 단체석입니다.'라고 써진 팻말이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주문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한다. 가끔씩 보이는 트렌디하게 이쁜 외모의 여직원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자기 관리가 제법 뛰어나 보이는 외모의 남자 직원 2명이 주방을 채우고 있다.

"비비씨 뉴스 원두 에스프레소 한 잔이요." 익숙한 듯 커피를 한 잔 주문한다.


2층으로 올라가 커피를 즐길 예정이기는 하지만 미리 올라가 자리를 잡으려 애쓰지는 않는다. 이곳은 자본주의의 산물 스타벅스는 아니기에, 금요일 나른한 오후 시간대 2층에 내가 만족한 만한 자리가 충분히 비어져 있을 것이라는 안정적 믿음이 있다.

호주머니에 넣어둔 진동벨이 울리기 전에, 그 찰나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카페 밖으로 나간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나의 체온을 소비해도 아깝지 않을 즐거움이란 카페 고양이 모짜&렐라의 먹방을 보기 위함이다. 그저 사료를 먹고 있을 뿐인데 오물오물 작은 은쟁반에 담긴 사료를 입안 가득 머금고 씹어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호주머니 속 진동벨이 나의 상념을 깨운다.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가 카운터에서 커피잔이 올려진 쟁반을 집어 든다. 앙증맞은 커피잔 옆에 올려진 설탕은 정중히 사양하고 2층으로 올라간다. 우직하게 울려 퍼지는 나무계단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좋다.

2층 골방 안쪽에 손님 한 테이블만 있는 듯하다. 자주 앉는 창가 앞 바 테이블 자리에 앉으려 했으나 책상에 가로로 굵게 파인 나무 홈이 얇은 공책을 펴고 글을 끄적이기에 좋은 컨디션은 아닐 거라는 예측을 해본다.

마침 글을 쓰기 적당한 높이의 책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 책상 위에도 여지없이 '3인 이상 단체석입니다.'라고 쓰인 팻말이 있었지만 손님도 없고 혹시라고 다른 단체 손님이 오게 되면 자리를 비켜줄 심산으로 뻔뻔스레 자리에 앉아버린다.

외투 호주머니 오른쪽에서는 필통을, 왼쪽에서는 공책을 꺼낸다. 두 개 모두 호주머니에 넣어도 부담스럽지 않을 만한 크기의 필기구들이다. 줄이 없는 백지의 공책을 펼치고 필통에서 집에서 미리 깎아와 날카로운 심을 뽐내고 있는 연필 한 자루를 꺼내든다. 지우개도 필요 없다. 사진기도, 카메라도 필요 없다. 이 카페를 그리기 위해 이 2 가지면 충분하다.

조심스레 카페를 느끼며 그 느낌을 글로 풀어나가 본다. 내가 좋아하는 연필심이 타들어가며 나는 서걱거리는 소리는 등 뒤에 있는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펑키 음악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중간중간 쌉쌀한 에스프레소가 식어 그 향기를 잃을까 두려워 홀짝홀짝 들이켜본다. 그 알싸하고 쓰디쓴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일시적 각성효과가 일어난다. 서정적인 취향을 가진 글쓴이가 즐길 수 있는 적절한 유흥이다. 그 흥에 겨워 계속해서 활자로 카페를 그려나간다.

이것은 현대 문명이 글 쓰는 이에게 주는 가장 고매한 수준의 사치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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