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종묘

by 이준

종묘. 정전.

텔레비전에 종묘하면 나오는 건축물이 바로 종묘의 정전이다.

종묘는 옛날 조선의 왕과 왕후의 신주(죽은 사람의 혼령이 깃들어 머문다고 인식되는 나무패) 총 49위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1월 1일 새해 첫날 왜 이곳이 그리도 가고 싶었을까. 내가 종묘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던 것일까.


종묘는 종로에 있다. 주변에 고층빌딩이 많지만 종묘 안으로 들어와 하늘을 바라보면 남산타워를 제외하고 고층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종묘 정전의 정문을 들어가면 큼지막한 돌들이 듬성듬성 정전 끝까지 땅속에 박혀있다. 아마 왕이 걸어 다니던 돌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굳이 그 길을 따라 걸어갈 필요는 없다. 돌길 끝이 아니라 정확히 돌길이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건물을 바라보아야 종묘 정전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지붕이 대단히 크다. 대단한 폭우가 쏟아져도 건물 내부에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선다. 그런데 지붕의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왜, 무슨 연유로, 심장이 울컥할 것 같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일까. 왜지. 왜 그런 걸까.

한국의 궁궐이라는 궁궐은 다 보아왔건만 대관절, 왜, 왜 종묘의 지붕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아름다움이 묻어있을까. 방정맞은 심장을 부여잡고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한다. 하나하나 뜯어본다.


맨 꼭대기 지붕부터 처마 끝까지 내 눈빛으로 부드럽게 훑어준다. 시선이 지나가는 길은 한없이 부드럽다. 막힘이 없고 굴곡이 없다. 극히 단조로운 곡선이다. 지붕에 얹어있는 기와들도 처마 끝자락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꾸밈이 없다...

순간 머리가 맑아지고 눈이 트인다.

그래, 종묘는 극히 단순하고 화려하지 않은 단순한 선만으로 지은 것이다. 저 건축물은 조금도 자신을 뽐내려 함이 없다. 건물은 자신이 창조되고 존재하는 모든 의미를 온전히 먼저 떠나간 님의 넋을 기리는 데에만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기둥도 그러하다. 둥글둥글 매끄럽고 왠지 귀여워 보이기까지 하나 고즈넉한 단아함이 마치 건축물 자체에 기품 있는 선조의 넋까지 느껴지게 할 정도이다. 저것은 분명 돌과 흙으로 쌓아 올린 건축물이건만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이미 사서삼경과 논어, 대학, 도덕경을 최소 열 번은 넘게 완독 한 고매한 인품을 갖춘 선비의 그것과도 같은 품격이 느껴졌다. 이것이 조선의 기품인 것인가. 이것이 바로 한반도 5천 년 역사와 선조들의 정신이 빚어낸 자연의 피조물인 것인가.


오늘따라 하늘은 숨이 멎을 만큼 짙은 파란색을 띠고 있다. 그리고 그 짙은 파랑을 배경으로 우두커니 자리 잡고 있는 종묘의 회색빛 지붕에서, 마치 멋스럽게 수염을 기른 노년의 신사가 이태리 원단의 짙은 회색 정장을 입고 익선동 어느 모던한 한옥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이켜고 있는 것과 같은 멋스러움이 느껴졌다.


종묘는 결코 뽐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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