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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nie Jun 28. 2021

The Great Gatsby,  파티의 일부가 되어

  실험적 연극,  Immersive Play

 다시 런던의 레스터 스퀘어로 돌아가서, 사실상 레미제라블 다음으로 제일 궁금했던 연극은 무엇보다  The Great G atsby였다. 원작도 재미있게 읽었었고 심지어 예매 직후 날아오는 개츠비의 자필(?) 파티 초대장이 한몫했다.

개츠비의 파티 초대장. 공연을 기다리는 설렘도 공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 있어 최고의 만족도를 선사하는 세심한 마케팅이었다.


공연 당일 늘어선 줄을 예상하며 the gatsby’s mansion으로 향했는데 도통 극장이 보이질 않았다. 비도 오는데 같은 곳을 세 번 정도 헤멘 다음에야 바 처럼 생긴 곳에 사람들이 조금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혹시나 해서 개츠비 공연 맞냐니까 맞단다. 뭔가 비밀스러워 보이는 곳에 들어서자 개츠비의 집사가 나와서 몇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고는 들여보내주었다.

막상 들어가 보니 무대도, 객석도 없었고 그냥 말 그대로 bar만 벽 한쪽을 가득 채우며 자리하고 있었다. 의자도 그저 몇 개, 그리고 테이블도 계단 위에 몇 개 정도만 있어서 도무지 연극을 어디서 할건지 알수가 없었다. 이때는 이게 immersive play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무대로 통하는 문이 따로 있는지 홀로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건 없는 듯 했다). 의아함을 안고 대기하며 또 놀랐던 건, 이건 관객인지 배우인지… 관객들의 의상이 너무 화려했던 점이다. 남자는 턱시도, 여자는 프랭글이 화려하게 달린 드레스에 몇몇은 머리에 깃털까지 꽂고 왔다. 초대장에 분명 “dress to impress my guests” 라고는 했지만 그게 진담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고, 살짝 의식해서 나름 신경써서 입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  Roaring Twenties  였었지. 시대상을 고려하지 못한 건 실수였다. 역시 옷이 사람을 만든다고, 속속들이 도착하는 관객들은 이미 관객이 아니라 개츠비의 파티에 초대받은 20세기 미국의 어느 부유층들이었다. 이렇게, 위대한 개츠비 연극에서는 초대장과 드레스코드와 같은 사전 디테일들이 관객이 진심으로 연극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장치들이었다. 관객, 아니 손님들은 바에서 샴페인 몇 잔을 마시며 왁자지껄 파티를 즐겼고, 20세기 미국에서 좀 벗어나버린 나는 홀로 멀뚱히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연극이 시작할 때쯤 되었는데 배우가 도통 나오지 않아서 공연장을 잘못 찾은 것인가다시금 의심하고 있었는데, 내 옆에 앉은 여자에게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단발의 여자가 친근하게 말을 걸면서 이름을 물었다. 내 옆에 앉은 여자가 그녀의 이름을 되물었다.


I’m Daisy.



그렇게 극이 시작되었다.

Immersive play는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는데 말 그대로 관객을 장면 안에 위치시킴으로써 몰입력을 최대치로 올려주는 장치였다. 모두는 조던의 박자에 따라 춤을 췄고, 몇몇은 직접 개츠비와 데이지의 티테이블을 세팅했고, 회상 씬 속 인물이 되기도 했다. 개츠비나 데이지 등 메인 캐릭터들은 스스럼없이 손님들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도중에 실수로 빈 샴페인 잔을 놓쳤었는데, 개츠비가 신사답게 말을 걸며 잔을 주워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메인 무대 외에 윌슨 부부의 방, 데이지의 방, 개츠비의 서재 등 독립된 숨겨진 공간들이 존재하는데, 메인 무대에서 큰 줄거리가 진행될 동안 각각의 인물들은 주변의 관객들을 데리고 자신의 공간으로 뛰어들어간다. 비밀스러운 서브 무대에 각각 함께할 수 있는 관객들은 30명으로 한정했었는데, 메인 무대와 서브 무대에서 동시에 스토리가 진행되어야 하기에 설정한 규칙인 것 같았다. 개츠비의 서재나 데이지의 드레싱룸을 보지 못한 관객의 입장에서는 매우 아쉬웠지만,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모든 관객에게 다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꽤 현명한 규칙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윌슨 부부의 공간에만 초대받았는데, 바깥에서 들리는 닉과 개츠비, 탐의 격양된 대화와 안에서 벌어지는 윌슨 부부의 갈등을 동시에 보고 들을 수 있어 장면을 외부적으로, 또 내부적으로 동시에 관찰할 수 있었다. 갈등이 가장 고조된 순간 Mrs.Wilson이 문을 박차고 나가 내부적 공간과 외부적 공간은 다시 하나의 무대가 되고 마는데, 그때의 소름은 잊을 수가 없다.


공연이 마무리된 뒤에도 바는 그대로 오픈해 있어 손님들은 계속 원하는 만큼 애프터 파티를 즐길 수 있다. 공연 전, 중, 후를 아우르는 “경험” 그 자체를 제공한,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 The Great Gatsby 였다.


+ 한국에 돌아와서, 국내에서도 이러한  Immersive Play  형식의 위대한 개츠비 공연을 도입한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코로나로 인해 얼마 지나지 못해 무산된 것이 매우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와, 그때의 왁자지껄하면서도 정돈된 개츠비 파티에 다시 초대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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