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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Dec 13. 2023

'10시간' 걸려 만든 나의 첫 '릴스'

꿈이냐생시냐

그날은 모처럼 아무 약속도 없는 금요일이었다. 늘 하던 대로 산책을 하거나 서점에 가서 책 구경을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핸드폰을 보다 문득 마음속 깊은 곳에서 '너도 릴스를 만들어 봐'라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점처럼 조그만 욕망이었던가?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나의 '야심'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며칠 전 만난 친구에게 입안 가득 스파게티를 구겨 넣으며 절대 SNS로 뭘 해볼 생각은 없다고 호기롭게 떵떵거린 뒤였다.


마음 A: 내가 릴스를 만든다고 누가 보겠어. 내가 그렇게까지 시대의 흐름에 쫓아가는 인간은 아니잖아? 나만의 길을 걸어가는 게 인생의 목표인데 남들 다하는 거 하는 건 그 길을 거스르는 행위지.


마음 B: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의 사심을 인정해! 그건 마치 짝사랑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마음 B씨의 승리.

그래 그 겨자씨만 한 나의 욕심. 그거 있는 거 맞았다. 10년을 넘게 SNS에 사진을 올렸는데 조회수도 그저 그렇고, 거기서 물건만 사들이는 거 말고 나도 좀 달라지고 싶었던 거다.

이 모든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 머리보다 빠른 손은 동영상 찍을 준비를 하고 있다. 좋아하는 걸 해야 오래 한다니까 주제를 책으로 정해보자. 그럼 내가 좋아하는 책 1위를 해보면 되겠군. 오랫동안 읽어온 책이라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지. 마침 이 책으로 수업을 하고 있으니 딱이다.


릴스 너 누구냐?


이렇게 시작한 나의 첫 릴스. 동영상 찍는 것부터 난관이다. 거치대 없이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그 두꺼운 책을 눌러가며 책장 넘기는 걸 찍어야 하는데 당연히 잘 될 턱이 있나?

안간힘을 쓰며 잘 쓰지도 않는 왼손으로 책을 넘기려다 보니 책이 홀랑 뒤집어지거나, 아니면 핸드폰을 들고 있던 오른손이 덜덜 떨려 NG.


우여곡절 끝에 동영상을 다 찍긴 찍었는데 이제 SNS에 올리는 게 난관이다. 따로 편집하는 앱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성격이 급해 얼른 팔로워들의 반응이 보고 싶었으므로 SNS에 있는 기능들을 쓰기로 했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버튼들을 눌러가며 동영상을 올리려다 보니 부하가 걸렸나? 중간에 계속  오류가 났다. 열심히 글자체도 고르고 효과를 집어넣었는데 저장도 안 된 채 날아갔다. 


릴스 속 동영상은 해가 반짝이는 아침인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어두컴컴하다. 학교에서 온 아이들에게 밥은 알아서 먹으라고 했는데도 남편이 퇴근하고 와서까지도 끝내지 못했다.


결국 핸드폰 다시 시작하기를 누르고 새 마음 새 기분으로 다시 편집한 첫 번째 릴스.

너무 소중해.


그런데 동영상을 본 아들이 한마디 한다.

"엄마, 인생책 3위부터 1위까지 시리즈로 올려야 되는 거 아니야? 1위부터 올리면 어떻게?"


 ……



 안간힘을 쓰고 있는 왼손, 단 한 줄뿐인 문장이지만 뿌듯한 첫 작품


전체 릴스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honeyofsaint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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