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뮤즈는 어디에 있나요?

플러튼 뮤지엄에서

by namtip

플러튼 뮤지엄


수많은 사람들의 MUSE가 적혀있는 벽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다운타운에 있는 작은 박물관이지만 다양한 전시들이 연중 계속 열린다고 한다.

마침 그날은 관객 참여로 꾸며지는 'WHERE"S YOUR MUSE'가 박물관 안쪽에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뮤즈


벽에 붙은 포스트잇을 찬찬히 둘러보니 다양한 뮤즈와 함께 그 이유가 적혀 있다.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책, 음악, 음식, 여행지 등등 그리고 가장 많이 보이는 건 '가족'.


가족이라. 어른이 되니 가족만큼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가 없다. 혹여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면 내 바운더리 안에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가족이 뮤즈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특별전시 한쪽에 붙여질 종이에 자신의 가족을 미움과 증오의 대상으로 쓴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다. 하지만 애증이라는 감정이 밑바탕에 깔린 그 어떤 모양이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이유를 만들어본다. 내가 그러하니까 말이다.


나의 뮤즈


고백하건대 나는 포스트잇을 붙이지 못했다. '아빠'가 나의 뮤즈인지 아닌지 좀 애매했다. 이왕 붙일 거면 나에게 한없이 좋은 영향만을 주는 '그 어떤 존재'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아빠는 공학도이면서도 뼛속깊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성과 감성의 세계를 오가며 진지하게 인생을 대했고 아이였던 나를 항상 어른스럽게 봐주었다. 나의 자녀를 어른스럽게 봐준다는 게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천재도 영재도 아닌 그저 평범한 아이에게는 때론 버거운 일이다.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너의 인생을 제대로 꾸려야 한다는 비슷한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을 들으며 차라리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더 쉽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나와 내 동생은 한 번도 공부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대신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던가, 인생을 헤쳐나가는 법 등의 꽤 어려운 주제만이 내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아이가 상상하는 어른의 세계는 그저 알 수 없는 깊은 바다 같아서 때로는 너무 시퍼렇게 느껴졌다.




첫사랑과 헤어지고 나서 지축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을 때 식음을 전폐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20대의 나를 보며 아빠는 책 두 권을 건네주었다. 바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독일인의 사랑'이다. 이 두 권의 책을 물끄러미 보다가 알게 된 건 어린 시절 나에게 바라던 감성의 깊이가 이 정도였을까 하는 거였다.


아빠는 정말 몰랐던 게 분명하다. 내가 어른이 되려면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20대가 되어서야 겨우 이런 책들을 읽으며 '사랑보다는 인간을 이해해 보라'는 당신의 말에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시간이 흘러 흘러 아이도 어른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사랑하는 수많은 음악들과 시와 소설은 모두 아빠의 세계에서 시작되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을 듣는 내 모습은 수없이 보았던 그 모습과 겹쳐진다. 하지만 쇼팽과 윤동주와 릴케와 이우환을 어렴풋이 이해하는 나이가 되어도 어느 누가 삶에 대해 쉽게 논할 수 있을까. 답이 없는 질문에 정답을 찾아 오랜 시절 헤매었다.


지금이야 아빠와 허물없이 지내지만 가끔씩 어느 한 지점에서 팽팽하게 날 선 감정을 마주할 때가 있다. 한없이 예민하고 고집스러운 우리는 이렇게 닮아서 서로의 세계에 기어이 발을 내디뎌야 직성이 풀린다.

마흔에 와서도 그 존재감에 대해 계속 고민하는 걸 보면 아직까지도 어린 시절의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지 이제는 편안해져서 그런 건지 아리송하다.




내가 포스트잇에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아이들이 종이를 주며 말했다. 지금 생각이 안 나면 집에 가서 써보라고 말이다. 그날 밤 받아 든 종이를 한참 바라보았지만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부려 빈종이로 그냥 책상 속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글을 쓰는 걸 보니 나의 뮤즈가 아빠라는 걸 너무 인정하는 셈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