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병이 시작됐다면 플러튼의 중고서점으로 가세요.

california

by namtip

슬리퍼를 찍찍 끌고 쭈쭈바를 사 먹으러 간다거나 쭈쭈바를 사러 갔다가 감자칩까지 사서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는 건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국은 파 한 단을 사려해도 차 시동을 걸어야 하는 나라였다. 걷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고, 생각보다 빨리 향수병이 찾아왔다.


이런 나를 본 동생은 비록 차를 타고 가야 하지만 ‘마음껏 걸을 수 있는 거리’로 나를 인도해 주었고 그곳에서 운명 같은 곳을 만났으니 그곳은 바로 ‘플러튼의 중고서점’


중고 서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다른 사람은 모르는 중고서점이 갖춰야 할 나만의 조건들이 있다.

우선 오래된 록 음악이 흘러나와야 한다. 그리고 사계절 눅눅한 공기와 책 냄새가 나야 하는데 더운 날에도 에어컨 대신 선풍기가 있으면 만점.

또, 누가 사갈까 싶은 해골 목걸이 같은 이상한 굿즈들이 유리관 안에 전시가 되어 있다면? 내 기준 최고의 중고 서점인 것이다.


이런 모든 조건을 갖춘 서점을 캘리포니아 플러튼이란 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활자 중독자에게 중고 서점이란 선물 같은 곳이다. 당연히 이곳은 갑자기 찾아온 향수병을 치유받기에 딱 좋은 장소였고, 거의 매일 들락날락거릴 수밖에 없었다.


큰 대형 선풍기가 윙윙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고르고, 이상한 굿즈들을 살까 말까 수없이 고민하는 사이에 나는 점점 기운을 차렸다. 이후에도 비록 낡은 운동복을 입고 흐느적거리며 내 발로 갈 수 있는 곳은 없었지만 ‘미국은 생각보다 좋은 곳이야’라며 남은 여행을 다시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곳이 바로 ‘플러튼의 중고 서점’이다.


“여행자가 우리 서점에 오는 건 드문 일이죠. 그것도 몇 번씩이나 계속 오는 일은 더더욱이요”.


마지막 날, 그동안 봐왔던 책을 계산하러 카운터에 갔을 때, 내가 여행 중인걸 알고는 직원이 놀란 듯이 말했다. 처음 겪은 지독한 향수병을 여기서 치료받았다는 걸 알면 한번 더 놀라겠지.


p.s 참, 다음 사람을 위해 남겨둔 내 서점 포인트는 어떤 사람이 받았을까? 누구든 행운이 가득하길.

Good luck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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