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짜리 어린 조카가 배고프다고 울먹이자 나머지 10살, 8살, 7살이 차례대로 징징대기 시작했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Griffith Observatory) 달구경도하고사람구경도 하다 보니 어느덧 어둑어둑하다. 해가 지니 허기도 졌다.
애들 4명이 배고프기 시작함->밥집 검색-> 울기전에 서둘러 출발해서 먹여야 함
지난 수년간 행해온 매뉴얼이 머릿속에서 돌아간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도 LA 시내의 아름다운 야경을 재빨리 스캔하는 나를 스스로 칭찬하며 근처 타코 집으로 출발했다.
다들 배고팠던 그날. 나는 라라랜드에서 멕시코식 내장탕 메누도(MENUDO)를 만났다.
토마토 수프인 줄 알았던 국물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수건고기를 발견했다. 한 입 떠 먹으니 빨간 국물이 이토록 얼큰할 일인가. 이건 뭐지? 너무 설레면 실망도 큰 법. 마음을 다잡자. 메뉴판을 다시 보니 MENUDO라는 글씨가 선명히 적혀 있다. 곱창 대란을 일으킨 가수 화사만큼 고기 부속물을 좋아하는 나. 그때부터 나의 멕시코식 내장탕 앓이가 시작됐다.
한놈만 팬다.
대학교 졸업 후 백수 시절. 학교 근처 홈플러스 푸드코트에서 굴국밥을 처음 먹어본 후 몇 달간 나의 점심은 굴국밥이었다. 가족들이 내 몸에서 굴 냄새가 난다고 놀릴 때도 그 사랑은 식지 않았다.뭐 하나에 꽂히면 왜 그리 푹 빠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뭐, 맛있으면 먹는 거지 이유가 있나.
그런데 있는지도 몰랐던 멕시코 음식이 잠잠했던 먹깨비 본능을 다시 깨우다니. 굴국밥을 먹는 순간 눈이 번쩍 했던 그 전율을 LA에서 다시 느끼게 될 줄이야!
동생은 또 시작이구나 하며 자포자기하는 눈치다. 하지만 어쩌랴 오랜만에 만난 언니라는 인간이 먹고 싶다는데. 결국 동생도 나와 함께 메누도(MENUDO)를 찾는 여정에 기꺼이(?) 동참했다.
소머리 국밥도 가게마다 특색이 있듯 메누도(MENUDO)도 식당마다 다를 것 같았다. 멕시코 음식에 빠삭하다는 제부의 친구들에게 수소문을 하고 아이들이 서머캠프를 가면 근처 식당 메뉴판을 살펴봤다.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한 대학생은 어머니가 멕시코 사람 이라면서 생판 모르는 한국인이 자기들의 해장국에 심취해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녀도 멕시코 수프를 파는 음식점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멕시코인을 타깃으로 하는 식당들도 타코를 주로 판매할 뿐 수프를 함께 파는 곳은 별로 없었다. 또 메뉴판에 쓰여있지만 더 이상 팔지 않는다는 곳도 많았다. 수프를 만드는 과정이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식 내장탕도 재료를 다듬어서 고기를 푹 삶아야 하는 과정이 복잡하듯 멕시코식도 비슷하다. 고기 부속물 특유의 비릿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깨끗이 씻어 몇 시간을 고아 내려면 시간과 정성이 든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 덜 팔리면 안 파는 게 당연지사.
미국 여행이 중반부에 이르렀을 때.
제부가 예전에 갔던 타코 집에 색다른 메뉴가 많았던 것 같다고 해서 발걸음을 한 곳. 토렌스(Torrance)에 위치한 Taco Sinaloa. 그리고 수프 메뉴에 적혀 있는 메누도(MENUDO)! 식사를 주문하면서 우리는 신이 났다. 직원에게 그간의 일을 설명하니 "진즉에 우리 집을 왔어야지!" 하며 함께 기뻐해 주었다. 이곳의 메누도(MENUDO)는 우리나라 감자탕처럼 진했다. 만족하냐는 동생의 질문에 내 대답은 당연히 "오케이!"
soup 메뉴 아래에서 두 번째에 메누도(MENUDO)가 보인다.
지난 주말. 동생 가족이 연락을 해왔다. 메누도(MENUDO)를 볼 때마다 내 생각이 난다고 한다. 그 난리를 치며 여행 내내 이 얘기만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동생네 카톡을 보고 나니 슬슬 멕시코식 내장탕이 당긴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멕시코 유학 시절이 그리울 때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재료를 구해 만들어 먹었다는 블로거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정육점을 가야 할 차례인가.
며칠 전 제부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동생 부부에게 '메누도 먹을 때 생각나는 분' 이 되었다.
*라라랜드
라라랜드는 LA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 열연을 했죠 제가 방문했던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Griffith Observatory) 촬영한 별의 왈츠 신이 유명하답니다. 꼭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