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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o Curly Choi May 31. 2023

[아이들과 유럽 자동차여행 40일] - 1화.

지난 겨울의 기록 - 여행 준비 1

오늘은 여행 마지막 날. 40여 일간 우리의 발이 되어준 시트로엥 C5 에어크로스 차량을 반납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아이들과 아내는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내려주고 혼자 차를 반납하고 가는 길이다. 셔틀버스로 나를 공항에 태워다 주던 리스 회사 직원 아저씨가 여행이 어땠냐고 묻는다. 그의 질문에 대답하려는데, 지난 40일간의 여행이 머릿속으로 쭉 스쳐 지나간다. 힘도 들었지만, 좋았고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여행 마지막 일정이었던 차량 반납이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고 나니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는 안도감에 마음은 이내 편안해졌다. 셔틀차량 차창 밖으로 공항 근처의 허허벌판이 빠르게 지나가고 오래지 않아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출발 시간은 3시간 남짓 남았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여행이 끝나가고 있다. 상투적 표현이라 싫지만 ‘시원 섭섭’ 한 마음 딱 그거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전업 주부다. 주부.. 하면 엄마를 주로 떠올리겠지만 나는 육아 4년 차 아빠다. 회사에 육아 휴직을 내고 아이들을 돌보던 시간까지 더하면 전업 육아 6년 차다. 그렇게 된 배경을 일일이 다 설명하자면 길다. 특별할 것도 없고 속사정 들여다보면 그냥 평범함 스토리다.

나름 대기업이라는 회사에 20년쯤 다니고 있던 중, 살기 위해 일하는 건지, 일하기 위해 사는 건지 헷갈리게 만드는 일련의 사건 사고들이 있었다. 그것을 계기로 직장에서의 성공은 무엇이고 그게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이고, 나를 번아웃 될 때까지 몰아붙이며 치열하게 사회 생활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삶은 과연 가치가 있는 건가 고민을 하게 되었다. 회사 생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킷 안주머니 혹은 가방에 사직서를 넣고 다닌다는데 - 실제로 그런 사람은 못 봤다. 그냥 퇴직을 하고 싶은 생각을 머릿속에 넣고 사는 거겠지 - 나도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넣고 다닌 지는 오래되었었다. 존경하는 고 스티브잡스 형님께서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서 거울 속의 나에게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고 하는 일을 하겠는가..'라고 묻고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만약 대답이 No라면 다른 삶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말이 그냥 멋있어 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철이 없었거나, 회사가 무지 다니기 싫었거나였겠지. 무심코 퇴직을 결심했고, 아내와 열띤 논쟁을 벌이던 중 결국 육아 휴직이라는 제도를 활용하기로 했고, 2년간 휴직하고 제주도에 아이들과 내려가 살게 되었다. 거봐.. 재미없는 뻔한 스토리라 짧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도 벌써 길어졌다.

그래도 마무리를 하자면, 그래서 2년간 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했는데, 역시 휴직하고 자유롭게 사는 삶의 맛을 알게 된 나는 복직 2년이 지날 무렵,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는 퇴직을 하였다. 그러고는 휴직 중 내려가 살았던 제주도에 다시 돌아와 두 아이와 유유자적, 안빈낙도, 어쩌면 무위도식..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나와의 논쟁 끝에 아내는 전업 주부보다는 커리어 우먼의 삶을 선택했고, 오늘도 소녀 가장으로서 우리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대강 우리 가족의 삶의 궤적은 설명이 된 것 같고, 그래서 제주도에서 중학생 딸과 초등생 아들을 키우며 알콩달콩(?), 때로는 치고받고 지지고 볶는 삶을 살던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울에 내 친구들이나 예전 직장 동료들은 여전히 바삐 경제 활동을 하며 아이들에게 물질적으로 아쉬움 없는 삶을 제공해주고 있을 텐데.. 나는 어떤가. 아내가 경제 활동을 하고, 나도 집에서 전업 주부 외 전업 투자자로 데이 트레이딩을 하고는 있지만, 직장 다닐 때 연봉만큼 벌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 사실 최근 1~2년이 주식장이 좋지 않았다 - 물질적 풍요로움의 제공 측면에서는 내 친구, 동료들보다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대비해서 나의 경쟁력은 뭔가 하고 생각하다 보니, 결론은 '넉넉한 시간'이었다. 나는 회사에 몸이 메여 자유롭지 않은 친구들에 비해 시간이 아주 넉넉하다. 넉넉하다 못해 넘친다. 그런 나의 경쟁력을 십분 활용하여 아이들과 장기 여행을 가야겠다 생각하고 겨울방학 여행 계획을 시작했다.


겨울방학인데, 따뜻한 호주? 아니면 사촌 형님이 회사 법인장으로 근무하고 계신 미국 뉴욕? 아님.. 물가 싸고 평화로운 동남아? 그러던 중 예전부터 마음속에 버킷리스트로 갖고 있던 유럽 자동차 여행이 번쩍하고 떠올랐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인데 괜찮을까?"


아내는 안전을 걱정했다. 음.. 그래도 뉴스를 보나 여러 매체에서 유럽 현지 상황을 봤을 대, 서유럽은 전쟁의 위험이 그렇게 크지는 않은 듯 보였다. 오히려 전쟁 중이라 그런지 알아본 비행기 표는 호주, 미국에 비해 많이 저렴한 편이었다.


"호주는 개인적으로 왠지 끌리지 않아. 뉴욕은 사촌형님이 바쁘실 텐데, 괜히 민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동남아도 좋지만, 방학 한 달 장기 여행을 가기엔 좀 그럴 것 같아. 아무래도 유럽으로 가는 게 좋겠어."


사실 다른 이유는 다 핑계 아닌 핑계였다. 답정너라고 하나. 내 마음속엔 이미 유럽 광활한 평원을 렌터카로 달리고 있는 나와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래서 2022년 9월. 일단 비행기 표부터 예약했다.

비행기를 사는 과정에서도 고민은 있었다. 국적기 직항으로 갈 것인지, 저렴한 외항사 경유 여정으로 갈 것인지가 고민이었다.  23년 1월 여행을 계획했으므로 약 4달 정도 앞서 비행기표를 구매하는 것이었으므로 가격이 좋았지만, 국적기 직항과 경유 여정의 가격 차이는 거의 2배에 가까웠다. 경유하는 여정도 항공사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Skyscanner'라고 하는 앱을 이용해 가격비교를 하고 최종적으로 가장 저렴한 싱가포르항공 -싱가포르 경유- 을 선택했다. 파리 in / 로마 out으로 왕복하는데 1인당 100만 원 수준. 가격이 저렴해서 횡재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싱가포르 경유하자면 많이 돌아가는 거라 긴 비행시간이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서 걱정되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빠듯한 여행 경비를 생각했을 때, 비행기 몇 시간 더 타서 절약하는 비용으로 여행 다니는 동안 풍족하게 식도락을 즐기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 믿을 수 있는 항공사이면서 가장 저렴한 항공편을 예매하기로 했다. 만약 여행을 짧게 가는 거라면 시간도 절약하고 컨디션 조절도 해야 하므로 다소 비싸더라도 직항 편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40일간의 긴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으므로 전제적인 비용 규모가 크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경유하는 비행기가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막상 최종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런저런 제약에 대한 생각이 많아서일 것이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앞뒤 따지지 말고 일단 비행기표부터 사면 그나마 행동으로 옮기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취소 수수료가 아주 비싼, 저렴한 경유 항공편을 구매하면 빼박(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여행을 등 떠밀려 가더라도 가야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여행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과연 아이 둘과 함께 40일의 유럽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여행을 포기해야 하나.. 망설이게 되던 순간에 비행기 취소 수수료를 생각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도 했었다.

여하튼 비행기 표를 구매하면 여행 준비의 절반 이상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렇게 여행 준비 시작을 하고, 그다음으로는 여행 루트를 짜야했다. 비행 편을 파리 in/로마 out으로 했기 때문에 출발과 종착지는 정해졌고, 그 가운데를 어떤 길로 다녀야 할지, 40일이나 되는 시간을 어떻게 잘 써야 할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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