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der-Man: Far From Home , 2019
※ 영화의 중요 내용을 일부 담고 있습니다.
'파 프롬 홈'은 스파이더맨 시리즈 본연의 성장 이야기에 충실한 영화다. 개인적으로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은 '성장'에 있다고 보기에 '파 프롬 홈'의 이야기가 꽤 흥미로웠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스파이더맨이 리부트 전 시리즈와 가장 다른 점은 벤 삼촌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작인 '홈커밍'은 천방지축 10대가 아이언맨을 멘토 삼아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나는 과정이 잘 담겼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상실을 딛고 일어나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충분히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 프롬 홈'은 벤 삼촌의 역할을 아이언맨에게 맡기며, 스파이더맨을 본격적인 성장의 궤도에 올려놓는다. 피터 파커는 이제 아버지와도 같았던 토니 스타크를 잃은 슬픔도 이겨내야 하고, 어벤져스를 이끌 아이언맨이 없는 세상을 지키는 역할까지 맡아야 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상실로부터 배우게 되는 것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전체에서도 '파 프롬 홈' 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페이즈 3'의 마지막이자 인피니티 사가의 에필로그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아이언맨의 희생으로 지킨 세계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단초를 보여주면서(물론 그리 심각할 건 없다), 동시에 스파이더맨에게 적합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작의 빌런 미스테리오의 탄생 과정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오만한 천재였던 토니 스타크의 행적이 남긴 부수적인 피해로부터 탄생한 미스테리오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영웅 행위의 반대 급부이자 안타고니스트의 총체다. 특별한 개인과 평범한 다수가 대척점에 선다는 점도 흥미롭고, 허구와도 같은 영웅들에 맞서는 악당이 허상을 무기로 대중을 속인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히어로 서사를 풍성하게 만든다.
결국 스파이더맨이 이들을 물리치는 일은 곧 토니를 잃은 상실감과 아이언맨의 후광을 벗어나는 과정이 된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히어로들에 대해 만들어낸 허상과도 같은 이야기, 부담스러운 기대와 잘못된 오해를 이겨내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이 메타적인 주제의식에 천착해 좀 더 무거운 영화가 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파 프롬 홈'은 그보다는 가벼움을 택했다. 그것도 아주 풋풋하고 경쾌한 가벼움으로 말이다. 스파이더맨은 원래 쉴 새 없이 떠드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런 입담은 늘 그의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비극과 대비되며 일종의 페이소스를 유발한다. 하지만, 마블의 스파이더맨은 지나치게 가벼워 그런 균형 감각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하의 스파이더맨은 여전히 답답해 보인다. 운신의 폭이 좁고 상상력은 제한되어 있다. 스파이더맨만의 독립된 이야기는 이제 정말 불가능해 보인다. 영화 속 스파이더맨이 그러했듯 마블의 스파이더맨도 아이언맨과 어벤져스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페이즈 4'에서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