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눈높이의 세상

우주, 2살

by Junseo


우주에게는 우주 눈높이의 세상이 있다. 내가 모르는 방바닥의 세상, 소파 밑의 세상, 탁자 밑 세상, 카펫 위의 세상이 있다. 우주가 평소에 뭘 보면서 사나 궁금해서 가끔 옆에 엎드려 있어 보기도 하는데, 조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여전히 그건 우주만 볼 수 있는 우주만의 세상이다. 여느 강아지와 마찬가지로 우주 역시 어릴 때 눈에 보이는 것, 발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집어삼키거나 물어뜯어놓기 일쑤였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바닥에 아무것도 두지 않고 있다. 덕분에 우주는 말썽 안 피우는 착한 강아지 대접을 받고 있지만, 대신 우주 눈높이의 세상은 꽤나 심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준 간식을 바로 먹지 않고 구석구석 틈새를 찾아 숨겨두는 것은 무료함을 이겨내보려는 우주만의 노하우이자, 궁여지책인지도 모른다.


산책을 나가면 그나마 좀 나을 것이다. 이때부터 우주의 세상은 모험으로 가득한 세계가 된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주는 갈라파고스 섬에 막 상륙한 다윈이라도 된 것처럼 내가 모르는 지면 위 세상을 열심히 탐험한다. 킁킁거리며 온 세상을 훑고 다니는 우주를 보고 있으면, 'nose walking'이라는 단어 자체가 마치 탐험가나 탐정에게 어울리는 표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주에게 붙여준 별명도 하나 있다. 자기 눈높이에 풀, 꽃, 나무만 보면 코를 떼지 못한다고 해서 '식물 박사'. 단순히 전에 지나간 강아지의 흔적을 확인하는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꽃과 풀을 보면 아예 딱 버티고 서서 한참을 연구해야 직성이 풀린다. 어쩌면 우주가 나보다 더 많은 식물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 나름대로 구별할 수 있는 이름을 붙여두고 있을지도.


산책 나간 우주의 세계가 모험으로 가득한 어드벤처가 되는 건 사실 적절한 망각 덕분일 것이다. 화단의 덤불에 정신이 팔려 다른 세상은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자길 부르는 소리에 휙 돌아서고 나면 그다음 기둥, 나무, 울타리가 눈에 들어온다. 우주는 작은 강아지치고 정말 많은 말을 알아듣고 기억하지만, 눈앞의 모든 것을 다 기억에 담아두진 못한다. 그러니 우주의 눈높이에서는 세상 모든 것이 돌아서면 새롭고, 매일매일이 모험과도 같을 것이다. 매일 다니는 길임에도 우주의 세상은 아마 그럴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아파트 복도를 달려 현관문 앞으로 향하는 우주는 엄청난 탐험을 마치고 다시 고향 땅을 밟은 개척자, 혹은 망망대해를 지나 다시를 못 볼 것이라 생각했던 육지를 발견한 모험가의 기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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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보는 세상은 그게 무엇이든 내가 보는 것과 다르다. 그래서 가능하면 우주의 일은 우주의 눈높이에 맞춰 생각하려고 애쓴다. 그게 무슨 일이든 너에게도 너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뭘 하든 너에게도 너의 의사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너에게도 너 하나로 충분한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우주는 내게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한 걸음의 거리도 만들어준다. 기특하게도) 우주라고 말할 때마다 날 바라보는 그 눈동자, 가만가만 흔드는 꼬리,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 같은 몸짓에 온 우주가 담겨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나에게도 분명 나만의 눈높이가 있을 것이다. 나는 알아차렸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아마 끝내 알아내지 못할지도 모를 눈높이라는 게 있을 것이다. 우주의 눈높이란 다른 무엇도 아닌 '솔직함'인지도 모르겠다. 즐거울 때는 뭐든 즐기고 슬플 때는 그저 지나갈 때까지 참는 솔직함,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면 금세 잊는 솔직함, 네가 가진 것, 네게 주어진 것에 충실한 솔직함 말이다. 언젠가는 나의 눈높이도 우주 것만큼 또렷해질 수 있을까.



2015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