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화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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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한 장보다 작은 화면을 통해
본 적도 없는 세계를 내려다본다
머릿속 세상은 그렇게 넓어지는데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작아짐을 느낀다
나보다 내가 아닌 것이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이
닿은 곳보다 닿지 못하는 곳이
나는 그대로인데
채워야 할 공간만
넓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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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든 걸 가질 수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모든 걸 아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무'와 '무한' 사이의 존재다
'아무것도 아닌 것'과 '모든 것' 사이의
그 끝없는 간극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 두 점 사이 어딘가에 있을
우리 사이의 간극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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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드는 세계 또한 불완전하고 모호한
우리의 존재론적 특징을 닮는다
지나치는 수많은 배경 중 하나가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사업이 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산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과 '모든 것'
그 사이 어딘가에 점을 찍는 일이다
그러니 타인이 특별하다고 말하는
가보지도 않은 장소에 온갖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다
살아보지도 않은 세계를 동경하며
나의 삶을 지지해 주는 이곳을 평가절하할 필요도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도 '모든 것'도 아닌 이상
저마다 다른 좌표를,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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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좋은 것은 없다
대상에 투영된 욕망이 있을 뿐
장소는 그 배경으로써 우리의 바램을 담아낸다
욕망의 성취보다는 그것이 투영된 결과로써
세상은 어떻게 바뀌어왔고 무엇이 남았는지
꼭 기억해야 할 가치를 잊진 않았는지
나는 타인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무력하게 쫓기보다
내 삶과 작업들을 통해 그런 것들을 알아가고
때론 조율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게 내 욕망일지도 모른다
무와 무한사이 어딘가에 있을
나에게 할당된 이 시간과 장소에서
하루하루를 귀하게 여기고 충실하게 살다 보면
이 넓은 세상, 수많은 관계 속에서
몸과 마음을 뿌리내릴 자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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