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띠링~"
신혼 초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하나 왔다.
저... 몇 번 뵈었던 OOO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용기 내어 연락드립니다. 친구로 지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직장에서 업무 때문에 외부업체와 2~3번 정도 미팅을 하며 알게 된 남자분의 문자였다.
"남편~!!! 나 이런 문자 왔는데 어떡해?"
나는 옆에 있던 남편에게 바로 얘기를 했다. '나 결혼했어도 살아있네~!'라는 우쭐함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에 받아친 남편의 워딩이 무척이나 기가 찼다.
"자작 아니야?"
말을 해도... 참... 빈말이라고는 절대 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남편의 이 반응은 10년이 넘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난다. 연애시절에도 질투가 나도 애써 표현하지 않고 쿨한척하는 그였건만 그래도 이 문자를 본 남편의 표정은 약간 당황한 듯해 보였다. 당황해서 나온 실언이었으리라.
남편은 절대 답장 보내지 말고 그냥 있으라고 했지만, 그래도 얼굴을 아는 사람이고 직장에서 몇 번 또 업무 상 마주칠 수도 있는데 답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로 친구가 필요한 거일 수도 있는데 내가 김칫국 마신 거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지 않도록 고민 끝에 이렇게 보냈다.
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유부녀도 친구로 괜찮으실까요~~
아... 품절녀이신 줄 몰랐습니다. 역시 이미 짝이 있으시군요... 사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만...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는 미팅이 끝나고 나에게 늘 무언가 말을 하려고 머뭇거리다가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돌아가곤 했었다. 나를 향한 그 미소가 그런 의미인 줄은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문자로 고백을 받다니!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는 사건이긴 하다. 나에게 반했다는 고백에 기분 좋지 않을 여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혼 초 외간 남자의 문자가 불러온 파장은?
남편은 뜨거운 무더위처럼 불이 났겠지만 나는 한낮에 에어컨과 같은 신선한 바람을 맞은 느낌이랄까?
그땐 그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