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숫자에서 바로 드러났다
1화를 쓰던 시점까지만 해도, 내가 생각한 식품 브랜드의 구조는 꽤 정돈돼 있었다. 한국에서 제품을 제조하고, 한국 내 풀필먼트 센터로 입고한 뒤, Shopify와 연동해서 해외 주문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에어 출고되는 방식이다. 주문 → 포장 → 출고 → 해외 배송까지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구조. 광고 에이전시 일을 하며 수없이 봐온 전형적인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모델이었다.
머릿속 계산도 나름 합리적이었다. 제품 원가를 제외하고도 물류비, 플랫폼 수수료, 광고비를 감안하면 마진이 아주 넉넉하진 않아도 돌아갈 수는 있겠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실제 숫자를 하나씩 끼워 넣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한국 내 풀필먼트 센터 몇 곳과 견적을 주고받으면서 가장 먼저 부딪힌 건 해외 직배송 비용이었다. 150g~200g 정도의 식품 기준으로, 북미 에어 배송 단가는 건당 약 18~25달러 수준이었다. 여기에 포장비, 픽앤팩 비용, 시스템 이용료가 추가됐다.
이 비용 구조로는 초기 브랜드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대를 만들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결국 한국에서 직접 해외로 보내는 방식은 포기했다. 대신, 항만 운송으로 캐나다로 수입한 뒤, 현지에서 풀필먼트를 진행하는 구조로 방향을 바꿨다. 이 방식으로 다시 계산을 해봤다.
제품 원가: 약 $1-1.80
패키징 & 포장: $0.8-1
항만 운송료: $2 내외
Shopify + 결제 수수료: 건당 2.9%
광고비(CAC): 최소 15~25달러 예상
숫자를 이렇게 쌓아 올려보니, 구조가 명확해졌다. 이 상태에서 제품을 $8에 판매하면 적자였고, $10에 판매해도 남는 마진은 거의 없었다. 결국 단품 판매만으로는 성립하지 않는 구조였고, 번들 구성이나 객단가 상승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지점에서 확실해진 건 하나였다. 이 브랜드는 ‘열심히 팔아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가격과 구조를 함께 설계해야 하는 사업이라는 사실이었다.
다음 문제는 더 현실적이었다. 나는 한국 국적자가 아니고, 한국 내 은행 계좌도 없다. 이건 평소엔 거의 문제 되지 않던 부분이었지만, 사업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제조사 결제, 풀필먼트 정산, 세금 처리까지 모든 과정에서 거래처에 추가 설명과 우회 구조가 필요했다.
단순히 불편한 수준이 아니라, 의사결정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한국에 있는 파트너나 대리인을 두는 방법도 검토했지만, 그 자체로 고정 비용과 리스크가 생겼다. 월 수백 달러 수준의 관리 비용은, 아직 매출이 없는 브랜드에게는 꽤 부담스러운 숫자였다.
이때부터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글로벌 브랜드의 그림보다 중요한 건, 지금 내 조건에서 통제 가능한 구조인것
식품은 광고보다 먼저 법을 통과해야 하는 상품이다. 성분표, 알러지 표기, 원산지, 영양성분, 수출입 코드, 국가별 규제까지 하나라도 빠지면 출고가 막힌다. 대행사를 쓰면 해결된다는 말도 들었지만, 견적을 받아보니 건당 수백~수천 달러가 추가로 들어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비용보다도 리드 타임이었다. 라벨 하나 수정하는 데 2~3주, 승인까지 한 달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흔했다. 빠르게 테스트하고 수정해야 하는 초기 브랜드에게는 꽤 치명적인 속도였다. 그때 판단했다.
“이 구조에서는 실험을 많이 할수록 손해다.”
그래서 그냥 혼자 다 알아보고 다 해버렸다.
이 시점에서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이 구조를 끝까지 밀어붙일지, 아니면 아예 방향을 바꿀지.
결론은 후자였다. KRISPI를 ‘완성된 브랜드’로 시작하는 대신, 실험 가능한 브랜드로 다시 정의했다. 처음부터 글로벌 풀필먼트를 목표로 하지 않고, 내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물류와 재고 구조를 선택하기로 했다.
초기 SKU는 최소화한다
제품 단가는 낮추되, 번들로 객단가를 만든다
물류는 북미 기준으로 단순화한다
CAC가 아닌 LTV 중심으로 설계한다
이 결정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클라이언트 브랜드를 다룰 때는 항상 “이건 리스크가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브랜드에서는 그 말이 통하지 않았다. 리스크를 줄이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떠안아야 했다. 이 경험은 생각보다 컸다. 숫자 하나하나가 감정이 되었고, 선택 하나하나가 책임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나는 확실히 느꼈다. 기획안을 쓰는 사람과,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KRISPI는 아직 작은 브랜드다. 매출도, 제품 수도 많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브랜드는 아이디어로 시작되지만, 숫자로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숫자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아무리 멋진 스토리도 오래 가지 못한다. 나는 지금도 이 브랜드를 만들면서 계속 계산하고, 계속 의심하고, 계속 구조를 고치고 있다. 이 과정이 끝나면 어떤 형태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더 이상 ‘그럴듯한 그림’에 기대서 판단하지는 않는다.
다음 화에서는, KRISPI를 설계하면서 처음부터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들, 그리고 왜 대부분의 브랜드가 초반에 욕심을 내다가 무너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