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구단주 - 꼬라박는 팀이 되더라도 말이야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by 준성

올해 1월에 팀에 대한 글을 쓰고, 그 이후로는 쓰질 못했다.

변명하자면 글을 쓸 힘이 없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기대 - 번아웃 - 생명연장 - 다짐]


회기 유나이티드의 2024년은 위와 같은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단계들은 팀을 운영하는 나 개인의 삶과도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각 단계를 설명하지 않고는 눈을 감고 느껴지는 일부분의 촉감만 가지고 코끼리를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의 변화는 비단 나 뿐만 아니라 운영진, 선수들 또한 비슷하게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과장을 하고싶지 않기 때문에, 심심한 스토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축구팀 운영에 진심이었던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축구팀의 현실이 어떻고, 부족함이 무엇이고, 그럼에도 목표하는 바를 가감없이 설명하고 싶기에 응원 혹은 조언이 있다면 아끼지 않아주었으면 좋겠다.



1. 기대 (1-5월)


기대가 있었다.

승격, 우승에 대한 포부가 있었다.

장호형과 나는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우리 뿐만아니라, 선수들도 그랬다. 동대문구 축구대회부터 K7 리그, 서울시민리그까지 큼지막한 대회들을 치뤄나갔다. 우리는 조금씩 이겨나갔다. 승리에 고무되고, 가능성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분위기 덕분인지 매주 나오는 대회팀 선수들은 11명을 넘었다. 정기구장을 확보하지 못한 아마추어 축구팀으로써는 대단한 참석률이었다. 동시에 즐겜팀도 운영했다. 그러니까 매주 2팀의 경기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어느덧 팀은 선수단 정리를 거치고 나서도 40명 가까이 늘어나있었다. 특히 대회를 한 번 겪은 대회팀의 끈끈함은 그 어느때보다 단단했다. 우리는 우승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다른 기대가 있었다.

콘텐츠의 폭발적 성장에 대한 포부가 있었다.

아주 실패는 아니었다. 의지가 있는 피디들을 영입했고, 카드뉴스, 인스타툰, 릴스, 쇼츠, 롱폼 콘텐츠까지 7개월 간 약 250개의 콘텐츠를 업로드 했다. 소규모의 운영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거의 최대 개수의 콘텐츠를 만들었다. 숏폼의 대부분 몇천의 조회수를 넘었고, 다수가 만 단위였으며 그 중 몇 개는 10만을 넘어가며 중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롱폼은 비교적 조회수가 낮았지만, 영상 몇개가 몇 천~만 단위로 조회수가 나오면서 구독자가 빠르게 올랐다. 상승세가 지속된다면 꿈에 그리던 팔로워 1000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 같이 한동안은 우리가 바라는대로 운영이 가능했다. 운영진은 상반기에 팀의 내실다지기라는 목표를 세웠고, 플리마켓, 피지컬 트레이닝 등 선수들과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벤트들을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상반기의 목표는 거의 이룰 수 있었다. 선수들이 우리의 노력에 감사하고, 팀의 분위기에 반영되는 것이 뿌듯했다.



2. 번아웃(5-7월)


우선 우리는 중요한 경기에서 몇 번의 패배를 맛봤다. 치명적인 패배였다. K7, 서울시민리그, 동대문구 축구협회 대회 등 우리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나는 이 경기들에 대한 글을 쓸 수 없었다. '이렇게 노력했는데'부터 '정말 노력했나'하는 생각들이 나를 잡아먹었다. 반복되는 패배는 어쩔 수 없이 전체적인 팀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이 때문일까. 초반에 잘 나오더니 시간이 갈 수록 개인사정을 이유로 나오지 않는 선수들이 늘어갔고, 아마추어 팀인 우리는 그것을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 회비를 올리고, 회칙을 수정하고, 강제성을 부여하려고 갖은 방법을 써도 선수들에게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없는 팀은(아마추어에서 그런 팀이 되기란 정말 어렵다..) 선수들에게 머무를 가치가 없었나보다.

감사하게도 먼저 협업 제안이 들어와 시작하게 된 피지컬 트레이닝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한 자리수대로 줄어들었고, 다양하게 준비했던 기획은 기획단계에서 끝났다. 무언가를 시도하기 위해선 선행되어야하는 것들이 필요했는데, 그걸 하려면 시도하려고 했던 것들이 이미 준비되어있어야 했다. 그리고 내게는 그 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이 없었다.

나랑 장호형이 팀을 처음 시작하던 2022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쩌면 승격을 노릴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는 2022년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마추어 팀들의 수준이 높아져 있었다. 이제 대회에 참여하는 팀들에는 선출 여럿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의 플레이는 템포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세상에는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시즌 중간에 좋은 인연으로 매달 초청해주고 있는 청룡(하이스트) 팀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0:17로 패배했다. 그리고 우리가 지역만 다르지 같은 K7 리그를 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 수준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거... 맞나? 비단 나만 느낀 게 아니었을 테다.


개인적인 패배도 있었다. 운영 초반 나는 인스타 카드뉴스와, 릴스와, 쇼츠와, 롱폼과, 인스타툰을 맡았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서류를 작성해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나아갔다. 매주 두 번 경기에 참여했고, 매달 한 번씩 있는 동대문구 축구협회 이사회에 나갔다. 지원사업에 선정되면 면접을 보러다녔고, 서류에 떨어지면 다른 지원사업을 찾아 서류를 작성했다. 콘텐츠 기획회의에 참여하고, 이 과정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렸다. 사업을 벌여보고 싶어서 운영진을 달달볶아 아이디어 회의를 했지만, 모두 흐지부지 됐다. 여기에 더해 매주 라인업을 짜고, 경기 시 필요한 짐들을 챙겼다.

어떻게 혼자 다 했냐고? 못했다. 심지어 혼자하지도 않았다. 점차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일을 넘겼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들의 퀄리티는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는 수준은 돈을 줘가면서 해도 모자를만큼 높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욕심이 그릇을 뛰어넘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내 욕심을 끝까지 밀어붙일 힘도 없었던 나는 타협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 정도면, 뭐.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목줄이 달렸다고 생각하며 아둥바둥대다가 타협하는 내 자신이 꼴뵈기 싫었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을 탓하는 마음도 생겼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제일 일을 많이 하고 남들은 그만큼의 열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왜 열심히 안 하지? 더 능동적으로 할 수는 없나? 지금 이렇게 해도 모자른데? 왜 귀찮아하지? 왜 답이 없어하지? 더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도 모자를 판에 왜? 왜?? 왜???


이러한 생각이 정당한지 아닌지의 문제와는 별개로, 이렇게까지 조급했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운영진을 맡는 사람들은 졸업 or 휴학을 앞두고 있었고, 반드시, 필연적으로 우리의 상황이 바뀌게 되면 지금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탄력을 잃을 것이 뻔했다. 내 생각에 우리는 더디기만 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정상궤도에 회기 유나이티드를 올려놓아야했다. 그렇게 모두가 상황이 바뀌더라도 그럭저럭 팀을 유지시킬 수 있는 '틀'을 만들어놓고 싶었다. 사람이 바뀌더라도 문화가 남아 큰 변화없이 팀이 유지되는 그런 '틀' 말이다.

그런데 모두 실패했고, 조급했던 나는 빨리 크게 지쳤다. 하나 둘, 해야할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상황이 늘었고, 나는 이에 대해 더 이상 속상함도 느끼지 않았다. 내가 챙기지 않자 콘텐츠 업로드는 올스탑 됐다.

표면적으로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지만, 실상은 다큐멘터리라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퀄리티로 만들지 못하면 정말 남는게 없을 것 같았다.

번아웃은 요약하자면 보란듯이 보여주고 싶은 오기와 이를 비웃는 실패, 너무 큰 기대에서 온 실망이 눈덩이 처럼 불어나 나를 짓누른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 모습에서 온 회의감이 있었다. 이 번아웃은 내 근본적인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까지 만들었다.



3. 생명연장(7-9월)


번아웃의 기로에서 남들은 모르는 일생일대의 결정이 있었다. 단순히 팀의 존속 여부를 고민하는게 아니라,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꿔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었다.

나의 이상향은 남들의 그것과는 늘 조금 달랐고, 그것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그러나 번아웃은 그러한 성향이 그저 홍대병에 불과한 단순한 아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생각은 무서운 속도로 내 머릿속을 잠식해버려서, 내가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두려움에 지나지 않았던 걸까하는 생각까지 뻗어나갔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인가. 내게도 타협의 시간인 온 것인가. '평범'의 언어에 편입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는지 알기 때문에 외려 그러한 경쟁이 무서워 숨기 위해 이상향이라는 대안을 만들어낸 것인가. 나는 그런 생각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당시 알바 사장님께선 나의 눈치를 살피며 무슨 일이 있냐고 매번 물으셨다.

자, 여기서 나는 결정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어떤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수십년 뒤 이때의 결정이 틀렸다는 것이 밝혀지더라도, 나는 어디로든 한 발을 내딛고 싶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여전히 자유를 꿈꾸는가? 아니면 사회속으로 편입되고 싶은가? 이것은 타협인가? 싫다면 그건 오기인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설거지 알바, 콘텐츠 촬영과 편집, 무반응의 연속, 반복되는 일상. 내세울 것 없는 나의 현 상태를 직시하자. 사회에서 내 역할을 할당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인지해야한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쓸쓸히 죽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죽고, 사람들은 부조리에 둘러싸여 있다. 인간이 원하는 것을 세상은 내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만 한다. 그것이 카뮈가 말한 자유와 반항, 그리고 열정이다.

나는 욕망하되 욕심을 내려놓아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아무리 하찮거나 허황되거나 실현 불가능해, 부모님과 연인을 비롯한 모두가 날 떠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했다. 그것이 내게는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였고, 그런 의미에서 자유는 내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때의 모호했던 결론을 이렇게 글로 정리하니, 조금씩 머릿속도 정리가 되는 듯 하다. 내가 오기를 품었던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을 빠르게 이룸으로써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남들의 인정을 빼고 나니, '내가 원하는 것'이 남았다. 내가 고민하던 갈래들 중 틀린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원하는 선택을 내린 것 뿐이다. 이 같은 생각 또한 맞을지 틀릴지는 몰랐다. 이 선택에 대한 결과는 내가 죽고나서야 남들에 의해 내려지거나, 혹은 그조차도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릴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에까지 다다르자, 마음이 편해졌다.

먼저번 글에서 우리가 꿈꾸는 것은 어쩌면 평생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었다. 그게 꼭 맞는 말이었다. 축구는 한번도 내게 원하는 것을 준 적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대신 마음을 조금 비우기로 했다. 너무 큰 힘이 들어간 것은 터져버리는 것이었다. 적당한 힘으로, 내가 지치지 않을만큼 천천히 밀어올려 나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번아웃을 조금 극복한 탓일까, 9월달에 있던 동대문구 축구협회 대회에서 우리는 준우승을 했다. 나는 그것도 감사했다. 팀으로써 들어올린 첫 트로피였다. 아주, 아주 아깝고 속상하고 슬펐지만, 회기 유나이티드에 들어온 선수들이 회기 유나이티드를 위해 뛴 대회에서 들어올린 첫 트로피였다. 준우승의 경험은 우승의 경험을 상상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다큐멘터리가 영화제 본심에 올라가 상영회를 가졌다. 내가 100% 원하던 만큼의 퀄리티는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축구다큐멘터리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기쁘다. 시적 나레이션으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비유를 다 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그 외에도 연출적 요소들을 넣었는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는 리뷰를 한 번 하려고 한다. 팀의 많은 사람들이 영화제에 왔다. 그들에게 다큐멘터리가 얼마나 와닿았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내가 그들에게 보내는 감사편지이기도 하다.


https://youtu.be/C1uXEaJoDbc?si=BjE3bGCvOYYfv7gX


이후로 팀은 다시 소강상태였다. 모든 대회들이 끝난 탓에, 많은 선수들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이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것이었다. 대회가 끝났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내게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포기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여건이 되면 운영을 하는 것이고, 안 되면 못하는 것이었다. 이게 무책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내게는 의지의 자세였다. 팀은 운영자의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운영되어진다.



4. 다짐(9-12월)


2025년을 앞두고, 운영진은 6명에서 다시 2명으로 줄었다.

장호 형과, 나이다.

전에 예상했던 것처럼 상황이 달라지면서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다.

운영진들은 그들의 소임을 다 하고 나갔다.

너무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잡을 수도 없었다.

당연히 두렵고 고민이 많이 된다. 우리 두 명으로 충분할까?

팀은 또 다시 개편을 앞두고 있다. 몇몇의 선수들이 팀을 떠났기 때문에 공개 테스트를 열어, 더 많은 선수자원을 확보하고자 한다. 팀 운영적인 측면에서도 이전의 즐겜팀과 대회팀이 아니라 A팀과 B팀으로 나누어, 좀 더 양 팀이 경기적으로 교류할 수 있고 팀간 선수이동을 활발하게 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마찰도 있을 것이고, 또 다시 적응이 필요할 것이며 누군가는 팀을 떠나기도 할 것이다.

솔직히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으면서 나는 또 다시 기대가 된다.

내년은 얼마나 힘들지, 어떤 기회가 생기고 어떤 장애가 있을지 온몸으로 운명을 맞아보고 싶어서 설렌다. 나의 개인적인 삶은 계속해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겠지만, 언제나 축구라는 카테고리의 한 켠에는 회기 유나이티드가 자리잡고 있다. 나는 이 파트에서 일어날 일들이 전혀 예상가지 않는다. 그만큼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좋아하는 웹툰 <캐슬>에 그런 말이 있다.


'감당할 수 없는 큰 파도에 자신을 던진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아마추어 조기 축구팀 하나 운영하는데 온갖 호들갑을 다 떤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회기 유나이티드의 목표와 목적은 그 정도 수준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미 회기 유나이티드는, 다른 일반적인 동아리나 조기 축구회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뛰어 넘었다.

회기 유나이티드는 언젠가 대한민국의 축구 문화를 뒤집는 팀이 될 것이다. 선수시절 내가 겪었던, 동료들이 겪었던 스포츠 권력과 스포츠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아마추어 축구의 발전은 필수적이다. 회기 유나이티드의 성장은 곧 대한민국 축구의 발전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물론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할 지는, 아직 모른다. 성공의 가능성을 품고 설레는 짝사랑처럼, 이 팀이 갖게 될 중요한 의의가 이미 우리 의지 안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이 오기면 어떻고 즐거움이면 어떠랴.

무엇이든 두려움은 덜 느껴가면서, 행복을 찾아 가늘고 길게 불태우자.

결국에는 꼬라박는 팀이 되더라도, 운영하는 동안만큼은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

특히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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