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보아라

이제 내 고양이 아니지 참

by 준성

고양이들은 보아라.

쓸데없는 감상을 피하느라 이제야 글을 쓴다.

기껏해야 한 달 같이 있어 놓고 보낼 때 꺼이꺼이 울었던 내가 꼴사나워서 글을 쓰지 못했다.


작년 11월 너네를 데려왔는데, 벌써 내가 데리고 있던 날보다 새로운 주인이랑 보낸 시간이 더 길게 됐다.

이제는 시간에서도 나의 지위를 요구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너희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것이다.

그렇지만 함께 지낸 한 달만큼의 조언을 너희에게 할 요량으로 편지를 쓴다.


너희는 아주 골치가 아팠다.

없는 살림에 돈은 왜 이렇게 많이 드는지. 먹여야 하는 약은 왜 이렇게 많고, 먹이는 방법은 또 왜 이렇게 가여워야 하는지. 약 먹고 똥을 싸는 건지 기생충을 싸는 건지 기겁했다. 그래도 그것 덕분에 병원에서 드는 돈이 안 아까웠으니, 혹시라도 돈을 갚아야 하는지 걱정된다면 그럴 필요 없다.

그렇지만 고쳐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 새벽에 급소를 마구 밟아대는 것. 한두 번 깬 게 아니다. 내가 아이를 갖지 못한다면 첫 번째 용의자는 너희들이다. 새로운 집에서는 그러지 않도록 해라.


너네가 가고 나서 나는 이사를 하고, 들여야 할 가구를 모두 들였다. 꾸미고 싶은 대로 집을 꾸미고, 그러고도 돈이 남았다. 귀찮게 밥 달라고 보채는 놈들도 없고, 놀아줘야 할 필요도 없고 잠도 아주 잘 잔다. 똥을 하도 싸대서 퍽 무거워진 똥주머니를 버릴 필요도 없다. 여유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새로 들어온 이곳은 너희가 좋아하는 것 천지다. 가죽 소파부터 선반에 놓인 피규어, 카메라 등 올라다니고 무너뜨리고 할퀴고 떨어뜨릴 것들이 아주 많다. 데려온 첫날에는 침대도 못 올라오던 너희가 갈 때 즈음엔 책상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던 게 생각난다. 이 집에 너희가 있었다면,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라 너희들의 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라도 너희는 아주 잘 간 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대체 무슨 생명력으로 그곳에서 아픈 곳도 없이 주는 거 다 받아먹고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

너희들과 내가 운명이어서 그 캠핑장에서 만났다고는 생각 안 한다. 그렇게까지 진심인 척했던 사람이 그 당시 그곳에서는 나 하나였고, 너희는 따뜻함이 고팠겠지. 모든 사람의 손을 이미 타버려서, 모든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오던 너희의 본능을 나를 선택한 것으로 착각하고자 했던 것이 내 잘못이었다. 곧 겨울일 텐데, 내가 자취를 한다는 게 낭패였다. 나는 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으면서 너네를 데려오고야 말았다.

너희는 박스에 담겨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토 한 번 하지 않더라. 무언가가 너희를 붙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게 서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족한 주인이었겠지만,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너희 모두를 데려온 것이다. 학교 앞 500원에 팔던 병아리를 살리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나는 너희가 곧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러기에 너희는 너무... 예뻤다. 내게는 대책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던 건 밥을 주고 똥을 치우는 것뿐이었다. 돈 몇 푼 주고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전부였다. 기어코 살아남은 건 내가 한 게 아니라 너희 스스로 한 것이었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라.


나는 너희가 밥 달라고 하는 소리가 좋았다. 퇴근하면 침대에 나란히 누워 어둠 속에서 나를 보는 너희가 좋았다. 나라는 것을 알고 허겁지겁 뛰어내려와 울부짖는 너희가 귀찮고, 좋았다. 너희는 내가 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배가 고팠던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그 당시 너희에게 가장 필요한 인간은 나였을 테니까.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묘한 일이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만 적어도 체험판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부정할 수 없다. 너희를 보내면서, 결국 나는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얄팍한 동정심으로 생명을 보존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더 나은 환경의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까지가 내 역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그 과정이 너희에게 너무 큰 스트레스가 아니었기만을 바란다.



마지막 인사를 할래도 쳐다보지 않던 너희들이 새로운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야속한 모습이 생각난다. 더 좋은 곳으로 가리라는 것을 직감하기라도 했는지, 새 이동장이 좋다고 냉큼 들어가더라. 작별인사가 짧았는데, 그래서 너희에게 못한 말들이 있다. 각각을 위해 적어놓았으니,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해라.


심바 너는 호기심을 줄여라. 무작정 코부터 들이대다가는 작은 코 다칠 수도 있다. 꼬리가 말려있다고 주눅 들지 말 것이며, 콧잔등의 점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다녀라.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너무 뽐내지는 말아라. 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뽀뽀하고 다니지 말아라. 사람들은 네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러면 네가 귀찮을 것이다. 남동생의 먹이를 너무 탐내지 말아라. 이제 네게는 부족할 것이 없을 테니, 여유를 갖고 만찬을 음미하도록 하라. 단가만 따지면 내가 먹는 것보다 더 비싼 것을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난감을 혼자만 갖지 말고 나눌 줄 알아라. 엉덩이 토닥이는 것을 좋아하니, 자주 들이밀어라. 그리고 주인에게 하악질을 하지 말 것이며,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애교를 부리지도 말아라. 헷갈린다. 이제는 네가 시크 도도 고양이라는 것을 알지만, 처음 보는 이에게 그러면 그들은 자기를 좋아한다고 착각할 것이다. 그러면 네가 귀찮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뽀또의 똥꾸멍을 잘 핥아줘라. 걔는 스스로 못한다.


뽀또 너는 좀 더 똑똑하게 굴도록 해라. 꼬리를 만져도 가만히 있는 고양이는 네가 처음이다. 싫으면 싫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때로는 할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라. 또한 멍 때리지 말아라. 사람들은 네가 바보 고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은 누구보다 힘을 비축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누나에게 맨날 당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 번 으르렁댈 때 얼마나 무서운지 나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너는 누나에게 잘해야 한다. 처음 너를 데리고 왔을 때 나는 네가 너무 기운이 없어서 곧 죽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남매 사랑의 힘인지 뭔지, 누나가 너를 한참 핥더니 네가 기운을 차리더라. 너는 나처럼 머리가 크지만, 그렇다고 주눅 들지는 말아라. 고양이 세계에서의 큰 머리는 인간 세계와 다르게 매력 포인트이다. 우리 학교의 어떤 고양이는 세계 제일의 머리통으로 의자왕의 칭호를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쭙쭙이는 적당히 하도록 하라. 나야 싼 옷 밖에 안 입어서 괜찮지만, 새로운 주인은 아닐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너희 모두에게, 쓴 약 아프게 먹여서 미안했다. 싼 사료도 잘 먹어줘서 고마웠다. 좋은 장난감을 사주지 못해 미안했고, 많이 놀아주지 못해 미안했다. 나를 편하게 느껴줘서 고마웠다. 내 연인을 좋아해 줘서 고마웠다. 이사를 많이 시켜서 미안했고, 혼내기만 해서 미안했다.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상실하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과정만은 행복하게 해 줘서 고마웠다.


아직도 집에 있어야 할 뭔가가 없다는 느낌이 가슴 한편에 뭉근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건 너희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남기고 간 무엇 때문일 것이다. 나는 너희를 데려오는 그 순간부터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희가 남기고 간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은,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찾아야 하겠지.

영화 <컨택트>를 너희가 아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영화가 있다. 거기에선 외계인과의 접촉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게 되는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는 자신이 미래에 딸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남자와 사랑을 하고 기어코 딸을 갖고야 만다. 자신이 보았던 미래 그대로 딸과의 시간을 보내다가, 이윽고 딸을 보내준다.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깊이 고민해 봐도 별 다른 답이 나오지 않았는데, 너네를 보내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나는 다시 너희를 보내게 되더라도 그때 그 캠핑장에서 너희를 박스에 담아 오겠다.


겨울이 절반을 지나가는 중이다. 따뜻해 보이는 보금자리가 생겼으니 적어도 얼어 죽을 일은 이제 없을 테지.

삶은 늘 죽음을 향하고, 엔트로피는 무조건 증가한다. 그럼에도 살아있다면, 생명체에게 그것보다 큰 반항이 더 있을까. 너희는 아주 착실히 반항하고 있는 것이다. 더 힘을 내서 오래도록 깨물고, 싸고, 애교 부리고, 하악질 하고, 먹고, 드러눕고, 사냥하고, 장난감을 두고 싸우도록 하라.


매달 찾아가겠다는 다짐 못 지켜서 미안하다. 다시 데려오고 싶을까 봐 그렇다.

소식은 당분간 새로운 주인의 영상으로 듣도록 하겠다. 영상 보니 지금까지의 조언이 무색하게 잘 지내는 것 같아 무안하다. 이제는 너희가 나보다 좋은 집에 살더라. 너희들은 나보다 훨씬 좋은 주인을 새로이 만난 것을 감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너희의 이름은 이제 심바도 아니고 뽀또도 아니니, 토란과 감자로 한평생 행복하게 살아라.

다 자란 너희를 볼 용기가 날 때, 나와 연인이 츄르를 들고 찾아가겠다.




https://youtu.be/pz6zxVP68Zo?si=OvviaNeON6Axsx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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