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 살면서 달라진 것들
만날 사람이 나밖에 없다니...!
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Dec 20. 2022
쇼핑을 안 한다. 시장과 마트를 가고 외식을 하는 일 외에는 카드를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쿠팡에 들어가서 배송비를 내지 않기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사서 쟁였다. 칠레에 오기 위해 집을 정리하면서 내가 쓸데없는 데 돈을 쓰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절약하는 여자'의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 나중에 필요할 때 없으면 안 되는 것까지 사들였다. 물가가 비싼 칠레에 와서 다시 한번 소비를 줄이는 경험을 강제로 하고 있다. 크게 불편하지 않다. 가끔 외식하고 싶은 마음만 다스린다면.
버스를 자주 이용한다. 자가용이 있긴 하지만 산티아고는 수도답게 사람도 차도 많다. 도로는 늘 막혀 있고 주차비는 비싸다. 아무 데나 대충 주차했다가는 차를 도난당하거나 차가 훼손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마음 편하게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소매치기만 조심한다면. 지금은 시간이 많으니까 일찍 준비해서 나가면 된다. 칠레에 오자마자 아이들을 통학시키기 위해 매일 버스를 탄 남편은 "내가 평생 탈 버스를 여기서 다 타는 것 같아."라고 했다. 버스 타는 것이 익숙해졌다.
소지품 관리에 신경을 쓴다. 한국은 치안 천국이다. 여기서는 잠깐 한눈 판 사이에 휴대폰, 가방을 뺏겼다는 이야기를 여행객, 한인들을 통해 심심치 않게 듣는다. 식당에서는 가방을 끌어안고 밥을 먹는다. 칠레에서 알게 된 지인은 잠깐 한국에 갔는데 자기도 모르게 가방을 안고 밥을 먹고 있더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미 언니'의 정체성이다. 아이들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밖에서 남편이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 주변에 위험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거나 휴대폰을 보지 말라고 잔소리한다. 자기들이 가방을 앞쪽으로 메겠다고 할 때도 있다.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식당에서의 물, 공중화장실 사용이 유료라서 놀랐다. 칠레도 그렇다. 식당에서 팁도 계산한다. 외식비를 줄이기 위해 나는 식당에서는 물을 한 병만 주문하고 미리 물을 병에 담아 간다. 4인 가족이 밥 먹으면서 물 한 병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에서라면 500ml 생수를 미리 구입해서 갔겠지만 여기서는 작은 생수마저도 비싸다.
나는 외출할 일이 거의 없다. 활동적인 성격이라면 여기저기 돌아다닐 텐데. 꾸준한 게으름 덕분에 마트와 시장에 가거나 외식을 할 때 빼고는 집에 있는 날이 많다. 쇼핑을 좋아하면 집 근처 쇼핑몰에 갈 수도 있다. 나는 '어차피 사지도 못할 것을 봐서 뭐하나' 하고 그냥 집에 있는 편을 선택한다.
마트밖에 갈 곳이 없다니...!
아이들의 학교 방학이 시작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을 학교에서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마저도 안 하게 되니 정말 밖에 나갈 일이 없다. 심심하다. 이 나이에 심심하다니. 남들에게는 팔자 좋은 소리로 들릴까 봐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다. 아이들도 심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TV도 휴대폰도 없는 아이들은 매일 심심함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은 여행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혼자 노는 아니 나와 만나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나와 만나는 시간이 어색하고 힘들었다. 고립된 느낌이다. 사람들이 나를 잊으면 어떡하지. 걱정도 된다. 아무 연락도 오지 않는 휴대폰을 보며 '내가 인생을 잘못 산건가' 하는 생각도 한다. 내가 그들에게 연락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는 것뿐인데. 누가 나를 일부러 왕따 시킨 것도 아닌데 불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앞으로도 계속 혼자 지내게 될까 봐.
휴대폰 사용 시간을 줄이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늘렸다. 이제 운동만 시작하면 된다. 심심한 이 시간을 귀하게 여기며 '나를 잊지 않고 잃지 않아야겠다.'(김신지 지음,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