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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준엽 Apr 28. 2017

인형뽑기에 숨겨진 디자인의 역할변화

Design

얼마전부터 편의점만큼 쉽게 눈에 띄는 점포가 있다. 바로 '인형뽑기'다. 그 규모나 방식, 그리고 전문성(?)면에서 이전의 문방구나 구멍가게를 기웃거리면 눈에 띄던 볼 품 없던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1000원 혹은 500원에 한 번이라는 균일한 가격, 다양한 종류의 봉재 인형, 그리고 20명은 거뜬하게 수용할 수 있는 공간과 기계. 심지어 현금이 없는 사용자를 위해 친절하게 점포 앞에 준비한 ATM까지 누구나 도전할 수 있도록 배려한 모습도 어렵지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단 발을 들이면 한두 개씩 인형을 들고 들뜬 표정으로 새로운 표적을 찾는 사람들로 인해 '저런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한 개는 뽑아야지'라는 피할 수 없는 유혹에 십중팔구 넘어간다. 여기에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유리를 닦고, 많이 뽑아갈 것을 확신한듯 준비되어 있는 무료 봉지 코너까지... 사용자 경험을 정교하게 디자인한 사례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다.


사실, 천 원이라는 비용은 작지 않다.


인형뽑기를 즐기는 10대나 20대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면 천 원은 어느 틈에 벌써 일 회를 부여하는 일종의 티켓이 된다.(정말이다...) 비용이 아닌 횟수로서 탈바꿈한 지폐는 한 번을 위해 바꾼 열 장이 기계에게 모두 다 흡수되고 나서야 허탈하게 끝이 난다. 그 과정에서 '에이, 천 원짜리 서너 장 정도로 뭘'이라는 생각처럼 자신의 손실을 심리적으로 작게 만들거나 운이 좋아서 인형을 뽑기라도하면 이를 투자금보다 훨씬 더 큰 가치로 여긴다. (일종의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현상이다.)


이처럼 인형뽑기는 최근에 접할 수 있는 많은 디자인 중에서 단연 눈에 띄게 훌륭하다. 여기에 담긴 여러가지 사회적인 담론이나 사기에 가깝다는 알고리즘, 그리고 그 사실을 역이용하여 엄청난 인형을 싹쓸이 하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사실들은 배제하자. 요즘과 같이 힘든 경기에 견인된 가벼운 주머니 사정과 답답한 현실에서 적은 돈으로 무언가를 뽑아서 손에 쥔다는 그 행위는 지금의 한국 사용자들, 인형뽑기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니즈와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디자인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False Principles of Decoration' at the Museum of Ornamental Art, Marlborough House, Pall Mall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인형뽑기도 19세기 영국에 등장했다면 핸리 콜Henry Cole의 '공포의 방Chamber of Horrors'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의 질타의 대상으로 진락했을 것이다. 이처럼 디자인은 시대나 문화권에 따라서 그 의미와 의식적 범주가 다르게 나타난다. 조금 더 분명하게 구분하면 사용자인 개인의 인식 범위가 확대되기 이전과 이후의 디자인 개념은 다르다.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는 하나의 사실은 디자인은 결국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이다.


조자이어 웨지우드는 영국의 대표 도자기 회사 '웨지우드'의 창업자이기도 하다.


조자이어 웨지우드Josiah Wedgwood가 현직 '예술가'를 산업 공정에 도입하면서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직종을 탄생시킨다. 그러나 당시 디자이너는 순수한 '미술가'였기 때문에 실패했다. 예술과 디자인을 구분하는 경계선은 '기능'으로 정의되지만 상호작용의 측면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술가의 목적은 자기 표현이다. '자신'이라는 한정된 기호와 생각을 강요한 제품들은 많은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제품을 요구했던 당시의 목표와 단절되었기 때문에 그 실패는 자명했다.


당시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어거스터스 퓨진Augustus Pugin은 단편적인 제품의 오류에 국한하지 않고 실제로 문제가 되는 현상, 즉 맥락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좋은 사회가 좋은 사람을 만들고, 좋은 사람이 좋은 디자인을 만든다'고 믿은 그 가치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중세의 건축물을 재조명을 택한다. 구체적으로 조화롭지 않고, 구조를 무시하고, 겉치례 장식에 중점을 둔 디자인은 배제한 것이다. 이러한 실용적 적합성은 모던디자인운동Modern Movement로 이어지게 된다.


Theodore Roosevelt High School: Arms and Armor (opened February 9, 1939);


반면, 비슷한 시기에 인형뽑기가 미국으로 넘어갔다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확률이 높다. 미국에는 유럽인들이 가진 문화와 정치적인 상황, 도덕적인 문제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퓨진과는 다르게 미국의 리처드 F. 바크Richard F.Bach는 20세기를 반영하는 매체를 '대량생산한 상품'이라고 판단했다.동시에 시대적 상황은 대공황과 국가 부흥법이 시행되면서 상품의 가격이 고정되고 결과적으로 제품으로만 경쟁하는 구조에 놓인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스럽게 외양을 통한 경쟁을 이끌어냈고, 지금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등장시킨다 (디자인과 스타일링은 차이가 있다.그 이야기는 잠시 미루도록 하겠다.)


실제로 보면 들기 무거워서(?) 내려두게 된다. 그럼에도 감히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이라고 확신한다.


이처럼 디자인의 개념은 비슷한 시기의 영국과 미국에서도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이는 당시의 한 개인이 감당하는 인식의 범주가 자신이 속한 그 장소에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맥루한의 저서를 인용, 요약하면 '활자 인쇄의 폭발은 사람들의 정신과 목소리를 확장, 대화의 규모를 세계적으로 재구성하고, 시대와 시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동시에 부족 중심의 사회를 붕괴시켰다.(Mcluhan, 1964) 즉, 미디어가 폭발적인 발전을 이룩하기 이전에는 정확히 그 정도의 사회와 인식을 사용자는 감당하였다.


디자인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domus집 + inovation혁신 = dom-ino 시스템. 이 방식은 기존의 건축설비와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킨다.


기술과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와 지역성을 붕괴시키고 세계를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이끌어내는 비극적인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오히려 디자인은 한 단계 나아간다. 모든 것이 파괴된 상황 속에서 서로 다른 문화에서 오는 인식과 차별성은 무너지고 커다란 하나의 시대정신인 '합리성'을 기반으로 세계의 축이 작동하게 된다. 동전의 양면처럼 암울한 시대적 상황은 현대건축의 토대가 되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라는 미술가이자 디자이너인 건축가를 탄생시킨다. 여기서 현대 건축의 5가지 원칙을 정립한 건축가로서 그를 예찬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가 찾은 해답인  '집은 살기위한 기계다'를 '돔이노 시스템dom-ino'이라는 획기적인 방식을 통해 실현하였다. 지금까지도 그가 최고의 디자이너로서 회자되는 까닭은 회화나 조각, 건축을 나눈 것이 아니라 시대적 요구를 깊이 성찰하여 그 본질을 깨닫고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현대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맥락과 과정이다.


그렇다면 인형뽑기는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디자이너의 역할이 쓸데없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믿거나 도덕적인 가치관을 통해 여러 디자인 운동을 펼친 운동가들의 당시 판단으로는 조잡한 흉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그것은 그 당시의 입장이자 그 당시의 맥락이다. 그들이 주창하는 디자인의 미학이나 과정에 얽매이는 사고로 지금의 디자인 개념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온라인이라는 미디어의 폭발적 발전과 함께 인간의 인식은 그 어느때보다 확장되었고, 그로 인해 다양한 가치관이 뒤섞여 산재한다. 예측 할 수도, 상상은 이미 현실화된 지금,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맥락과 과정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은 혼란과 복잡성 속에서 개인의 역할과 지위가 이전에 비해 축소되었고, 스스로 결정하고 획득할 수 있는 자율권 역시 실질적으로 많은 부분 박탈되었다.


SNS를 보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행복하다. 화면에 속하지 않은 나만 불쌍하고 불행한 존재다.


동시에 SNS라는 프레임 속에서 좋다고 하는 수 많은 것들이 끊임없이 단편적인 이미지로 노출되면서 사용자는 이를 얻고자 인내와 고통을 강요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다림 없이, 작은 비용으로, 자신이 선택한 인형을 잡고 뽑아내는 행위는 단순한 재화의 획득이나 재미를 넘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뽑지 못하여도 잠시나마 사람들과 웃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부여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를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디자인이 사용하는 대상을 생각하고 디자인해야 한다는 정의로 환원되지만, 이것이 지금의 디자인을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개인, 즉 사용자의 드러나는 행위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맥락과 보이지 않는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형뽑기와 저렴한 과일 주스,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핫도그 점포까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사용자에게 접근하는 맥락과 가치는 동일하다. 현대의 사람들은 표현주의 작품을 감상하고 인형뽑기를 하거나, 화려한 크리스찬 루부텡Christian Louboutin 구두를 신고 디터 람스Dieter Rams가 디자인한 시계를 차기도 한다. 결국 한 개인에게도 여러가지 미학적, 디자인적 자아가 분열증처럼 산재한다. 결론적으로 상투적이지만 보이는 것의 보이지 않는 맥락을 읽고 사용자 입장에서 우선적으로 상호작용을 시도하는 것, 이것이 지금의 디자인의 역할이자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참고 문헌


·Stephen Paul Bayley,Terence Conran(2009). 디자인&디자인. (허보윤, 최윤호 역): 디자인하우스

·Herbert Marshall McLuhan(2012). 미디어의 이해. (김상호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Donald A. Norman(2012).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 (이지현, 이춘희 옮김):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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