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육아일기] 쉼표 뒤

결혼 13년 차 육아 2년 차

아이가 자랐다. 키는 74cm이고 몸무게는 10kg를 넘었다. 키는 태어났을 때 보다 20cm 넘게 훌쩍 자랐고, 몸무게는 3배가 되었다. 오늘 392일째 되는 날, 아이는 이제 벽을 짚고 일어나며 내 양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가고 때론 한 손을 서로 잡고 걸어 다닐 수 있다. 작은 방까지 걸어가거나 베란다와 거실을 나눈 창문까지 기어가서 뒤를 돌아본다. 나나 아내가 바라보고 있을 것을 알고 있거나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성큼이의 본명을 부르면 나를 바라보거나 '딸'이라고 부르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린다.


아이의 무릎은 적잖은 주름이 생겼다. 처음에 태어났을 때 발바닥은 물론 무릎의 앞뒤 팔꿈치의 앞뒤, 목 주변 어디에도 주름이 없었던 것이 의아했다. 이제 발등과 발바닥의 질감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여전히 성큼이는 걷다가 엉덩방아를 찧거나 거실 매트 주변에 있는 베개가 올라갔다가 미끄러지며 갑자기 통곡을 하며 낯섦과 두려움, 아픔을 울음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무릎에난 미세한 주름처럼 마음이 조각들을 이어 붙이며 '자기'를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아이는 자주 웃으며 물론 때론 자주 웃는다. 누워있으면 나에게 와서 티를 가슴팍까지 올리며 드러난 배를 통통 두드리다가 배꼽에 손가락을 넣어보기도 한다. 가끔 아플 때가 있고 배꼽을 찌르는 기분이 이상해서 바지 허리춤 안에 티셔츠를 넣어서 티셔츠를 들어 올리지 못하게도 한다. 누워있으면 내 코를 있는 힘껏 잡아당기기도 한다. 아프다. 울음, 웃음이나 움직임 모두 주저함이 없다.


작년 겨울에는 첫눈이 와서 집 주변에 아기띠를 매고 달려 나갔다. 아이는 대부분이 생경하기 때문에 신기해 하지만, 다분히 나의 욕심으로 아이에게 눈으로 불리며 겨울에만 하늘에서 내려오는 H2O의 고체 결정에 대한 시각적 촉각적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소복이 쌓여가는 눈이 금세 사라지는 것 같아도 그것이 지구를 맴돌아 다시금 무엇으로 태어나듯이, 아이의 경험이 어딘가에 남아있기나 할까 생각하다가도 의식과 무의식으로 불리는 어떤 부분, 몸짓, 발화, 소리의 어딘가에 영향을 주며 그만의 자기화로 표출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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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여전히 마스크를 쓰기 어색하지만, 한 시간 이내로 어린이집에 데려가기로 했다. 여전히 나와 아내를 제외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나 다른 가족들에게 큰 호감을 표시하지 않는 낯가림이 심한 성큼이가 과연 어린이집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사회로 접근이 가능할 것인가가 요즘의 고민거리이다. 올해에도 육아휴직을 할 아내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다시금 데리고 오는 일이 더욱 번잡스럽고 바쁜 일이다. 겨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주변에서 커피 한 잔이라도 마시려다 시간이 촉박할 때가 많다. 아이는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울기만 한다. 자신 있다고 외치던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투에 웃음이 사라졌다고 한다. 아내는 자기는 그렇지 않았다면서 시어머니에게 내가 얼마나 사람을 붙여주지 않았는지를 물어봐달라고 한다. 나는 어릴 때 참 오랫동안 사람을 붙여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려서 다니냐고 아내는 역설이라며 나를 나무라기도 한다. 3월 말이 되면 어린이집에서 놀다가 나오기가 싫은 표정을 지으면, 나와 아내는 어떤 기분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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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400일이 되며, 약 100일간 더뎌왔던 육아일기에 다시금 신경을 써야겠다. 사진 몇 장, 그리고 머릿속 기억에 의지하기에는 아이의 몸짓은 살아있고 달라지고 나를 일깨워준다. 내가 추워서 아이를 끌어안기도 하며, 나는 아이에게 기대고 있다. 글에 온도는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어느 때고 다시 열어본다면 그 온기가 나를 감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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