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연구공동체 희곡 읽기 모임
우연히 만난 수업, 희곡읽기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그정도의 희열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글보다 말이 앞선다는 것도 다시금 깨닫는다. 수요일 10시30분에서 12시30분,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중반을 넘어선 수업, 안톤 체홉의 희곡을 읽고 있다.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 모노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4가지 장면을 그려오기였다.
1. 분리와 독립: 토요일 주말의 명화
가정 형편과 상관없이 참 행복했던 유년시절을 삭뚝 잘라버린 그 날은 토요일이다. 밤 9시 40분 MBC 주말의 명화가 시작되는 소리가 들렸고, 내 방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투닥거리다가 이내 안방으로 들어오던 이들은 웃음을 띄고 있었다. 좀 있다가 내 방에 가보니 잘려진 신용카드 더미, 몇 해 지나지 않아 나는 부모보다는 한 명의 그와 그녀로써 바라보기 시작했다.
2. 불가지론: 일요일, 느즈막히 교회가지 않고 듣는 철학강의
신앙은 가족을 지켜온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고3, 속절없이 준비가 부족해서 신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때,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 그 교회당 긴 의자 허리 받침과 의자 사이에 좁은 틈, 간절한 그녀의 발바닥을 보고 정신을 차리기도 했다. 몇 해가 지나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그럴꺼면 왜 교회를 가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러다가 만난 철학, 2년의 궁리 끝에 선데이 크리스천마저 하지 않기로 했다. 신의 유무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종교에서 말하는 신은 아니다는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그래서 굳이 열심히, 착하게, 내세를 준비하며 살지 않기로 했다.
3. 마이너리티 : 나를 기다려준 스터디 멤버
나는 좋은 사람인 줄 알았고, 나는 어려움 속에서도 신이던 가족이던 그 무엇으로 나름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무너진, 그것마저 내 정체성의 혜택이었음을 알게 됐던 계기는 여성주의(페미니즘)을 만났을 때였다. 학위과정 전, 나는 페미니스트 두 명, 성소소주 한 명과 몇 개월간 스터디를 진행했다. 나는 불가지론자가 됐을 때처럼, 머리로써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었다. 나는 여성주의 텍스트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멤버가 이야기 했다. "이 학문은 울분과 아픔의 학문이에요."이라는 것, 억압의 몸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때까지 몇 달간 그들은 나를 고맙게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고 있었다. 이후에도 여전히 행동보다 말만 앞서긴 하지만, 감수성의 문제는 내 삶을 살아가는데 큰 영향을 줬다.
4.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책
자본으로부터 완벽한 독립은 또 다른 오만일 수 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자본은 필요하지만, 언제나 자본을 중심으로하는 선택에는 관계의 경중이 생기고, 차별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자본을 위해 무엇에던 기생하는 방식보다는 최대한 독립적인 방식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겠으나, 계속 풀고 가야할 숙제이다. 자본이 나다움을 헤친다면, 나다움으로써 살고, 돈이 따라온다면 감사한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