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자국
아이가 30개월이 됐다. 아내가 요가가 있는 사이, 아이와 재활용 분리수거를 같이 했다. 나는 양손에 플라스틱, 비닐, 종이 등을 들었고 아이는 작은 손에 복숭아를 담았던 얇은 스티로폼을 들었다. 분리수거를 하고 들어오는데, 아이와 손을 잡았다. 30년 뒤가 스쳐 지나가서 울컥였다. 나는 어떤 모습일지 혹은 세상에 있을지도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지금과 같은 결혼제도와 방식이 살아있다면 아이의 손을 잡고 내가 결혼식장에 입장을 하고 누군가에게 손을 건네주러 가겠구나 싶었다.
아이가 생긴 뒤에 생기는 미래에 대한 상상은 감정이 담긴 기억에서 나온다. 아내가 내가 효자가 아닌 게 유일한 장점이라고 말할 정도로 나는 부모님의 가정과 내 가정의 분리를 확고히 하고 싶어 한다. 부모님이 그럴 수 있는 상황이나 의지가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 아이가 생긴 뒤에 부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며 나도 별 수 없는 인간이구나 싶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나를 키운 일이라고 하는 어머니에 대해서, 삶이 그토록 곤궁하고 만만하지 않았을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성공보다 더 기뻐했다는 것이 진심이며 그것이 몸으로 와닿는 느낌인 것을 아이가 생기고 알게 됐다.
아버지에게 모질 게 굴었던 일들도 많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나의 사과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어쩔 수는 없다. 삶의 부침 속에서 서열과 성공을 전혀 이루지 못하면서도 시쳇말 같은 성공 방식을 원했던 아버지의 앵무새 같은 조언은 듣기 싫었었다. 아버지가 한창 싫을 때는 아버지가 신고 나왔던 화장실 슬리퍼의 온기가 싫었었지. 언젠가 술에 완전히 취해서 '못 배운 아버지라고 무시하냐'부터 시작한 다양한 언사들은 결국에 아버지는 일정정도 수준이 아니었다면 아들인 나까지 무시했으리라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그래도 얼마나 너희 - 누나와 나 - 를 진심으로 아꼈다는 말을 했었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결국 아이라는 황홀한 감옥을 경험하며 그 진심을 완벽하지는 않으나 심도 있게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가 하얀 손으로 내 까무잡잡한 손을 잡는다. 그렇게 평범한 것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